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 축성 현장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수백 명의 인부가 흙과 돌을 나르고, 목재를 운반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카츠류우는 낡은 옷에 지저분한 얼굴로 다른 인부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너희들은 저쪽으로 가라!”
“여자들은 물자 운반, 남자들은 석재 작업장으로!”
현장 책임자가 새로 도착한 인부들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미카즈키는 여자 인부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카츠류우를 향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별수 없군, 이만 가자.”
준시로가 카츠류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둘은 거대한 석재들이 쌓여있는 공사 현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들어온 이상 별문제는 없을 테니, 이제부터 각자 행동한다. 너는 혼마루 주변을 조사해라.”
“스승님은요?”
“나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준시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카츠류우는 혼자 남겨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인부들처럼 돌을 나르는 척하며 천천히 혼마루 쪽을 향했다.
‘침착하자. 나는 그저 평범한 인부일 뿐이야···.’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손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이봐, 거기!”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카츠류우는 화들짝 놀랐다. 잘 정비된 갑주를 입은 하시바 군의 경비병이 다가오고 있었다.
“··· 네?, 저요?”
“어디서 왔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 저는···.”
카츠류우는 당황했다. 준비해 둔 대답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졌다. 경비병의 눈빛이 의심스럽게 변했다.
“요즘 분위기가 흉흉한 것이, 간자들이 많아서 말이야. 잠시 따라와 봐.”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바로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카츠류우의 어깨를 감쌌다.
“어휴, 이 녀석 또 이러네. 그만큼 혼나고도 정신을 못 차리냐. 쯧, 이쪽은 가지 마라 하지 않았더냐. 아이고 죄송합니다, 무사 나리. 제 조카 녀석인데, 좀 천치 같은 구석이···, 불쌍한 놈입니다.”
카츠류우는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30대 중반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수상한 남자는 자연스럽게 경비병들에게 다가가더니 품 안에서 영락전 몇 개를 꺼내 경비병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보십시오, 저기 저 돌을 나르다 이놈이 없어져서 한참을 찾았습니다요.”
경비병은 잠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손에 들어온 영락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수상한 짓은 하지 마라. 요즘 같은 때에···.”
경비병이 멀어지자, 수상한 남자는 카츠류우를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저···, 고맙습니다.”
“시바타 가문의 생존자가 여기 있었구나.”
‘!?’
카츠류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젠장.’
‘품에 숨긴 단도를 휘두를까?’
‘보는 사람은 없겠지?’
‘도망쳐야 할까?’
여러 생각이 난무하며 자신도 모르게 품 안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수상한 남자가 양손을 들어 보였다.
“걱정 마라. 나는 적이 아니다. 은인의 아들을 만나서 기쁘구나.”
“은인···이요?”
“쉿. 우선 돌을 옮기면서 이야기하지.”
카츠류우는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이름은 이노우에 세이잔. 삿사 나리마사 님의 시종이지.”
삿사 나리마사, 카츠류우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휘하 무장 중 한 사람으로, 처음 봤을 땐 외모가 비슷하여 깜짝 놀랐는데, 호방한 성격마저 닮아 마치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위기에 처한 자신을 도와주었고, 더군다나 처음 보는 사람의 입에서 반가운 이름이 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경계가 풀려 버렸다.
“아···! 나리마사 님은 잘 계신가요?”
“잘···계시지, 비록 지금은 히데요시에게 항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시바타 가문을 생각하고 있으시다. 자, 이걸 보아라. 너의 부친께서 내게 주신 단도란다.”
세이잔이 보여준 단도의 칼집에는 시바타 가문의 상징인 두 마리 기러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카츠류우는 키타노쇼 성이 화염에 휩싸인 이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가문의 문양을 확인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이잔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카츠류우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정말 카츠이에 님을 닮으셨구나. 그 눈매가 아니었다면 몰라볼 뻔했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를 알아보신 건가요?”
“나리의 명으로 키타노쇼 성에는 자주 갔었다. 넌 어려서 기억이 가물거리겠지만, 난 너를 몇 번 봤었지.”
“그랬군요, ···그런데 왜 여기에?”
“시종이긴 한데, 싸움에는 영 취미가 없단 말이지···. 그보다 행정과 첩보의 재능에 눈을 뜨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일단은 나리의 명령이었다. 하시바 군의 동향을 살피고, 혹시라도 시바타 가문의 생존자가 붙잡힌다면 손을 쓰라 하셨지.”
세이잔은 카츠류우를 데리고 더욱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공사 자재들이 쌓여있는 창고의 뒤편이었다.
“일단 앉거라. 이야기할 게 많이 있다.”
두 사람은 나무 상자 위에 걸터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시즈카타케의 싸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리께서는 그 전투에 참전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고 계신단다.”
“이미 지나간 일인걸요···.”
“당시에 우리 삿사 군은 우에스기 군과 교전 중이었어. 놈들은 산발적으로 우리 영지를 타격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일련의 공격이 전부 계획된 일인 거 같구나.”
“계획이라니요?”
세이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토쿠가와 이에야스. 그가 우에스기 가문을 부추겼다는 소문이 있다.”
