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 그림자마을 대혈투

by 기억흡수

“옵니다. 와요!”


그림자 마을의 어린 닌자, 하야토의 목소리가 공포에 젖어 가늘게 떨렸다. 그의 코는 이미 수천 명의 적이 내뿜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철과 피, 땀과 먼지, 그리고 원초적인 살의가 뒤섞인 역겨운 냄새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림자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피어오른 흙먼지는 하늘을 가렸고, 땅의 울림은 심장을 짓이기는 듯했다.

사이카슈 닌자 천여 명이 숲 곳곳에 그림자처럼 몸을 숨겼다. 그들 역시 각지에서 활약한 잔뼈가 굵은 싸움꾼들이었지만, 삼 천이 넘는 후쿠시마의 정예병이 일으키는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것은 군대였다. 개인의 무용이 아닌, 강철 같은 규율과 조직력으로 모든 것을 짓밟는 거대한 살상무기였다.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군대는 어느덧 그림자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림자 마을의 입구는 물안개의 진법을 통해 철저히 숨겨져 있었지만, 대규모 병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두려워 마라!”


위축된 분위기를 감지한 원로 야마자키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전을 때렸다.


“우리는 사이카슈다! 제육천마왕, 오다 노부나가의 대군 앞에서도 지지 않았던 긍지 높은 투귀 아니더냐. 저들은 우리의 숲에 들어온 덩치 큰 사냥감일 뿐이다. 한 놈도 살려서 돌려보내지 마라!”


그의 외침에 두려움에 잠식되던 닌자들의 눈에 다시 불꽃이 타올랐다. 그때, 반갑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자, 내 예술을 감상할 시간이다. 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내가 최고의 불꽃을 선사해 주마! 크하하하”


코우나이였다. 후쿠시마 군의 선봉이 그림자 마을의 입구를 돌파하는 순간, 그는 화옥을 힘껏 던졌다.


-콰아아아앙!


미리 숨겨두었던 폭약통이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첫 번째 폭발은 시작에 불과했다. 바닥에 설치된 연환계의 함정이 차례대로 불을 뿜었다. 폭발이 다음 폭발을 유발하고, 그 폭발은 또 다른 폭발로 이어졌다. 땅은 지진이라도 난 듯 뒤집어지고,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들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적들의 머리 위로 쓰러졌다.


“으아아악!”

“뭐야! 땅이 무너진다!”

“피, 피해라! 나무가….”

“비켜라! 비키란 말이다!”


화염과 흙먼지가 뒤섞여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그렸다. 말들은 울부짖으며 날뛰었고, 후쿠시마의 선봉대는 팔다리가 찢겨나간 채 허공을 날았다. 인상적인 기세는 이 화려하고 잔혹한 첫 일격에 완전히 꺾였다.


“진정해! 멍청하게 서 있지 마라. 저건 단순한 함정일 뿐이야!”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역정을 내며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흩어진 대오를 수습했다. 그는 찢어진 깃발과 불타는 부하들의 시신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제길, 쥐새끼들인 줄 알았더니 제법 이빨이 날카롭구나. 좋다. 전군! 산개하여 마을로 진입한다. 저놈들의 목을 따서 하나하나 내 앞에 가져와라!”


마사노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호라가이 소리가 온 산천에 울려 퍼졌다. 이 전쟁나팔의 소리를 들은 후쿠시마의 병사들은 작은 단위로 나뉘어 쪼개져 산개하여, 그림자 마을을 압박해 들어왔다.

화려한 일격을 선사한 코우나이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마을로 후퇴했다.






“동쪽에서 와요!”

“그래, 보이는구나. 어떤 놈이냐?”

“가장 뒤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잠시 기다리거라.”


마을 입구와는 동떨어진 숲 속, 이곳에도 후쿠시마의 병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경계를 강화하며 조심스럽게 전진했지만, 그들의 발밑과 머리 위, 등 뒤는 모두 죽음의 영역이었다.


“크헉!”


한 사람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끄르륵….”


또 다른 곳에서 한 사람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의 목에는 선명한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런, 썅. 어디냐!”

“이 개자식들!”

“제, 제발…. 끄으윽.”


