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하나 Apr 02. 2021

몸의 월말 정산(March)-대상포진

1.

3월 31일'월말 정산' 글을 쓴 딱 그날부터

몸도 기다렸다는 듯 자기표현을 시작했다.



 '너.. 신났구나?

근데 월말 정산은 이거다! 알겠냐?!'


학교폭력을 폭로하듯

학대받은 것을 폭로한다.




지난 주말

코로나로 몇 달이나 미뤄졌던 교육을 다녀왔다.


월화수 목금금 금월화.. 하려는데

몸이 급브레이크를 건다.


3월 한 달간 몸과 마음이 과부하 기는 했다.


인정!




2.


전기구이 통닭이 된 것처럼

겨드랑이 쪽이 찌릿했다.


이 전기충격의 가장 악독한 점은

'규칙성이 없다'는 것이다.


1.2.3 찌릿! 1 찌릿! 1234567 찌릿! 123456 찌릿! 12 찌릿!


아픈 부위가 미친 듯이 간지럽더니

뾰록! 뾰록!

뾰루지 가족이 생겼다.


대상포진이네!



단번에 자가진단 후 초록장 검색에 돌입한다.


건강과 관련해 두리뭉실하게 초록창을 검색하다 보면

검색어는 달라도 결론은 늘 암이다.


기승전암.



약은 약사에게  진단은 의사에게.



당연한 명제를 잊고

내가 의사라도 되는 . 초록창을 헤맨다.

손이 얼얼하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이번에도  녹색창 자가진단 후

최악의 정보와 만난다.


대상포진이 퍼져서 눈으로 가면 실명 이래나..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먹지 않으면

신경통 부작용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데나.


첨부된 사진을 보니 섬뜩하다.


지금 증상이 있은지 48시간은 지났는데..


조급함과 두려움에 휩싸여

새벽 4시.


어차피 아파서 잠도 안 와.

아이 잘 때 병원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내쪽에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됐다규!


"제가 대상포진 같은데 지금 가도 되나요?"


근처에 있는 24시간 진료실을 검색해서

내 딴에는 용기 내어 전화한다.



"사지절단 등 응급상황만 받습니다."


심드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무안해져서 비폭력대화고 뭐고 괜히 비난한다.


 '나한테는 응급이거든?

그래! 니 똥 크다! 흥칫뿡! '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니 오히려 차분해진다.

타이레놀을 먹고 잠을 청한다.




3.

몸의 파업을 보며

마음이 심란하다.


대상포진이 맞았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첫째도 휴식 둘째도 휴식이란다.


첫 번째 반응은 자책이었다.


'너 엄마 꼴 나고 싶냐!?'


사나운 힐책이 마음을 할퀸다.

의기소침해지고 위축된다.



두 번째 반응은 두려움이었다.


'숨겨야겠다..'


아픈 게 죄는 아닌데

죄책감과 수치심이 든다.


무능력을 알리는 것만 같다.


이런저런 마음에 대해 쓰려면

쓸 수도 쓰겠지만

오늘은 무리하지 않으련다.



4.

대신

몸이 나에게 내민 강경카드를 받아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


반갑진 않지만

일이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가다듬고

의 목소리를 경청해보기로 한다.


상대는 꽤나 단도직입적이다.


'복직했지? 다 할 수 없어. 니 삶을 구조 조정해'


'그동안 먹혔던 니 신념도 바꿀 게 있는지 검토해'


'네가 다하려고 하지 마'


' 그리고 너!

좀 돌봐줘!

 생각보다 난 돌봄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울컥한다.


말로는 나를 비난 하나


사랑해달라는 거구나.

돌봐달라는 거구나.

지켜달라는 거구나.


진심이 들리니

긴장이 풀린다.


미안해~

혹사시켜서~


고마워~

말해줘서~


심장마비처럼 second chance가 없는 통보가 아니다.


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대상포진이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월말 정산(March,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