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사이카슈의 검

by 기억흡수

“킁킁…. 말 냄새가, 열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하야토가 코를 벌름거리며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라, 고작 열 명이라고?”

료에몬이 나무에 기대어 하품을 하며 느릿하게 일어섰다. 평소와 다름없는 나른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손은 이미 허리의 두 자루 칼을 향하고 있었다.

“스승님, 이런 험한 산길에서 말을 타고 온다는 건….”

“상당한 실력자들이라는 뜻이지, 너희들에게는 버거울 상대들이야. 미카즈키, 놈들이 지나가면 가운데 위치한 놈의 말에 수리검을 던져라. 반드시 넘어트려야 한다.”

“저만 믿으세요!”

“카츠류우, 준비됐나?”

카츠류우는 검을 단단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사카성 잠입 이후 곧바로 이어진 실전이었다. 그때 산속 안개를 뚫고 검은 갑주를 입은 기마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 명의 기마무사가 일렬로 늘어서서 질주했다.

-휘리리릭

미카즈키의 삼각수리검은 가운데 위치한 기수의 말의 이마에 적중했다. 일렬로 달리던 기마무사들이 대형이 반으로 쪼개진 순간, 나무 위에서 두 자루의 카타나를 양손에 거머쥔 료에몬이 쓰러진 기마무사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가속력이 더해지며 기마무사의 어깨부터 허리까지 반으로 쪼개 양단했다. 단순히 휘두른 것만으로 뼈까지 절단하는 엄청난 힘이었다.

“매복이다!”

이것이 후열에 있던 기마무사의 마지막 말이었다. 료에몬은 낙하하던 순간부터 후열에 있던 네 명의 기마무사 전부의 동선을 파악하고 한 호흡만에 모두 베었다. 그의 움직임은 중력을 무시하는 듯 깃털처럼 가벼웠고, 손아귀를 떠난 화살보다 더 빨랐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카츠류우 마저 료에몬의 움직임을 놓칠 정도였다.

“젠장, 뒤 다. 뒤를 봐!”

전열에 있던 다섯 명의 기마무사는 뒤쪽의 상황을 파악하자 말에서 내려 대형을 유지했다.

한가운데 위치한 기마무사들의 대장이 입을 열었다.

“네 놈들 ,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아암. 잘 알지. 우릴 죽이려고 하는 녀석들.”

“자신만만하군, 뒤에는 삼천의 병력이 오고 있다. 네 놈들의 목숨은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네들 걱정이 먼저 아닌가?”

료에몬의 나른한 목소리가 숲의 정적을 비웃듯 울려 퍼졌다. 그 여유로운 태도에 기마무사 대장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네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전원, 저 오만한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놈들의 사지를 찢어 죽여라!”

다섯 명의 기마무사들이 맹수처럼 일제히 달려들었다. 대장은 창을 고쳐 잡고 료에몬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했고, 좌우의 두 기마무사 역시 료에몬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나머지 둘은 거리를 벌리며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창을 피하든 화살을 피하든 둘 중 하나는 피 할 수 없는 완벽한 연계 공격이었다.

미카즈키는 위기에 처한 료에몬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 하나를 쳐낸 뒤, 나무줄기를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흩날린 순간, 소녀의 손에서 섬광처럼 날아간 두 개의 삼각수리검이 활시위를 당기던 기마무사들을 향해 뻗어갔다. 자신들의 얼굴로 날아오는 수리검에 놀란 무사들이 반사적으로 활을 들어 수리검을 처냈다.

그 순간, 손 끝을 떠난 삼각수리검의 뒤를 바짝 붙어 달려온 미카즈키는 비명조차 지를 틈을 주지 않고 기마무사의 목덜미에 쿠나이를 박아 넣었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피가 허공을 붉게 물들였다. 동료의 어이없는 죽음을 확인한 다른 무사가 활을 버리고 칼을 뽑아 들었지만, 미카즈키는 쓰러지는 시체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바람처럼 가벼웠고 죽음처럼 차가웠다.

-서걱.

정확히 관자놀이에 박혀 들어간 쿠나이는 기마무사의 모든 사고를 정지시켰다. 그는 미처 칼을 다 뽑지도 못한 채 말 위에서 허물어졌다.

료에몬을 둘러싼 기마무사 셋은 서로의 공격이 꼬이지 않게 쉬지 않고 창을 찔러댔다. 그럼에도 료에몬은 자신을 향해 파고드는 창 끝을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창은 분노로 더욱 맹렬하게 찔러댔지만 모두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허억, 허억…. 이, 이 괴물 같은 놈!”

“이제 슬슬 지쳤나? 그럼 끝을 내지.”

료에몬이 하품을 하며 드디어 두 자루의 칼을 뽑아 들었다.

-털석.

그 누구도 칼을 휘두르는 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좌우에서 협공하던 기마무사 둘은 얼굴에 생기를 잃은 채 두 무릎을 지면에 박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기마무사들의 대장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비며 이긴 적도, 진적도 많았지만 이렇게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느꼈기에, 눈앞의 강적을 포기하고 나무덤불 뒤에 숨어있던 카츠류우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카츠류우는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료에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는 단 한순간도 기마무사대장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칼과 창, 보병과 기병. 전투 경험.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카츠류우의 눈빛은 긴장감이 없었다.

-팅

나무 위에서 날아온 돌이 기마무사의 투구에 적중했다. 아주 찰나의 시간, 기마무사의 시선은 나무 위를 향했다. 그 순간, 카츠류우의 칼이 뽑혀 나왔다. 소년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과도 같았다.

카츠류우의 칼이 대장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동시에 미카즈키의 삼각수리검도 대장의 이마에 꽂혔다.

