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 사이카 마고이치

by 기억흡수

천수각이 올려다보이는 사이카성의 중앙 복도.


은은한 달빛이 창살을 통해 스며들며 흘러넘치는 혈흔과 죽어 널브러진 시신들을 비추고 있었다.


불꽃과 연기가 자욱한 공간 속,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츠치바시 모리마사.

스즈키 시게히데.

사이카 마고이치의 이름을 두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클클클. 오늘, 네 놈을 아비의 곁으로 보내주지.”


시게히데가 등 뒤로 손을 옮기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무서워 도망친 주제에, 말이 많군.”


모리마사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부친과 일문이 몰살당한 그날의 기억이, 마치 심장을 움켜쥐는 듯 그의 몸을 조여왔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치 시간이 멎은 것처럼.


-탕!


철포의 격발음이 복도를 울렸다. 시게히데는 겨냥도 하지 않고, 등 뒤에서 철포를 꺼내 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모리마사의 뺨을 스치고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이 검을 뽑아 들었다. 번뜩이는 칼날이 달빛을 머금고 섬광처럼 뻗어나가며 공기를 갈랐다.


-쾅!


첫 번째 격돌. 힘껏 수직으로 내리친 모리마사와 비스듬히 걷어내는 시게히데의 검날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어지는 검격의 충격파가 주변의 화염을 일그러트렸다.


“클클클, 아직 살아있군. 모리마사. 간다!”


시게히데가 소리를 지르며 검을 돌려 모리마사의 어깨를 노렸다. 하지만 모리마사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시게히데의 손목을 노렸다.


-사각!


시게히데가 재빨리 칼을 돌려 막아냈지만, 모리마사의 칼끝이 그의 왼쪽 뺨을 얕게 그었다. 한 줄기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오우, 여전한데?”


시게히데는 손등으로 피를 닦으며 웃었다. 그리고 몸을 낮추며 모리마사의 다리를 노렸다. 허초였다. 모리마사가 도약하며 피했지만, 시게히데는 이미 몸을 일으켜 상단으로 올려 베었다.


-쇠앙!


강력한 일 검이 모리마사의 턱 아래로 날아들었다. 모리마사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간발의 차이로 치명상을 피했다. 다시 이어진 시게히데의 강력한 일격. 모리마사는 착지 하자마자 자세를 잡아 공격을 막아냈다.

엄청난 힘이 실려 있는 두 사람의 칼날이 다시 충돌하자 둘은 불안한 자세로 이를 갈며 버텼다.


“크윽···.”

“배신자라고 떠들고 다닌다지? 네 놈들과 우리의 생각이 달랐을 뿐, 난 사이카슈의 더 나은 앞날을 위해 한 행동이었다!”


-퍽!

모리마사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힘의 방향을 바꿨다. 시게히데가 균형을 잃는 순간, 모리마사의 무릎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으윽!”


시게히데가 뒤로 밀려나며 벽에 부딪혔다. 그 옆에는 부러진 칼날과 함께 자신과 비슷한 자세로 벽에 박혀있는 코우가 닌자의 시신이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벽을 발판 삼아 모리마사에게 돌진해 연속된 검격을 날렸다.


시게히데가 공격하면 모리마사가 막고, 모리마사가 공격하면 시게히데가 피했다. 화염이 타오르는 심연의 복도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시게히데의 칼끝이 모리마사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옷이 찢어지며 피가 스며들었다.


“클클클, 이제 시작이다!”


시게히데가 승리감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모리마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지고, 숨결은 깊어졌다.


“아까부터, 말이 많군.”


모리마사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예리해졌다.


-사각!


시게히데의 오른쪽 팔뚝에 얇은 상처가 생겼다.


-서걱!


이번에는 허벅지였다.


“윽···.”


시게히데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분명히 자신이 우세했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모리마사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다. 마치 수백 년간 원한을 품고 살아온 복수의 망령처럼.

일검, 일검마다 피를 갈구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이 완벽한 모습이었다.

더 빠르게.


-챙! 챙! 챙!


