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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Apr 07. 2021

선생님 산책하고 오면 안돼요?

1.


 "선생님 자습 때 산책하고 오면 안돼요?"


"안될까 될까~"





"안돼요....

근데 왜 안돼요?"


"수업에 출석했다는 건 이 교실에 있었다는 뜻이지?

조퇴를 해도 되는데 어떻게 할래?"





"후~~~~~~"

(엎드림)







이번 학기는

고3에게  수능특강을

고2에게 실용영어와 진로를 가르치게 되었다.



진로 시간에

학습태도진단지와 진로결정유형진단지를 풀어보게 하고

학생마다 속도가 천차만별이라

먼저 다한 사람은 자습을 하라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산책을 다녀오겠다 한다.







2.

신경이 쓰인다.


진단지가 아니라

너의 마음이.


모르는 척을 할 수도 있는데

아는 척을 하기로 한다.


귀에 대고 조용히 묻는다.


"왜 산책하면 안 되냐고 물었어?"


"그냥..

기분 전환하고 싶어서요.

아무것도 지금은 못하겠어요"



"응. 그랬구나"



딱히 대안이 없어  

식상하기 그지없는 '구나~'를 뱉어버리고 만다.


교실에 적막이 흐른다.

묻기도 그렇다.


아이는 다시 엎드리고

나는 다시 교탁으로 간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창문 너머 봄볕을 보

너의 시의적절하지 않은 산책 타령에 깊이 공감한다.



'얘야.

나도 지금 산책이 얼마나 고픈지 몰라.'





3.

대상포진으로 일주일간 몸을 사리고 있다.

사실 사릴 것도 없다.

집에 오면 그냥 기절이다.


일부러 누워있고

걷기조차 마다하고 휴식했다.


일주일 되니 몸이 근질근질 찌뿌둥.


아...

아파트 네모랑 학교 네모에 못 있겠네!

숨쉬기도 아까운 봄날에!



참지 못하고 오늘 아침

일하기 전 5분 산책을 개시했다.


5분을 정해놓고 정처 없이 걷는다.


발걸음을 따라

영혼이 봄처럼 소생한다.




두껍디 두꺼운 기둥을 뚫고 나오는 여린 잎새.


세상 신기해서 한참을 본다.


너에게서 오늘을 살 힘을 얻는다.







유머러스한 연석에 웃음이 난다.

전시회에 온  같다.









마지막 잎새보다는 덜 애처로운

크고 탐스러운 마지막 목련.


화려이 홀로 활짝 핀 너를

기억해줄게.








사방에 펼쳐진 꽃 비단길도

아침엔 오로지 내 것이다.




그리고 어제 뜬금없이

산책을 다녀오겠다던 아이를 떠올린다.



그 시간이 끝나고 너도 나처럼

교실을 뛰쳐나가 이런 시간을 누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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