‘토쿠가와, 어째서?’
카츠류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노부나가 님이 혼노지에서 변을 당하시고, 또 타케다 카츠요리가 죽은 뒤, 이에야스는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했다. 카이와 시나노의 호족들 대부분이 미카와에 붙어버렸어.”
세이잔은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키요스 회의, 그날 이후에 카츠이에 님께서는 이에야스에게 동맹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어, 이상하지 않나? 히데요시라면 치를 떨던 자가 말이야.”
“그게 큰 문제가 되나요?”
“이에야스는 시바타 가문과 하시바 가문이 싸워 양패구상하기를 원했을 거야. 오다 가문의 가장 큰 축이던 두 사람이 무너진다면, 자신은 어부지리를 취할 테니. 하지만···.”
세이잔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카츠류우의 표정을 살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판단은 틀렸어, 하시바 히데요시는 생각보다 빠르고 교활했던 자였다. 오히려 시바타 가문이 이기는 편이 자신에게 유리했을 거야.”
카츠류우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세이잔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마에다 토시이에도 마찬가지였어. 그도 이에야스의 설득에 넘어가 전장에 늦게 도착했지. 일부러 말이야. 참전하지도 않았다지? 결국 하시바 히데요시가 승리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셈이니, 따르던 시바타 가문보다 더 나은 줄을 잡았다고 여기는 게 맞겠지.”
“그런데···. 나리마사 님은 어째서 히데요시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세이잔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시바를 등에 업은 마에다 놈들이 아래에서, 우리와 철천지원수인 우에스기 놈들이 위에서 압박하는데, 방법이 없었어. 일단, 살아남아야 후일을 도모할 테니까.”
“아버지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음모가 얽혀 있었다니···.”
카츠류우는 고개를 숙였다. 믿을 수밖에 없는 처음 본 남자의 말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너에게는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카츠류우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오이치 님의 세 따님, 살아 있다.”
카츠류우의 눈이 커졌다.
“차차, 하츠, 고우가요?”
“그래, 네 의붓 누이들 말이야.”
카츠류우는 지난날, 그녀들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차차는 언제나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며 지는 걸 싫어했다.
하츠는 누군가가 슬퍼하면 스스럼없이 다가가 위로해 주던 아이였다.
고우는 호기심이 넘쳤고, 힘들어도 항상 웃으며 털어버리던 아이였다. 그중에서도, 고우는 유독 카츠류우를 졸졸 따라다녔다.
“모두···. 모두 무사히 지내고 있는 겁니까?”
“그래, 뭐 모두 무사하긴 해. 히데요시의 총애와 오다 노부카츠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아, 고우는 누군가와 정략결혼 이야기가 돌고 있다더군.”
카츠류우는 가슴이 아팠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모두 적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혹시···. 고우를 만날 수 있을까요?”
세이잔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위험해. 그녀들은 엄중한 감시 속에 살고 있다. 특히, 차차에 대한 히데요시의 총애는 지긋지긋할 정도라는 소문이야.”
“차차는,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닐 텐데요.”
“뭐 어쩌겠나. 히데요시는 현 시점, 천하에 가장 가까운 남자인 것을···.”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세이잔이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가봐야겠다. 나도 임무가 있으니 오래 자리를 비울 순 없어. 여기까지 들어온 걸 보니, 굳이 나를 따라 나리의 영지로 돌아가진 않을 테지?”
“예···. 일단은 저도 새로운 가족이 생겨서요.”
“그래, 그것 참 다행이로구나. 네가 잘 지낸다니 나리께서도 한시름 놓으시겠어. 내가 잘 말해 놓으마.”
“감사합니다. 저도 나리마사 님을 뵐 수 있다면 좋겠어요.”
“꼭 다시 보길 바라네. 그럼.”
카츠류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잔이 떠난 후,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죽음, 마에다의 배신, 토쿠가와의 음모, 히데요시에 대한 복수. 그리고 살아있는 누이들···.
그가 버티고 있는 이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고우···. 보고 싶네···.’
카츠류우는 그중에서도 막내, 고우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겼다.
‘너의 하루는 편안한 것이냐,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지 못할 테지···.’
지나간 추억으로 슬픔에 잠기려던 순간.
“읏-샤!”
멀리서 몸통만 한 물동이에 물을 한가득 받아 당차게 걸어가는 미카즈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헛것을 본 것처럼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미카즈키는 활짝 웃어 보였다. 카츠류우도 미소로 응답했다.
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은 더 복잡해졌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오후 작업을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카츠류우는 다시 인부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겉으로는 평범한 인부의 몰골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모두 자리에서 물러서라! 어서 비켜라 어서!”
날카로운 외침이 공사장을 가로질렀다. 순식간에 모든 인부가 작업을 멈추고 길 양옆으로 물러섰다.
카츠류우도 황급히 다른 인부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말발굽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더니, 어느새 검은 갑주를 입은 기마무사들이 앞장섰고, 그 뒤를 이어 금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가마가 나타났다. 갈라진 인파 사이로 달려온 하급 무사들은 사람들을 밀치며 길을 넓히고 있었다.
드디어 가마의 주렴이 걷히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