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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 아름다운 순간들
여행할 수 없는 시대에 여행하는 법
낯선 골목 누비기
by
유하나
Mar 24. 2021
1.
요즘은 정말 걷고 싶은데
걸을 짬을 못 찾고 있다.
주말 내내 아이가 열이 나서
샴쌍둥이처럼 붙어있었다.
아픈 아이를 간호하며
집콕 방콕 침대 콕했다.
' 아.. 걷고 싶다.
사지 흔들며 뛰고 싶다!!!!'
2.
월요일 아침.
직장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망설이다가
작은 일탈을 시도해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30분 알람을
맞춘다
.
언제든 걸을 수 있게 차 안에 킵해놓은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딱 30분만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본다.
새콤한 날씨에 정신이 바짝 난다.
거짓말같이 파란 하늘과 새소리가 현실을 잊게 한다.
돈 꽤나 있는 복부인이 집을 고르는 것처럼
집들 사이를 하염없이 걸었다.
평생 살아본 적 없고
앞으로도 살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멋진 이층 집들이 즐비하다.
감탄하며 감상한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
아름답다.
균형. 색채. 하늘.
여기.. 어디?
난.. 누구?
파주 출판도시인가?
아니지...
베버리 힐즈인가?
아닌데...
현실감이 제로였다가,
어느 집 정원에 놓인 낯익은 유아용 킥보드를 보고.
'아. 여기 한국이지' 한다.
살아보고 싶다.
'왜 안돼? 살아보면 되지?'
이런 집이 당최 얼마를 하는지
감이 전혀 없는 나는
모르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허세도 부려본다.
덤으로 얻은 선물.
정갈한 이미지의 현대미술 갤러리.
꺄아..
제발 오래도록 생존해주길.
조만간 널 방문할께.
뭘 하는지 모르겠는 신비로운 공간,
'마음 공작소' 라는 곳도 발견.
짧은 일탈을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하다.
사람이 없으니 여행할 맛이 나네.
역시 여행은 평일이 제맛이야.
3.
여행할 수 없는 시대에 여행하는 법을 알게 됐다.
낯선 골목을 혼자 걷기.
그걸로 충분하구나.
안 가본 아무 역이나 내려서 30분만 걸으면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겠어.
기쁘다.
설렌다.
가볍다.
내가 싸돌아 다닌 기록을 보니
이 골목 저 골목 헤집고 다니는 길고양이 같다.
코로나 종식을 고대하며
짬짬이 여행을 즐기는 길고양이가 돼보자고.
러닝 어플이 알려준 내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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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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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난감함을 나누는 식탁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읽고 쓰고 나누는 행위가 지니는 생명력과 치유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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