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에서 내린 사내는, 불구대천의 원수. 하시바 히데요시였다.
‘이 사람이··· 히데요시라고?’
카츠류우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문을 파멸시킨 자. 상상 속에선 흉포한 악귀 같았던 그가, 실제로는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작은 체구에, 위압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자에게···, 아버지가···, 가문이···.’
오다 가문의 필두, 전장의 귀신이라 불린 아버지와 시바타 가문을 무너뜨린 자가 저 보잘것없는 사내였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몰려왔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공사장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입에서 몇 마디 말이 나왔지만, 카츠류우는 너무 멀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곧 금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가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호위 무사들이 뒤를 따랐다. 카츠류우는 멍하니, 원수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일하라고!”
감독관의 고함에 카츠류우는 정신을 차렸다. 석재 더미로 향하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오사카성의 축성 공사는 잠시 멈췄고, 인부들은 하나둘 각자의 처소로 흩어졌다. 카츠류우는 성 외곽의 버려진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미카즈키와 준시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감시의 눈을 피하느라···.”
미카즈키가 다가와 카츠류우의 얼굴을 살폈다.
“어때? 괜찮아? 많은 일이 있었던 표정이네.”
“히데요시를 봤어. 눈앞에 있었는데···.”
카츠류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머릿속에서는 히데요시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어땠지?”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추악한 것을 감추려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 너무 보잘것없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자가 우리 가문을···!”
“카츠류우···.”
“정신 차려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하지만···.”
“히데요시가 그 자리에 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천하의 기재들을 발아래 두고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자다.”
카츠류우는 입을 다물었다. 히데요시는 분명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그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전국을 먹어 치우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창고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도···. 한때는 너처럼 복수에 눈이 멀었었다.”
정적을 깨고 준시로의 낮은 목소리가 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감정이 묻어났다.
“나는 코노 가문의 무사였다.”
“스승님···.”
미카즈키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준시로가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여기서부터 서쪽, 주코쿠(中国)의 지배자 모리 가문의 비호 아래, 코노 가문은 시코쿠에서 힘깨나 쓰는 가문이었다. 그때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지.”
준시로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배어났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 님의 명으로 코노 가문은 막부에 헌상하기 위한 상납품을 배에 실어 보내게 되었다. 나는 그 배의 호위를 맡아 승선했지. 내 아들도 함께였다. 카츠류우, 지금의 너와 비슷한 나이였었다.”
언제나 침착함을 잃지 않던 준시로는 목소리가 떨렸다.
“무라카미 수군, 아니···. 쿠루시마의 해적들이 우리 배를 공격했다. 이 상처는 필사적으로 싸웠던 증거이지.”
준시로는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어깨에서 옆구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흉터가 드러났다.
“칼에 베이고 쓰러질 때, 아들이 달려왔다. 내 가슴의 상처를 천으로 누르며 울던 게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었지···. 햇빛에 반사된 칼날이 번뜩이더니···. 아들이 목이 떨어졌다···.”
미카즈키가 눈물을 머금은 채 손으로 입을 가렸다. 카츠류우 역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칼에 베인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나 놈들에게 달려갔지만···, 정신이 들었을 땐 미요시 가문의 영지였다. 바닷일을 하는 한 노인의 집이었지, 치료받고 걸을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준시로의 무표정한 얼굴에 눈빛만큼은 깊은 슬픔이 어렸다.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나와 아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충격으로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했다더군. 나는 코노 가문의 당주를 찾아가 복수를 위해 쿠루시마를 소탕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 마을을 관리하는 봉행은 나와 아들의 일을 듣고서도 아내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러주지 않았다.”
“스승님···.”
“···.”
“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봉행을 살해하고 도주했다. 몸을 더 회복한 뒤 쿠루시마로 직접 건너가 복수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모리 가문의 주도 아래 코노 가문과 무라카미 수군이 연합하여, 이미 쿠루시마를 무너뜨린 후였다. 한낱 힘없는 일개 무사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모리 가문의 압박에는 납작 엎드려 선봉을 자청한 모양이더군···.”
“그럼, 복수는 하지 못한 건가요···?”
“해적 놈들은 연합의 맹공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히데요시에게 귀순했다.”
“오늘 사라진 이유도 그들을 찾기 위해서였군요.”
“그래···. 그때 치료해 준 노인이 사이카슈 출신이었다. 그의 소개로 대장을 만나게 되었고, 난 아직도 그들을 찾아 헤매고 있지.”
카츠류우는 준시로의 과거 이야기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비극은 자신의 것보다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카츠류우, 히데요시는 겉보기에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는 무서운 자다. 우리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
“마고이치님도 그렇고, 우리의 칼끝은 모두 히데요시를 향하고 있네요···.”