곳곳에서 흥분한 욕설과 생명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야토가 민감한 후각을 통해 적들의 위치를 찾으면 준시로는 예리한 시각을 통해 분대(組) 단위 적들의 지휘자 급 병사들만 골라 처단했다. 두 사람의 합공은 그야말로 무서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지휘할 이들이 모두 사라지자 적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 순간, 매복해 있던 사이카슈의 닌자들이 밀물처럼 튀어나왔다. 햇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어두운 숲 속에서 진형이 정비되지 않은 적들을 도륙하는 건 그들에게 쉬운 일이었다. 나무 위에서 그림자 여럿이 덮쳐오자 후쿠시마 병사들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풀 숲에서 가지각각의 수리검들이 날아와 후쿠시마 병사들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정확히 박혔다.

하지만 하시바 히데요시의 창, 후쿠시마 병사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위다! 일단 쏴라!”

“안 보여도 상관없다. 전방이다. 그냥 쏴!”


언뜻 듣기에는 무책임한 명령이었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든 탄환이 사이카슈 닌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전장은 잔혹했다. 사이카슈 닌자들이 교묘한 함정과 연계로 서너 명의 후쿠시마 병사를 죽이면, 뒤따르던 병사들이 쏟아붓는 화살과 탄환에 사이카슈 닌자들이 죽었다. 병사들이 규율 잡힌 움직임으로 전진하면, 어디선가 준시로가 나타나 조장을 살해하고 사라졌다. 그 뒤 나타난 닌자들이 병사들을 살해하면 또 다른 부대가 나타나 닌자들을 처단했다.

압도적인 병력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피가 피를 부르고, 죽음이 죽음을 낳는 소모전이 계속 발생했다.


“준시로! 동쪽, 깃발 든 놈!”

“처리했습니다.”

“크하하하! 다음은 남쪽이다. 저기 뭉쳐있는 놈들에게 선물을 주지!”


코우나이가 외치자마자, 그가 가리킨 방향에서 섬광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병사들이 시야와 청력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사이, 준시로가 유령처럼 나타나 그들의 생명을 거두어갔다.

다른 쪽은 더욱 끔찍했다.


“도대체 저 검을 어떻게 막으란 거야!”

“사, 살려줘!”


니시아치의 검은 한 번의 움직임으로 반드시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의 주변에는 반으로 갈라져 허물어진 시체들만이 그의 완벽한 일검을 증명할 뿐이었다.


“제발 꺼져! 꺼지라고!”

“거긴, 거긴 안 돼! 끄아아악”


반면, 사사에몬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그 자체였다. 그의 칼에 베여 죽은 이는 몇 없었다. 그는 팔과 다리의 힘줄을 끊고, 관절을 부수며 적들의 고통을 즐겼다. 사사에몬의 주변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이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강력한 일검과, 잔혹한 쾌검에 정신이 붕괴된 후쿠시마의 병사들 머리 위로 사이카슈 닌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전의를 잃은 적들은 감히 대적할 마음도 품지 못하고 도망치다 목숨을 잃었다.

몇몇의 압도적인 무력이 순식간에 전황을 뒤바꾸어 놓았다.


전장의 중앙, 그림자 마을의 광장에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직접 창을 들고 나타나 포효했다. 그리고 그의 앞을 두 자루의 칼을 든 료에몬이 여유롭게 막아섰다.


“오늘 아침에 앵앵거리는 벌레 열 마리를 잡긴 했는데, 그것들이 네 놈이 키운 것인가?”

“…. 오만한 놈. 뒈져서도 그 입을 나불거리겠군.”

“아, 또 뭔가 앵앵거리는 구만.”

“이런 개…. 죽여주마!”


두 사람의 무기가 격돌하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터져나갈 듯한 굉음이 울렸다. 마사노리의 산을 부술 듯한 창격과 료에몬의 예측불허한 쌍검술이 맞부딪히며, 두 사람이 딛고 있는 땅이 움푹 파였다.


“카츠류우! 미카즈키! 뒤를 맡긴다.”

“네, 스승님.”


료에몬이 마사노리와 격돌하는 동안,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는 몰려드는 후쿠시마 군의 호위무사들을 상대로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이들은 이전의 기마무사 정찰병과는 차원이 다른 정예 중의 정예였다.

