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하나 Mar 24. 2021

여행할 수 없는 시대에 여행하는 법

낯선 골목 누비기

1.

요즘은 정말 걷고 싶은데

걸을 짬을 못 찾고 있다.


주말 내내 아이가 열이 나서

샴쌍둥이처럼 붙어있었다.


아픈 아이를 간호하며

집콕 방콕 침대 콕했다.


' 아.. 걷고 싶다.

사지 흔들며 뛰고 싶다!!!!' 






2.


월요일 아침.

직장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망설이다가

작은 일탈을 시도해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30분 알람을 맞춘다.

언제든 걸을 수 있게 차 안에 킵해놓은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딱 30분만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본다.



새콤한 날씨에 정신이 바짝 난다.

거짓말같이 파란 하늘과 새소리가 현실을 잊게 한다.



돈 꽤나 있는 복부인이 집을 고르는 것처럼

집들 사이를 하염없이 걸었다.


평생 살아본 적 없고

앞으로도 살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멋진 이층 집들이 즐비하다.



감탄하며 감상한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


아름답다.



균형. 색채. 하늘.



여기.. 어디?


난.. 누구?


파주 출판도시인가?


아니지...



베버리 힐즈인가?


아닌데...


현실감이 제로였다가,

어느 집 정원에 놓인 낯익은 유아용 킥보드를 보고.

'아. 여기 한국이지' 한다.


살아보고 싶다.


'왜 안돼? 살아보면 되지?'


이런 집이 당최 얼마를 하는지

 전혀 없는 나는

모르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허세도 부려본다.




덤으로 얻은 선물.


정갈한 이미지의 현대미술 갤러리.


꺄아..

제발 오래도록 생존해주길.

조만간 널 방문할께.



뭘 하는지 모르겠는 신비로운 공간,

 '마음 공작소' 라는 곳도 발견.






짧은 일탈을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하다.

 

사람이 없으니 여행할 맛이 나네.

역시 여행은 평일이 제맛이야.




3.



여행할 수 없는 시대에 여행하는 법을 알게 됐다.


낯선 골목을 혼자 걷기.


그걸로 충분하구나.


안 가본 아무 역이나 내려서 30분만 걸으면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겠어.


기쁘다.

설렌다.

가볍다.


내가 싸돌아 다닌 기록을 보니  

이 골목 저 골목 헤집고 다니는 길고양이 같다.


코로나 종식을 고대하며

짬짬이 여행을 즐기는 길고양이가 돼보자고.




러닝 어플이 알려준 내 동선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이 될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