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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Mar 31. 2021

삶의 월말 정산(March,2021)

1. 월말 정산


합정.3월



어인일로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며칠간 과잉 수면을 했더니 몸이 가볍다.

'월말 정산을 해볼까'하고 얼른 식탁으로 기어 나온다.


오늘은 31일.


태양력이란 것이 인위적인 것이. 싶다가도

다 쓸데가 있다.


말일이 있으니

첫날도 있고

그래서 일 년에 열두 번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난달과 오는 달 사이에 서 있다.


하나의 문을 닫고

또 하나의 문을 연다.




2. 3월을 애도하며

 

1) 아이와의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낯설고 걱정되고 아쉽다.


서로가 꽤나 피곤한 저녁 2-3시간이 전부다.


그 시간마저

씻고 씻기기, 오늘 짐 정리, 내일 준비하기 등으로 가득 찬다. 


가뜩이나 없는 시간 안에

두 마음이 갈등한다.


'좀 더 아이와 현존하고 싶다.'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짧지만 서로의 눈을 보고 진심을 나누고 싶다.

지금 내 마음에 생동하는 것을 말하고 싶다.


"준아. 엄마가 너랑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된다"


매일매일 성큼성큼 크는 너를 붙잡고 싶다.

다시는 안 올 '오늘의 너'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싶다.




한편,

'와...... 일하면 앞으로 애 어떻게 공부시키냐?!'


한숨이 나온다.


아직 되지도 않은 '학부모' 마인드가 되고 자빠졌다.


조바심이 난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동화책 읽기 습관

씨가 말랐다.


코로나 기간 동안 붙어지내며

아이 심장에 책 읽는 재미 불이 붙었었다.


2월까지만 해도

"엄마! 또! 또! 또 읽어줘!" 했었다.


이제 막 타오르려던 재미 불꽃이

조용히 사그라드는 것 같다.


그걸 무기력하게 보고 있자니

안타깝고 아쉽고 슬프다.  


사교육 덜 시키고 책 읽히려 했는데,

보다 문제집보다 책을 쥐어 주려 했는데,

'일을 하면서 이게 가능한 것인가?' 회의가 든다.



staying home mom은 그럼 쉽냐?


절대 아니지.

해봐서 알잖아?


그래도 그때는 '선택의 문제'였다.


빨래를 나중에 하기로 선택하고 애랑 앉아서 책을 보면 됐었다.

밥을 대충 하거나 시켜버리고 애랑 책을 보면 됐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전업맘의 고통은 여기서 오는구나?


집에 24시간 있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안 하고 있는 나를 보는 고통)


지금은

애 잘 때 나가고,

애 얼굴이 피곤에 절었을 때 들어온다.


'잘 때나마 읽어주자'하며 책 한 권을 들고 오면

한 권을 채 못 듣고 쌔근쌔근 자더라.


이렇게 저렇게 책의 바다는 닫히고

유튜브의 바다가 열릴뻔했다.


시댁 거실에 떡하니 있는 티브이.

핑크퐁. 타요. 베이비버스..계속해서 열리는 유튜브 창에 눈 뒤집어져서

아이가 리모컨을 숨긴다.


아침부터 유튜브를 켜주면

유치원 안 가고 계속 볼 거라고 울며 떼를 쓴다.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책의 바다는 닫히더라도

미디어의 수문이 열리게 할 수 없지'하며

전투태세가 되었다.


이러저러한 과정 끝에

유튜브는 틀어주지 않기로 시부모님과 단기 협약을 맺는다.



'애가 저렇게 좋아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는 엄니께

내가 생각해도 명대사를 날리며.


"어머님.

유튜브는 라면이에요

라면 끓여서 앞에 놔주면 밥을 먹겠어요?

건강한 반찬들 먹겠냐고요~"



  


2) 다르디 다른 육아방식


2013년 결혼 후 최근까지

시엄마와 부딪힐 일이 없었다.


허나. 지난 3월 한 달은

사람마다 양육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이론으로 배운 비폭력 대화를 실험할 수 있게  것이다.

(애도라고 썼지만, 축하인가 싶다)


그냥 둘 수밖에 없다 판단되면

내버려 둔다.


내버려 두는 것이 아무리 자발적 선택이라 해도

스트레스는 있더라.


가슴이 답답하고 걱정이 된다.

 

한편, '조율할만하다, 조율해야 한다.' 싶은 순간도 있다.

이때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대화는

직선적이거나 우회적이고

겨우 비폭력적이거나

대놓고 폭력적이다.


