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담양회맹군
삼사의 하나인 홍문관의 일원으로 어지러운 민생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이 나라의 국방을 위한 상소를 하루가 멀다 하고 올렸더니 주상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나를 골칫거리로 여기며 성균관의 말단으로 좌천시켰다.
백성을 보살피기 위한 내 뜻이 꺾이며 날 밀어낸 이들의 자질에 회의감으로 젖어 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동래성의 함락'
조정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왜적들의 힘을 과소평가하며 입만 나불거릴 뿐인지라 그 즉시 관복을 벗고 붓과 서책을 내려두며 성균관을 떠나 곧장 내 고향 옥과로 내달렸다.
천안의 지인에게서 말과 칼을 구한 뒤 순창을 지날 때였다. 읍성의 관아 앞에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 날붙이를 하나씩 들고는 사납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왜적들이 창궐하여 어지러운 시국에 관아를 털어 한몫 챙기려 한 모양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올바른 곳에 쓰지 못함에 분개하며 홀로 수백의 사나운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 그리고 자식들 더 나아가 각자의 고향과 우리의 내일을 위해 어려운 일에 힘을 보태줄 것을 강력히 부탁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그들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굳게 지니며 모두가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전란에 뛰어들 용맹한 전사로 변모했다.
홍문관에 적을 둘 때부터 호전적인 왜인들의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터라 조정에 수차례 상소를 올리고 건의했으나 단 한 번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고향 땅 옥출산 자락에 창고를 지어두고 병장기와 군량미를 비축해 두었기에 우리들은 관군보다 빨리 무장을 하고 상황을 주시할 수 있었다.
남원에서도 우리만큼 빠르게 의로운 무리들이 일어나 그 명성이 전해져 오자 그들을 이끄는 수장인 양대박 선생을 만났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쾌락을 멀리하며 오히려 어려운 이들을 돕고 가르치던 의인이었다. 그와 나는 단번에 뜻이 통했기에 왜적에 대항하여 함께 움직이기로 약조했다.
한성을 향해 북상하는 전라 순찰사 이광이 이끄는 삼도근왕군은 용인에서 매복한 왜적의 군대에 산산이 부서지고 호남의 군사들은 모두 흩어졌다.
그럼에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담양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이 전라땅 전역에 날아들었고 양형과 함께 용사들을 이끌고 위기투합하며 담양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고경명 선생.
오래전 조정에 몸을 담았고 지난해 동래부사로 재직했으나 서인들의 실각과 함께 선생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패주한 관군들을 수습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여기 담양에서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합류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고 매일 마다 나와 양형을 불러 머리를 맞대고 나아가야 할 우리의 방향을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담양으로 모여들었다. 순찰사가 용인에서 대패한 이후 호남의 사람들은 관군보다 우리에게 더 힘을 실어주었고 어느덧 육천이 넘는 용사들이 결집했다. 바다에서는 우리 수군의 연전연승이 이어졌다. 선생께서는 이에 힘입어 육전에서도 전승하기를 갈망하며 육천이 넘는 의로운 용사들 앞에서 뜨거운 결의를 다졌다.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의 군세를 담양회맹군이라 명명했다. 우린 거룩한 뜻을 품고 주상을 호위하기 위해 파천의 길을 따라 의주를 향해 호기롭게 북상했다.
간악한 왜적들이 호남을 향해 몰려온다는 첩보가 들려왔다. 선생께서는 호남을 온전히 보전해야만 간악한 왜적에 맞서 싸울 수 있다며 모두를 설득하여 호남을 방어하기 위해 작전을 변경했다. 주상을 향한 진군을 멈추고 금산에서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빠르게 회군했지만 금산은 이미 적들의 수중에 떨어진 뒤였다.
금산을 탈환하자는 선생의 의지가 매우 강력했다. 전주의 관군과 의병장 조헌에게 서신을 보내 금산의 왜적을 공격할 때 협공할 것을 부탁한 뒤 우리 담양회맹군은 금산으로 진격했다.