“그래, 그가 직접 축성 현장까지 찾아왔으니 이젠 너무 위험해졌다. 잠시 쉬었다가 축시가 되면 돌아간다.”
“저···, 스승님. 내일 하루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왜지?”
“오늘, 운이 좋게도 아버지 휘하에 있던 삿사 나리마사 님의 심복을 만났습니다. 이노우에 세이잔이라고 합니다. 내일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성안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잠시면 됩니다. 살아남은 가족이 히데요시의 보호 아래 있다고 하니 안부만 전하겠습니다.”
“··· 잠시만이다. 미카즈키, 카츠류우와 함께 하거라. 일이 끝나는 대로 북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와라. 북문은 경계가 느슨하고 사각이 여럿 존재한다.”
“걱정 마세요 스승님! 이 녀석은 제가 잘 챙길게요.”
“··· 감사합니다. 스승님.”
다음 날 아침,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는 축성 현장 근처, 입장을 기다리는 인부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카츠류우는 주변을 샅샅이 훑었지만, 이노우에 세이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미카즈키가 머리를 긁적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 사람, 이미 돌아간 거 아니야?”
“모르겠어, 만나기로 약속하진 않았거든···. 당연히 나올지 알았지.”
“내 생각엔 말이야, 어제 너를 만난 희소식을 전하기 위해 일찌감치 여길 벗어났을 것 같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카츠류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불길한 예감이 들 무렵,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보았던 금장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가마가 나타났다. 공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히데요시가 나타난 것이다.
“히데요시···.”
“카츠류우, 어서 빠져나가자. 위험해.”
미카즈키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카츠류우의 시선은 금장으로 된 가마에서 내려오는 히데요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카츠류우는 스스로를 다잡았지만, 발걸음은 이미 히데요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제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카츠류우는 망설임 없이 히데요시를 향해 한걸음, 한 걸음씩 걸어갔다. 미카즈키가 절박하게 속삭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야, 카츠류우! 제발, 좀···!”
‘퍽’
‘퍽’
미카즈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소리치지 못하고, 옆구리를 퍽퍽 쳐댔다. 하지만 가볍게 때리기만 해서는, 카츠류우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카츠류우는 그저 걸었다. 히데요시를 향해, 조금씩, 한 발씩.
히데요시의 호위병들이 주변을 감싸고 서 있었고, 그 틈으로 히데요시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성벽의 기초를 살피며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카츠류우는 돌을 나르는 인부인 척하며 조금씩 다가갔다. 성벽을 살펴보고 있는 히데요시 주변에는 몇몇 건축가와 무사들이 있었다.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부분의 경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좀 더 완만하게 깎아서, 적이 기어오르기 어렵게 만들어라.”
히데요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건축공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따랐다.
“이 석탑의 높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높이는 좋다. 하지만 넓이를 조금 더 늘려라. 불랑기포를 놓을 공간이 필요하니.”
히데요시의 지시는 적절하고 정확했다. 그는 때로는 인부들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 돌을 나르는 노인에게 물을 건네주고, 아이를 데리고 온 여인에게는 과자를 주기도 했다.
카츠류우는 혼란스러웠다. 이런 모습은 자신이 상상했던 교활하고 잔인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카츠류우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와 부딪혀 넘어졌다.
'툭'
“뭐 하는 놈이냐?”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자신이 누군가와 충돌했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자 세 명의 무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젊고 날카로운 눈매의 무사가 앞에 서 있었고 그의 뒤로는 체격이 좋은 두 사람이 있었다.
‘쿵쾅, 쿵쾅.’
카츠류우의 심장이 왠지 모르게 요동쳤다.
“네 녀석, 왜 여기 있는 거지?”
날카로운 눈매의 무사가 물었다. 그의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그냥 죽여. 변수는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다.”
“크하핫, 내가 죽여주지.”
건장한 체격의 두 무사가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죄, 죄송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목패가 없는 인부는 이곳에 올 수 없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들어왔지?”
“저···. 그게···.”
카츠류우는 변명을 찾으려 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 명의 무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카츠류우는 품속의 귀옥을 만지며 위험하다면 즉각 터트려 도망칠 계획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미카즈키도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음옥을 손에 쥐고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이, 무슨 일이냐?”
그 순간,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츠류우와 세 명의 무사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자 히데요시는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신분이 불분명한 자가 이곳을 기웃거리길래 취조 중이었습니다.”
날카로운 눈매의 무사가 공손히 보고했다. 히데요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카츠류우를 자세히 살폈다.
카츠류우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히데요시와 이렇게 근접하게 마주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힘찬 한걸음.
날렵한 동작.
신속한 발검.
한순간에 실현한다면, 가문의 원수를 당장 지옥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네 눈, ···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구나.”
카츠류우는 손에 귀옥을 꽉 쥐었다. 온몸의 피가 뇌로 쏠리는 느낌이 들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