더 강하게.


-쾅! 쾅! 쾅!


모리마사의 연속 공격을 막을 때마다, 검격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게히데는 점점 뒤로 밀려났지만 모리마사의 검속은 점점 배가 되었다.

시게히데는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이미 여러 곳에 베인 상처가 많았다.


“으윽, 젠장···.”


-쾅! 쾅! 콰아앙!

-뻑!


검이 부딪힐 때마다 쇳덩이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복도를 메웠다.

결국 시게히데의 검날이 박살이 나고 검을 들어 막던 팔이 부러졌다.


“시게히데, 너는 사이카 마고이치의 이름을 더럽혔다.”


모리마사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시게히데는 반대 손으로 부러진 칼을 옮겨 쥐며 모리마사의 목을 노렸다.


-쾅!


모리마사는 양손으로 검을 거머쥐며 강력한 힘으로 시게히데의 공격을 쳐냈다. 시게히데의 부러진 칼이 멀리 날아가 벽에 기대어 있던 코우가 닌자의 가슴에 꽂혔다. 조금 전에 봤던 그 시신이었다. 절망을 느낀 시게히데는 허물어지며 무릎을 꿇었다.


‘이제 끝이다.’


모리마사의 칼날이 시게히데의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탕!


갑작스러운 총성이 울렸다.


-깡!


모리마사가 반사적으로 칼을 돌려 날아오는 탄환을 쳐냈다. 그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시게히데가 뒤로 물러났다.


“모두 츠치바시놈을 죽여라! 대장을 지켜!”


복도 끝에서 스즈키 부대장이 철포를 들고 서 있었다. 그의 뒤로 수십 명의 스즈키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시게히데님! 괜찮으십니까!”

“클클클···.”


시게히데가 멀쩡한 자신의 목을 감싸며 웃었다.


“간발의 차이였군. 고맙다.”


완벽한 복수의 순간이 방해받자 모리마사의 눈에 분노가 불타올랐다.



스즈키 부대장이 다시 철포를 겨누며 외쳤다.


“모리마사! 항복해라. 그러면 편하게 죽여주겠다.”

“항복? 누구에게?”


모리마사가 뒤로 물러서며 복도 끝을 향해 달렸다.


“쫓아라! 놓치지 마-.”


-탕!


총성과 함께 명령을 내리던 스즈키 부대장의 이마에 정확히 탄환이 박혔다.


“억···.”


부대장은 말 한마디 없이 뒤로 고꾸라지며 즉사했다. 스즈키 무사들이 부대장을 챙기는 사이 모리마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비밀 통로를 빠져나온 모리마사는 수로를 따라 이동하여 포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핫토리 마도카와 이가 닌자들이 쾌속선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빨리요!”


마도카가 반가운 듯 양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걱정이 동시에 스쳤고, 피투성이가 된 모리마사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저씨! 왜 이렇게 많이 다치신 거예요!”

“괜찮다. 하찮은 상처다.”


모리마사는 순식간에 쾌속선으로 도약했다. 마도카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으며 균형을 잡게 도왔다.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마도카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안도감이 묻어났다. 이가 닌자의 재기에는 토쿠가와 가문의 지원도 있었지만, 사이카슈의 도움도 많았다.


“출발한다!”


이가 닌자의 목소리에 격군들이 일제히 노를 저었다. 쾌속선이 포구를 빠르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저기다! 쫓아라!”


뒤늦게 도착한 스즈키 무사들이 다른 배를 찾았지만, 쓸만한 배가 한 척도 없었다.


“이게 무슨···. 배가 하나도 없다니.”

“어찌 이 큰 도시에 상선이 하나도 없는 거냐!”

“어선, 어선은 어디 갔어!”


항구에 있던 모든 배가 사라진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는 모두 먼바다로 피해 있었다.

그 많은 상선은 스즈키 가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멀리 달아났고, 주인을 찾지 못한 작은 어선들은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제기랄!”

“젠장, 모두 계획된 일이었군.”


스즈키 무사들이 분노하며 땅을 치고 있었다.

