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하나 Apr 05. 2021

또 한 번 사랑한다 말한다(0405)

1.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여러 번 고쳐 쓰고 다시 쓴다.


썼던걸 다 지우고

핵심만 다시 적어본다.


내게..



10줄까지 쓸 수 있다는데

1줄도 안차네?


300원이 아깝다.


아니다.

아깝지 않다.


그런데 적은 것을 다시 보니 

난감하다.


고심한 것에 비해 너무나 식상해서 

몸서리가 쳐진다.




그래도 어쩌나.


진심인걸.




2.

할머니의 치매가 가속화되며

12시간씩 주무신단다.


6개월 전까지도 반찬을 하셨는데

부엌일에도 손을 점점 놓으신단다.


밥심으로 사시는 할아버지!


칸트처럼 시간 맞춰

고봉밥을 드시는 할아버지 인생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주 할아버지 댁을 기습 방문했다.


차려진 반찬을 보는데 속이 상한다.


이마트에서 샀다는 반찬 세 개는

먹을 수 없을 만큼 짜다.


'어떻게 먹으라고 이런 걸 팔아!'


화가 난다.


고모할머니들이 가져다준 밑반찬은

딱 봐도 오래됐다.


남편과 얼린 설렁탕 10개를 냉동실에 넣고 돌아오는 길.


반찬 택배를 검색해서 나물들을 당장 주문했다.

 

결국 이 업체는

경비아저씨가 새벽에 문을 열어주지 않아

요란한 새벽 배송을 해버린다.


새벽 2시 반.

자는 할아버지께 반찬 가져왔다고 인터폰을  한 것이다.


격분한 할아버지는


"정신 나간 사람들 아니냐?

반찬 몇 개 준다고 사람을 새벽에 나오라고 한다냐?

됐다!

내가 알아서 할 거다!

거기에 절대 시키지 마라!"


덕분에 욕만 뒤지게 들었다.



3.


그 뒤로 87철수 씨는

파는 건 여러모로 시원치 않다며

생전 처음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매번 할아버지의 문자를 보며 감탄한다.


어찌 노인분이

이렇게 감정표현을 잘할까?


평소 솔직함 또한 순도 백 프로에 가까워

행간을 읽어야 하는 피곤함도 없다.


대화법을 안 배워도

저리 능숙한 사람이 있나?.


대화방식마저

흙수저와 금수저가 있을까

상상한다.


본인 마음이 즐겁다시니

스르르 안심이 됐다.


자립하고 싶은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러

내게 익숙한 짓을 한다.


한식 레시피만 담겨있으면 되니

베스트셀러 중에 후다닥

책을 쉽게 고른다.


광고 그대로

진짜 쉽고 진짜 맛있기를!


오후2시에서 8시 배송이라는 글귀에 안심한다.


책과 함께 갈 카드에

이유 없이 또 한 번 

사랑한다 말한다.



이 책이 할아버지의 일상에 기쁨이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몸의 월말 정산(March)-대상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