금산의 외곽에는 이미 방어사 곽영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린 그들과 합류해 읍성을 포위하며 공세에 돌입했지만 왜적들은 성 위에서 조총을 쏘아댈 뿐 성문을 굳게 닫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튼튼한 성곽과 수시로 날아오는 탄환 때문에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 성벽에서 물러난다 싶으면 어김없이 놈들이 튀어나와 사격을 가하고 되돌아갔다. 관군은 우리보다 더 소극적으로 포위망을 펼쳤고 다가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황에 전장은 어느새 어둠으로 물들며 더 이상의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전 직후 뜨겁게 들끓던 우리의 기세는 놈들의 견제와 방해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
포위를 유지한 채 선생과 방어사 그리고 여러 의병장들이 막사로 모였다. 쉽지 않은 전투에 모두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우리 중에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곽영이 입을 열었다. 웅치를 넘으려던 왜적들이 아군의 분전에 고전하다 후퇴하여 이곳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금산을 포기하고 물러나자 하였다. 대부분은 이 말을 듣고 전의가 꺾이며 물러날 마음을 굳혔겠지만 선생은 표정에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해가 뜨면 더욱 강공을 취하자고 모두를 설득했다. 곽영이 재차 선생을 만류했다. 물러난 뒤 병력을 온전히 보전한 채 순찰사의 본대와 함께 작전을 펼친다면 파죽지세로 적을 격파하는 전라 수영의 군세처럼 우리 역시 육전에서 연승할 것이라며 거듭 퇴각할 것을 종용했다. 그럼에도 선생의 입장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었다. 곽영은 생각을 바꿔 우리들에게 물라날 것을 권유했지만 우린 담양회맹군이었다. 병을 얻어 거동이 불편해진 양 형조차 선생에게 예를 갖추더니 가장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모두는 선생과 뜻을 함께하기로 맹세했다.
밤이 깊어지자 놈들이 수시로 탄환을 난사하며 괴성을 질러댔고 우리 군사들은 전투의 피로를 풀지 못한 채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동이 틀 무렵 곽영의 부대에서 공수한 화포를 가져와 성문을 향해 포탄을 날리며 공격이 시작되었다. 밤새도록 당하기만 했던 우리 군사들은 수 십 배로 되갚아 주리라 다짐하며 탄환이 쏟아지는 성벽으로 질주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날렵한 이들이 성벽으로 들러붙어 불을 질러 놈들의 시야를 가렸다. 성 내로 날아든 비격진천뢰는 왜적 여럿을 순식간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담양회맹군의 모두는 성문을 돌파하기 위해 필사의 강공을 펼쳤다.
하지만 균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시종일관 소극적인 작전을 펼치던 관군을 향해 왜적들은 지독한 집중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난입한 왜적들이 곽영의 진을 불태우며 습격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곽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관군은 붕괴되며 모두 전장을 이탈했다.
관군에게 집중되던 공격이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놈들의 강력한 화력 앞에 우리 군사 수백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적들의 눈앞에서 타오르던 불길과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는 오히려 우리의 눈을 가렸고 성벽 위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탄환은 우리의 귀를 멀게 만들었다. 갑자기 난입한 왜적들이 온 사방을 활개 치더니 성안에서 꼼짝 않던 놈들까지 튀어나와 칼날을 휘둘렀다.
저 멀리 양형과 의병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왜적들의 괴성에 파묻혀 사라졌다.
전열에서 싸우던 이들이 모두 전사했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반전을 노릴 뾰족한 묘책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피투성이의 안영과 마주쳤고 함께 난전을 펼치고 있는 선생에게 합류했다. 우린 담양회맹군의 이름을 여기서 잃어서는 안 된다고 선생에게 후퇴하기를 조심히 권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선생이 그 결의를 굽혀 물러나길 바랬지만 그는 금산 읍성을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패장에게는 죽음뿐이니 나 혼자만이라도 공격하겠다."
선생을 두고 물러날 수가 없었다.
우린 와은평 전장의 마지막까지 피어있는 불굴의 담양회맹군이었다.
-------------------------
『 수 백발의 탄환이 유팽로 안영 고경명의 부대에 쏟아지며 한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두 전사했다.
이들의 죽음을 목도한 고경명의 아들 고인후가 남아있는 담양회맹군을 이끌며 분전했지만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관군을 뛰어넘는 대규모 군세였지만 금산에서 모두 산화하며 관군과 의병들이 버티는 호남에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담양회맹군의 혈전으로 권율은 이치 고개를 지켜낼 수 있었고 분기탱천한 호남의 의병들은 곳곳에 주둔 중인 왜적들의 보급을 철저히 차단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