츠치바시 모리마사가 이끄는 사이카슈는 단순한 용병 집단이 아니었다. 사이카슈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인들은 장사를 기꺼이 포기했고, 어민들은 자신들의 생계 수단인 어선에 구멍을 뚫어가며 모리마사의 탈출을 도왔다. 그들이 믿는 모리마사라면 언젠가 다시 돌아와 은혜를 갚을 것을 알기에.

부상당한 시게히데가 뒤늦게 포구에 도착했다. 부하들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점점 멀어지는 쾌속선으로 시게히데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


“모리마사! 네 놈이 이긴 것이 아니야! 도망친 건 네놈이야!”


배 위에서 모리마사가 뒤돌아섰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그 표정에는 깊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시게히데! 네가 물었지. 진정한 사이카 마고이치가 누구인지.”


츠치바시 모리마사의 낮은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사이카 마고이치란, 사람들 위에 힘으로 서는 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앞에서 이끌며 가장 먼저 희생하는 자다. 사이카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들의 희망이 되어주는 자가 진정한 마고이치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피에 젖은 모리마사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마도카와 이가 닌자들마저 모든 행동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게히데, 넌 권력을 위해 동료를, 사이카슈를 배신했다. 동료의 목을 베어 받치고는 오다의 개가 되었지. 나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앞에 섰다. 이것이 우리의 차이다.”

“배신? 나는 현실을 택한 거다. 망할 운명의 가문에 매달려 죽기보다는, 살아서 더 큰 힘을 발휘할 길을 찾은 것뿐이야!”

“그것이 바로 네 한계다, 시게히데.”

“닥쳐라 모리마···.”

“사이카슈는 가문도 아닐뿐더러, 스즈키에 종속된 집단도 아니다. 사이카슈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는 세상이 아니라, 힘없는 서로를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

“닥쳐! 그런 꿈같은 소리로 사람을 어찌 지킨단 말이냐! 현실은 냉혹하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 그것이 이 세상의 유일한 법칙이야!”

“누가 강하지? 오늘 밤, 누가 네 추격을 막았나? 나인가? 아니, 상인들이었고, 어민들이었으며,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약한가? 약한 이들이 왜 나를 도왔는지 생각해 보았나? 오다 가문의 맹공을 막아낸 건, 스즈키 가문도, 츠치바시 가문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막은 거야.”

“닥쳐라! 다음에는 반드시 네 놈의 목을 잘라 걷어차 주마!”

“못 알아듣는다면, 네 놈도 딱 거기까지군.”

“크윽, 모리마사아아!!”


포구에 남겨진 스즈키 무사들과 시게히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함께 어떤 깊은 의문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말로 진정한 힘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지도자란 무엇인가? 스즈키 시게히데의 분노 속에 사이카 마고이치가 타고 있던 쾌속선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배는 키이 반도를 돌아 그림자 마을과 가까운 항구를 향해 항해했다. 한 줄기 폭풍이 휘몰아친 잔잔한 바다 위에는 달빛이 은빛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도카가 모리마사의 상처를 치료하며 물었다.


“복수를 완성하지 못해서 아쉽지 않으세요?”

“복수는 언제든 할 수 있다. 저놈 꼴을 보아하니 금방 만날 수 있겠더구나. 지금은 그림자 마을을 지키는 것이 먼저다.”

“사이카성으로 몰려온 녀석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이거···, 위험하겠는데요?”

“그래, 서둘러야 한다.”






사이카슈 그림자 마을.

하야토가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음···.뭔가, 뭔가 이상해요!”


료에몬이 나무에 기대 그늘에서 하품하고 있었다.


“뭐가 이상한데?”

“조금 전까지는 그냥, 몇 명 안 되는 무사들의 냄새였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달라요!”


하야토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축, 아니 말, 말이요! 말 냄새가···.”

“기마 무사?!”


카츠류우와 미카즈키가 동시에 창백해졌다. 그 순간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점점 커지며 땅 전체를 진동시켰다. 료에몬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아, 이건 예상 밖이군. 전부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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