“네 눈, ···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구나.”
카츠류우는 손에 귀옥을 꽉 움켜쥐며 지금이라도 터뜨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녀석이 보기에, 이 성은 어떠하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카츠류우는 순간 당황했다.
“···네?”
“내가 짓고 있는 이 오사카성, 네 눈에는 어떻게 보이느냐고 묻는 것이다.”
카츠류우는 머뭇거렸다. 거짓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주먹을 풀어다 쥐며 숨을 골랐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 성은···, 나리께서 전국을 통일하시는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그 위용은 전무후무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나리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상징이 될 것입니다.”
히데요시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카츠류우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시야마 혼간지의 본산이 있었던 이 자리는 승려와 백성들의 원혼이 가득 서려 있어, 나리의 앞길을 방해할지도 모릅니다.”
“뭐···, 상관없다. 그들은 내 손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북벽이 취약해 보이고 사각이 존재합니다. 적이 공격한다면 그곳을 노리겠지요···.”
그 말을 듣고, 히데요시의 뒤를 따르던 세 무사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자신들의 주군이 설계한 성의 약점을 지적하는 무례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박장대소했다.
“크하하하! 예리한 눈을 가졌구나. 그래, 북쪽의 벽은 내가 일부러 약하게 만든 것이다. 적이 그곳으로 몰리게 해서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이지.”
카츠류우는 또 한 번 놀랐다. 히데요시의 전략은 생각보다 깊었고, 그 전략을 누군지도 모를 자신에게 가감 없이 말해주는 그의 여유가 오히려 두려웠다.
“우리가 다시 만날 것 같으냐?”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정체를 꿰뚫으려는 시험이었다. 히데요시의 질문에 카츠류우는 신중히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용맹하고 좋은 눈을 가졌구나. 앞으로 더 실력을 키워라. 인재는 언제나 필요한 법이지.”
히데요시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무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가마사! 이 소년을 보내주게. 나는 이런 눈을 가진 자를 좋아한다네.”
“하지만 이 녀석은···.”
쿠로다 나가마사가 항의하려 했으나, 히데요시는 손을 들어 뒷말이 나오는 것을 막았다.
“키요마사, 마사노리! 나가마사 녀석이 사고 치지 않도록 어디라도 좀 끌고 가버려라. 제 아비를 닮아 무서운 짓을 할지도 모르니.”
“예, 주군.”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 중 한 사람, 건장한 체격의 거구,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쿠로다 나가마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가마사, 우리끼리 탁주나 한잔 마시세.”
나가마사는 잠시 멈춰서 카츠류우를 노려보고는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데요시는 세 명의 무사를 돌려보낸 후에야 카츠류우를 다시 돌아보았다.
“괜찮다. 긴장할 것 없다. 어서 가거라. 북문으로.”
카츠류우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자신의 가문을 무너트린 교활한 계책을 세운 쿠로다 칸베에, 그의 아들 쿠로다 나가마사.
시즈카타케 전투를 선봉에서 승리로 이끈 맹장, 후쿠시마 마사노리.
히데요시의 시동 출신인 최측근 호위무사, 카토 키요마사.
자신을 상대하던 세 사람의 무사는, 시바타 가문을 무너트린 원수 중의 원수였다. 또한 히데요시는 조금 전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파악한 듯, 간자라는 걸 알면서도 보내준 것이다.
카츠류우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마치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는 인적 없는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잠시 숨을 돌렸다.
“야! 말 좀 들어, 제발! 좀!”
“미안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퍽, 퍽.’
미카즈키는 눈시울을 붉히며, 평소답지 않게 카츠류의 가슴을 두어 번 내리쳤다.
“난, 네가···. 네가···. 아오 씨, 진짜···. 분이 안 풀리네.”
섬전 같은 일격이 옆구리를 향하려던 찰나, 미카즈키는 일수를 거두었다. 아직은 도망 중이니까.
카츠류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은 오사카 성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위해 준시로와 만나기로 한 북문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문의 어두운 숲길.