“잘했어 꼬맹아. 네가 하나 살린 셈이다. 제법인데?”

료에몬의 칭찬에 하야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자신이 던진 돌멩이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때 미카즈키가 쓰러진 무사들의 투구를 벗기며 소리쳤다. 머리에 싸매진 전투띠에는 후쿠시마 가문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

카츠류우의 얼굴이 굳었다. 오사카성에서 마주했던, 시즈카타케에서 아버지의 군대를 무너뜨린 불구대천의 원수 중 하나였다. 이들이 그의 정찰병이라면, 후방에 있다는 삼천의 병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후쿠시마의 본대였다.

그때, 하야토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고 있어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냄새가…!”

료에몬의 느긋한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멀리서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그러나 강철처럼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슬슬 진짜 싸움을 준비해야겠군. 전원, 돌아가자.”



그 시각, 그림자 마을 서쪽의 숲은 또 다른 종류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시바 군에 소속된 코우가 닌자들의 본대가 음험한 살기를 내뿜으며 숲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다 노부나가의 이가 정벌 당시 길잡이가 되어 혈맹이나 다름없던 이가 닌자들을 몰살시킨 잔혹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보통의 인간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불안에 떨 정도였다.

“흩어져라! 쥐새끼 한 마리 놓치지 마라! 저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힘줄을 끊어 고통스럽게 죽여라. 히데요시 님께서 보고 계신다. 사이카슈 놈들에게 코우가의 공포를 똑똑히 가르쳐줘라!”

코우가 닌자들의 두목이 외치는 순간, 그의 눈앞에 한 사내가 홀연히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서 있었다는 듯, 칠흑 같은 복장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을 한 니시아치였다.

“사이카슈의 땅에서, 네놈들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흥, 고작 혼자인가. 오만한 놈, 죽어라!”

코우가 닌자 수십 명이 사방에서 니시하치를 향해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방이 스스로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니시아치의 칼이 칼집을 떠나는 소리는 지극히 짧고 고요했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공간을 베어 가르는 은빛 섬광의 향연이었다. 그의 검은 완벽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급소를 노렸고, 그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목과 심장이 꿰뚫린 코우가 닌자들의 시신만이 소리 없이 쌓여갔다. 그는 피하지도 않았다. 적의 공격이 닿기 전에 먼저 베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코우가 닌자들이 니시아치라는 압도적인 벽 앞에서 혼란에 빠진 순간, 그들의 등 뒤에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큭…, 앞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나. 진짜 지옥은 바로 네놈들 뒤에 있는데 말이야.”

사사에몬이었다. 그는 어느새 코우가 닌자들의 퇴로를 막고 서 있었다. 그의 방식은 니시아치와는 정반대였다.

“자, 어디부터 시작해 볼까? 발목? 아니면 손목?”

사사에몬의 손에서 날아간 여러 개의 쿠나이가 한 닌자의 양쪽 아킬레스건과 어깨 힘줄을 정확히 끊었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코우가 닌자를 향해 다른 이들이 돌아보는 순간, 사사에몬은 이미 그들 사이에 파고들어 있었다. 그의 검은 급소가 아닌 뼈와 힘줄, 그리고 고통을 관장하는 신경을 노렸다. 팔다리가 끊어지고, 관절이 뒤틀린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비명조차 사치였다. 사사에몬은 그들의 고통을 한 곡의 가부키처럼 즐기며 피의 춤을 추었다.

처음부터 단 한순간도 니시아치와 사사에몬, 두 사람은 서로를 돕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압도적인 검을 믿었기에, 그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망설임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내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표하는 최고의 신뢰이자 가장 효율적인 살육의 방식이었다. 니시아치의 냉혹한 일검을 피해 도망친 자는 사사에몬의 잔혹한 난도질에 희생되었고, 사사에몬의 끝없는 공포를 피해 달아난 자는 니시아치의 무정한 검에 목숨을 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에는 코우가 닌자들의 온전치 못한 시신과 꺼져가는 신음 소리만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피로 물든 숲 한가운데서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을 뿐이라는 듯,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본진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말이 홀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다 쓰러졌다. 등자에는 목이 잘린 기마무사 대장의 시신이 걸려있었다. 자신이 아끼던 기마정찰대가 전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사노리는 들고 있던 술잔을 바위에 내던져 박살 냈다.

“이, 이 개 같은 놈들! 모조리 찾아내어 그 뼈까지 갈아 마시겠다!”

그의 포효에 진영 전체가 얼어붙었다.

“전군, 진격하라! 저 산에 숨은 놈들을 모조리 밟아 죽이고 불태워라!”

삼천이 넘는 대병력이 지축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 산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고, 거대한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으며 물안개에 가려진 그림자 마을을 향해 다가왔다.

료에몬 일행은 약속된 장소에서 동쪽을 방어하던 코우나이, 준시로와 합류했다. 그들 역시 소수의 척후병들을 가볍게 처리하고 온 참이었다.

“크하하! 저것 좀 보게. 엄청난 손님들이 아닌가. 내 새로운 구슬을 시험해 볼 최고의 무대가 펼쳐졌군! ”

코우나이가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준시로가 다가왔다.

“형님, 그래도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하책 중의 하책입니다. 뭐, 이제 와서 피할 길은 없어 보이지만요.”

준시로는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조용히 칼자루를 쥐었다.

료에몬이 천천히 두 자루의 칼을 어깨에 둘러메며, 흐리멍덩한 눈빛을 지우고 다가오는 죽음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비장함과 함께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 이곳은 불바다가 되겠지, 물론 저놈들의 시체와 함께. 가자고 형제들! 우리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하책중의 하책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저놈들에게 보여주자고.”

사이카슈. 그들의 눈빛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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