미카즈키는 양손에 쿠나이를 들고 회전하며 세 명의 창을 동시에 쳐냈다. 하지만 창날에 옷이 찢기고 팔뚝에 얕은 생채기가 생겼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넓은 공터에서 빈틈없이 파고드는 조직적인 창진 앞에 소녀의 속도도 한계가 있었다.

카츠류우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소년은 방패를 든 병사와 창병의 협공을 막아내고 있었다. 방패를 든 병사는 카츠류우의 공격과 기동을 집요하게 저지했다. 방패에 칼이 막히는 순간, 옆에서 찔러 들어온 창이 소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자신에게는 영웅적인 일대일 대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흔하디 흔한 전장이었을 뿐이다.


“카츠류우, 정신 차려!”


소년에게 접근하려는 병사 하나를 베었지만 소녀 역시 남의 몸을 신경 써줄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후쿠시마 군의 호위무사 하나가 미카즈키의 옆구리를 발로 차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기회만 엿보던 열 자루의 창이 동시에 소녀의 심장을 향해 쇄도하던 순간, 카츠류우를 감싸던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추고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미카즈키의 목소리 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와 귓가를 맴도는 오래전 아버지의 목소리뿐.


“….”

“아들아, 무호흡이란 무어라 생각하느냐.”

“숨을 안 쉰다는 거 아닌가요?”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이 연못을 보거라. 뭐가 보이느냐?”

“잉어들이요. 그리고…. 밤하늘이 비칩니다.”

“그렇지. 하늘이 물에 비치는구나. 하지만 하늘이 물에 빠진 것은 아니지 않으냐?”


카츠류우는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시바타 카츠이에는 연못에 조약돌 하나를 살며시 던졌다. 물결이 일렁이자 수면이 비치던 하늘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고요해지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보았느냐? 이 연못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하늘을 품지만 하늘에 얽매이지 않고, 달을 담지만 달을 소유하지 않는다.”


카츠이에는 흑뢰십문자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혈풍의 근본은 바로 이것이다.”

“물이요?”

“비움이다. 아들아, 전국의 모든 무사들은 힘을 얻으려 한다. 더 강한 기술, 더 날카로운 무기, 더 단단한 갑주. 좋지, 좋아. 하지만 그것은 꽉 찬 그릇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한계를 넘어 더 채울 수 없다.”


카츠이에는 창끝을 연못에 살며시 대며 말을 이었다.


“진정한 힘은 채우는 것이 아닌, 비워 내는 데서 나온다.

“그럼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요?”


카츠이에는 그리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온화하게 웃었다.


“무언가 지키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남겠지. 명심해라. 혈풍은 이기는 힘이 아닌, 지키는 힘이다. 너의 폐 속에 있는 공기를 모두 날려 버린 후 마지막 남은 숨과 하나가 되어라. 준비가 되었다면 보일 것이다.”

“….”


어느 순간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공격을 맞고 쓰러지는 미카즈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원하신 건 복수가 아니었어. 비워라. 비워. 다 비워. … 다 비우면 너만 남구나, 미카즈키.’


“혈풍...!


-콰아아앙!


미카즈키를 향해 쇄도하던 후쿠시마 무사 열 명의 허리가 일격에 양단되었다. 이어진 검격은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를 방패째로 베어냈다. 세 번째 공격은 더욱 날카롭게 날아가 미카즈키를 찼던 무사의 양다리를 과격하게 베었다. 부서지는 대퇴부의 뼈 소리가 주변을 공포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처음 혈풍을 썼을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것은 더 이상 미숙한 분노의 발현이 아니었다. 준시로에게 배웠던 은밀하고 정교한 힘의 분배. 니시아치에게 배운 일격의 무거움. 사사에몬에게 배운 인간의 약점. 료에몬의 신속한 움직임. 마고이치에게 배운 흐트러지지 않는 정신. 지금껏 배워 온 스승의 기술 하나하나가, 모든 걸 비워내고 마지막 남은 한 호흡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뼈를 부수고, 몸을 가르고, 뒤에 있던 병사들 까지 한 번에 베어버렸다. 멈추지 않고 회전하고 도약하고 회전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카츠류우가 휘두르는 칼 날에 묻은 피가 자신과 주변을 붉게 물들였고 공기마저 붉게 물든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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