가시덩굴 사이로 여러 개의 갑주가 반짝였다. 당세구족(當世具足)을 전부 갖춰 입은 열 명의 무사가 길목을 막고 서 있었다. 그들의 투구에는 쿠로다 가문의 상징인 등나무 문양이 또렷했다.
미카즈키가 이를 악물었다.
“설마···. 사람 좋게 보내준 척 하더니, 이런 덫을 숨겨놨단 말이야?”
“내가 막을 테니 도망쳐!”
“시끄러워! 네가 무슨. 선수필승이야. 기회는 한 번 뿐이니까 잘 따라와!”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섬전처럼 빠르게 튀어 나간 미카즈키가 유일하게 칼자루를 쥐고 있지 않은 무사를 향해 도약했다. 통성명이라도 하려 했던 무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방어 자세조차 취하지 못했다. 미카즈키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목덜미에 쿠나이를 박아 넣었다.
‘끄르르륵···.’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피. 앞장선 쿠로다 무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여기야! 카츠류우, 따라붙어!”
두 사람은 그 틈을 뚫고 달렸다.
단 한 번의 기습.
정면 돌파였다.
칼을 쥔 카츠류우, 단도를 휘두르는 미카즈키가 숲속의 어둠을 찢으며 돌진했다. 뒤따르는 쿠로다 무사 아홉 명의 추격은 매서웠다. 그들은 말을 섞지 않고도, 훈련된 사냥개처럼 섬세하게 포위망을 펼쳐왔다.
‘쐐애액-!’
한 번씩 날아오는 화살이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찢었다. 쫒아오는 이들 중 재빠른 세 명은 오로지 앞의 두 사람을 향해 뛰기만 했고, 나머지는 호흡을 조절하며 뒤에서 화살을 날려댔다. 등 뒤까지 쫓아온 쿠로다 무사 셋이 카츠류우를 노리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 미카즈키는 품 안에 있던 음옥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삐이이이이이-’
귀를 찢는 굉음.
신호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귀를 막고 있었지만, 뒤쫓던 세 사람은 뒤늦게 귀를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미카즈키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뒤돌아 뛰었다.
‘슈르르륵, 슈르르르륵’
‘촥, 촤악’
두 개의 삼각수리검이 멀리 주저앉아 귀를 막고 몸무림 치는 쿠로다 무사 두 명의 이마에 정확히 꽂혔다.
‘푹!’
‘커-억···.’
가장 가까이 쓰러져 있던 무사의 목에는, 돌진하며 쿠나이를 찔러 넣었다.
단숨에 세 명. 카츠류우의 눈에는 세 사람이 동시에 목숨을 잃은 것 처럼 보였다. 그녀의 움직임은 정확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멈추지 마! 계속 달려!”
‘쐐애애애액-’
또 한 발. 강력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든 쿠로다 무사의 화살이 미카즈키의 팔뚝을 찢고 지나갔다.
“아윽···!”
찢어진 상처 부위에는 검은색의 액체가 묻어 있었다.
“젠장···.”
‘···독?’
카츠류우는 미카즈키의 안색을 살폈다. 아직은 괜찮았지만, 평소 수련할 때도 잘 나지 않던 식은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카츠류우, 안 돼. 이대로 가면 너까지···. 내가 나머지를 처리할 테니 넌 어서 스승님을 찾아가.”
“무슨 소리야, 같이 간다고 했잖아!”
“넌 살아야 해. 가족들이 살아 있다고 했잖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미카즈키는 카츠류우의 등을 걷어찼다.
“빨리 가! 내가 붙들어 둘게!”
그녀는 적들의 방향으로 뛰어 가며 카츠로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카츠류우는 멀리 날아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망설였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차차, 하츠, 고우, 이 세 사람이 눈에 아른거렸다.
누이들이 보고 싶었다.
살아서 꼭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른 것이 있었다. 피투성이로 주저앉아 숨이 끊어질 듯한 미카즈키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쳤다. 이 많은 생각이 불과 넘어진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 애를 혼자 두어선 안 돼.’