방법이야 어쨌든

진심을 담으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직장 일보다 

여기에 더 마음이 쓰인다.


역시 일보다 관계.


그게 우리 삶에서 에너지를 뺐고

에너지를 운다.







3. 3월을 축하하다.




1) 나름 순조롭게 직장에 적응했다.


다니고 보니 생각지 못한 좋은 점들이 많다.

몇 년 만에 월급도 받았다!




2) 준이도 유치원 생활에 꽤나 잘 적응했다.



집에 오면 유치원 이야기도 곧잘 해준다.


"나는 친구가~박서준도 있고~ 지우도 있고~ 

나 오늘은 친구 두 명 더 사귈 거예요!"


"어제는 소원을 빌었어요.

미세먼지가 없어서 실외 놀이터에서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안심된다.

기쁘다.

자랑스럽다.




3) 시엄니가 자녀 등 하원과 밥 기획 부문을

내 삶에서 떼어가셨다.



오랜만에 삶이 훅~가벼워져 눈물이 날 지경!!!!

 

난...

직장이 낫더라.


등 하원이 좀 쉽냐.

밥 먹이기도 한 세월, 이 닦기도 한세월, 옷 입고 나서기까지 아주 한 세월.

현관에서 매번 복장 터지고,

밥 기획은 또 얼마나 지겹고 never-ending인지.


아.....

손주 보기밥 기획에 탁월하신 어머니가 있어

정말 감사하다.

다행이다.




4. 3월을 기록하다.


1) 돈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고 있는지는

삶에 대한 엄청난 정보다.


가계부 어플도 몇 개 정도 써봤지만,

손으로 기록하는 '맛'을 알아버리고는

공책 한 권에 쓴다.


오늘 3월 정산해볼 예정.





 2) 읽기


- 임계장 이야기: 완독, 정독


- 나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앞부분 정독, 그 뒤 술렁독


(이거 따라 하다가 피 봄.

새벽에 일어나는 나를 따라 애도 같이 일어나버리더니

수면이 모자란 애가 감기에 걸림.

덕분에 며칠간 일상 올스톱. 간호 풀서비스.

수면과 감기의 인과관계 증명 못하나 심증은 가득. 후회는 막급.

교훈: 책에 필 받아도 요지는 get 하되 적용은 상황 꺼)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읽는 중, 완독 희망, 좋다...




- 글의 품격: 읽는 중, 아마 그만 읽을 듯 (책 표지가 너무 예쁜데, 내용은 soso)

 




- 그 외 후루룩 읽은 아름다운 그림책들.




3) 쓰기


- 모닝데이트: 비공개 막씀용- 1번 씀

(4월엔 더 쓰고 싶다. 쓸수록 잡생각이 덜어진다)


- 영성일기: 하나님께 과 나누는 반공개 일기 - 10번 씀


- 브런치: 쓰던 매거진을 임시로 닫고, 새로운 매거진을 염. -13개 씀


'걷는 사람' 하정우가 있다면

쓰는 사람 유하나가 있다.


나는 쓰는 사람이구나.


써야 사는 사람이구나.




4) 걷기


- 5분 걷기 : 2-3일에 한번 차에서 내려 직장 들어가기 전에 걸음


- 30분 걷기: 일주일에 2번 정도, 퇴근 직후 또는 출근 전에.

 

- 작심삼일:

걷고 뛰고 싶어서 카톡플백도 신청하고 러닝 어플도 깔았으나

역시나 작심삼일.

며칠 하다가 인증이 귀찮아서 때려치움.

그냥 되는대로 내키는 대로 하련다~free style~



걸으면 보이는 것들





5) 아쉬운 부분


- 남편과의 로맨스 : 한 달간 맞벌이 부부로서의 전환에 급급하여 서바이벌 모드


- 걷기 외 운동 전무: 어쩔... 취미도 특기도 없는데 의지마저 없다


- 깊숙이 들어가는 '기도'가 없었다.

마침 사순절 기간이다.

내 안에 깊은 기도가 부활하기를 기도한다.


-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의식 셧다운: 4월에는 회복하고 싶은 영역


- 환경이슈: 자주 마주했으나 기록하거나 실천하지 못함. 이것 또한 회복하고 싶은 영역.



 

5. 오늘은


꽃을 사러 가봐야지.


3월을 살아낸 스스로 자축하며.


점심시간에는

직장 근처 꽃집을 찾아봐야겠다.


3월과 4월의 문지방에 서서

설레는 출근길.



 

 

굿바이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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