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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May 22. 2021

내가 돌볼 슬픈 어른

[샤부작 샤부작 비폭력대화] 정서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기

1.

'내가 돌볼 슬픈 어른'


왜 그렇게 돼버렸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까지

나도 모르게

'슬픈 어른들을 돌봐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매우 착하고 가끔 우울하고 자주 아팠던 엄마와


밖에서는 잘 나간다 하고 호인이라 하는데

집에 있는 코딱지 만한 시간에도 

주로 화가 나 있는 아빠.


두 분은 나를 아주 사랑한다 했다.

나만 보고 살았던 것도 같다.



거기에다 내 행방을 궁금해하며 하루에도 열 번이고 전화를 하는 할머니.


짜증 나 미치겠는데

그래서 오직 할머니 전화를 안 받으려

핸드폰 없이 한 달을 산적도 있는데


'전화받는데 돈이 드냐 뭐 가드냐.

못됐다.

그분은 옛날분이고 변할 수 없다

마음이 아프고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데.

네가 받아주고 이해해야 한다'말을 수시로 들었다.



엄마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이 핑계로 휴직을 오래 할 때도

(물론 일하기도 싫었지만)

슬픔과 절망에 깊이 빠진 이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구세주 콤플렉스'


이 콤플렉스는

알면서도 매번 빠지는 구덩이와 같다.



나는 늘 가족 안에서

지 할 일 잘 알아하는

의젓하고 밝은 아이였는데



어쩌면 평생을

이 아이처럼

어른들에게 차를 타다 날라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무릎에도

피딱지가 있는데.








2.

바로 다음 쪽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난다.


어른들이 참으로 멀쩡하다.


비록 아내를 잃고

딸을 잃었지만

최소한 요 꼬맹이에게 차 타 오는걸 의지할 만큼 망가져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가

어른을 돌본다고 애쓰는 것이 안쓰럽다.


어른들에게 괜스레 화가 난다.



나도 모르게

그림 속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야.

니 걱정이나 해.


니가 안 해도

다들 지 앞가림하고 살 거든?"




나에게 해주고픈 말이었을까.


금세 눈물이 고인다.


당황스럽다.

이까짓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동화책을 읽다

첫 페이지부터 눈물이 나다니.



차를 타오는 아이를 보는  아이의 아빠와 할머니




3.

결혼식날은

해방의 날이었다.


실제로 돌보는 것도 없으면서

내가 돌봐야 할 것 같은 원가족을 떠나는 날!


나는 아주 시원했고

섭섭하지는 않았다.



결혼생활은 다행히도

안전하고 튼튼한 요새 같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몇 년 동안

남편과의 관계 안에서

그동안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껏 쉬었다.



돌봐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없는

평등하고도 독립된 관계가

이렇게 건강하고도 가벼우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4.

결혼으로 한번 떠난 원가족.


그 원가족과

다시 새로운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

(돌아가신 엄마와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이게 지난 몇 년 동안 내 인생의  화두다.



이제 와서

착한 아이 코스프레도 벗고

정서적 노예 상태도 벗으려 하니

환청이 들리는 듯


며칠간 내부의 비난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네가 그렇게 모른척하면 되겠어?'

'그래도 네가 젤 젊고 멀쩡한 것 같은데 좀 더 힘을 내지?'

'네가 안 나서면 힘들어할 텐데. 실망할 텐데.

너 욕먹을 걸?'

'넌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너만 생각해?'

'지금까지 네 부모랑 조부모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걸 헌신했는데 짐으로 생각해?

진짜 너무하다'

'그분들처럼 널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배은망덕하기는!'



그냥 내 몸 하나 챙기며

가만히 있겠다는데.


정말 가만히만 있겠다는데.


이렇게 심한 힐난을 스스로에게 퍼붓다니.


나 노예 맞았구나?


새삼스럽게 놀란다.


나에게 성숙으로 가는 길.

자아의 죽음은

사방팔방 도와야 된다고 생각하며 차를 나르던 것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다.




5.

이 순간

내 마음 깊이 있는 소망을 꺼내본다.


지금이라도

가족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싶다.


부채의식과 의무감과 부담감이

덕지덕지 붙은 마음으로


무슨 날이니까.

해야 하니까.

안 하면 도리가 아닐까 봐 하는  그런 거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 

정말 연결되고 싶을 때

둘 중 하나가 원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온전히 수용하면서

기꺼이

깊이

솔직히 연결되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다.



지금이라도.




어떤 관계를 다시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서

마치 겉으로는

영원히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런 단절의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

내 무릎 상처를 잘 돌보아야 하겠다.



매끈매끈한 새살이 나올 때까지.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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