카츠류우는 미카즈키가 돌아간 길을 따라 빠르게 따라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나무 그늘에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있는 미카즈키를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불안하고 얕은 호흡이 계속되었다. 버티고 있는 것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단도를 놓지 않고, 쿠로다 무사들의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남아있는 숫자는 여섯. 카츠류우는 재빠르게 곁으로 달려갔다.
“미안해. 널 두고는 못가겠다.”
“아오 씨···. 스승님이나 데려오라니까. 네가 와서 어쩌자는 거야!”
반겨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거친 구박을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츠류우였다.
“하나 남은 귀옥, 여기서 터트리고 도망가자. 조금이라도 멀쩡한 내가 후위를 맡을게. 어서 가!”
미카즈키는 짧은 순간,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했다. 여기서 자신이 싸워봤자 저들과 동귀어진하는 것밖에 그려지지 않았고 자신과 카츠류우, 둘 중 하나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둘 다 죽을 확률이 높았다. 카츠류우의 말대로 차라리 함께 도망가는게 좋은 선택이라 판단했다.
‘스승님은 분명 음옥의 굉음을 듣고 이곳으로 오고 계실 거야. 최대한 스승님과 가까워져야 해.’
미카즈키는 쓰러질듯한 몸을 일으켜 허리를 숙인 채 앞으로 달려갔다.
“카츠류우. 싸우지 마! 적당히 터트리고 따라붙어. 스승님이 오고 계실 거야!”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미카즈키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품속의 귀옥을 만지작거렸다.
‘도와주세요. 아버지···.’
눈을 감고 떠올렸다. 불타는 키타노쇼성. 죽어가는 시바타 가문의 사람들.
‘···.’
거칠게 타오르는 화염의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차츰 사라져 갈 때, 카츠류우가 다시 눈을 떴다. 주변 모든 것의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오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조차 선명히 들려왔다.
자신의 숨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호흡.'
남아있는 쿠로다 무사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일정하지 못한 맥박과 불안한 호흡 소리.
쿠로다 무사 여섯의 위치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등지고 있던 거대한 나무로 가까이 다가온 순간, 그들의 발아래로 귀옥을 던졌다.
‘쾅!’
‘화르르륵-!’
터져 나온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푸른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주변의 시야를 가렸다. 생소한 광경에 쿠로다 무사들이 주춤거리는 찰나. 귀신 시바타의 혼령이 전장에 내려앉았다.
‘무호흡.’
"혈풍!”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적들의 숨소리와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슴을 찢고, 뼈를 갈랐다.
목울대를 찌르고, 횡으로 그어 목을 베었다.
무호흡의 응축된 위력이 칼날에 스며들어 살을 벨 때, 뼈까지 다 부쉈다.
다섯 번, 칼이 그은 궤적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찢겨나갔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어억.”
아버지, 시바타 카츠이에에게 전수받은 무호흡의 창술 ‘혈풍’은 아직 다섯번 휘두르는 게 한계였다. 그나마 창이 아닌 칼이었기에 이만큼이나 휘두를 수 있었다. 칼은 붉게 물들고, 온몸은 피로 낭자했다. 소년의 얼굴은 피로 얼룩져 마치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
“귀···. 귀신이다···!”
마지막 하나. 호흡이 돌아와 칼이 닿지 않았던 쿠로다 무사가 등을 보이고 도망쳤다. 쫓을 힘이 없었던 카츠류우는 천천히 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카츠류우···.”
멀리 갔을 줄 알았던 미카즈키였다. 그녀의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는 붉게 물든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턱’
카츠류우는 긴장이 풀리며 두 무릎을 지면에 박았다.
“언제부터···? 스승님은 어디에 계신 거야?”
미카즈키는 말없이 다가왔다. 조용히, 카츠류우의 손과 얼굴을 살폈다.
‘귀신, 시바타···.’
지금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악귀 같은 남자는 자신이 기억하던 소년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아. 달라진다 해도, 이 모습이 너의 진짜 모습이라 해도,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칠흑의 소녀는 붉은 소년을 감싸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