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9. 그놈의 미끄럼틀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ㅡ4화

by 유하나


1. 드물게 평화로운 오후


남동생과 4살, 6살 조카 둘이 집에 놀러 왔다.
웬일로 오늘 준이는 자기 장난감을 같이 갖고 노는 것에 굉장히 너그럽다.

가끔 아이들끼리 케미가 좀처럼 안 맞는 날이 있다.
눈 앞에 장난감이 수십 개여도

하나 가지고 사달이 나서 얘가 울었다~ 쟤가 울었다~한다.
그런 날은 엄마들의 신경 줄도 팽팽히 당겨진다.

오늘은 그런 날의 정반대 날이다.
셋이 꼬물꼬물 잘 논다.
'다 키웠네~' 생각하며 흐뭇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자유시간이 생겨 뛸 듯이 기쁘다.
이 시간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부엌으로 가서
남동생에게 커피 한잔을 내준다.

그리고는 남동생과
전혀 특별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친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코로나로 몇 달간 만나지 못해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모든 것이 예상외로 완벽하다!





2. 침입


그런데 그때.
안방 문을 열고 거실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 애들 잘 노네?''하더니 갑자기 베란다 쪽으로 간다.

베란다 유리문을 열고
(언제 닦은 지 기억도 안나는 먼지 쌓인! 아주 큰!)
미끄럼틀을 거실로 끌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왓... 더...?'


침입이다!


완벽한 순간을 깨뜨리는!
무심해서 더 잔인한 침입이다.

나는 부엌에 서서 미끄럼틀을 힘겹게 끌고 오는 그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으로 동공이 크게 확장된다.

나는 절박한 몸짓으로
두 손을 허공에 휘~ 휘~ 높이 젓는다.
'뒤로 가! 다시 들여보내라고~!'

'으응?'
그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아이들은 심상찮은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보고야 만다!

나는 한숨을 푹~쉬며 이제는 소리 내어 말한다.

'' 됐어~~~
벌써 봤어~~~~!
벌써 봤 버렸다고~~~~~
아니 지금 잘 놀고 있는데 그걸 왜 가지고 들어오냐고~! 닦지도 않았는데!''


울고 싶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앞다투어 미끄럼틀로 올라간다.


''애들 재밌게 놀리려고 했지~''
그는 억울하다.

남편의 의도는 투명하고 순수하다.
그렇다.
그는 늘 순수하다.
그게 문제다.

그의 행동이 뜬금없이 나에게 '자극'이 될 때.
나는 그 자극에 대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각이 안 나올 때가 있다.

나와야 하는 각은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온다.

게다가 의도의 순수함 때문에 그는 늘 쿨하다.

나도 쿨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그에 비해
구질구질 질척 질척 복잡한 것인가?

같은 걸 보고도 쿨한 사람 옆에 있으면
뭔가 지고 들어가는 것 같다.
나만 유난 떠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는 주섬주섬.
조리 더럽게 없게 말한다.

'' 나도~! 어~!?
애들 재밌게 노는 건 좋다고!
근데 미끄럼틀 가지고 놀면 애들이 신나서 흥분해서 사고가 자주나...(한숨)
그리고 준이는 특히 미끄럼틀 타면 백퍼 흥분한다고. 땀 엄청 흘리고 어제도 흥분해서 뛰어다니다가 감기도 어제 걸렸는데. 감기 걸려서 코로나에 취약해지면 어떡해!"

나도 안다.
비약이 쩐다..

흥분-> 감기-> 코로나.. 라니!

그는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는 표정이다.

감기와 코로나 운운했지만
사실 내 꿀휴식을 끝내버린 그를 몹시 원망하고 있었다.
선물처럼 찾아온 그 시간이
이렇게 어이없게 끝나버렸다는 게

아쉽고 힘이 쭈욱 빠졌다.

남동생과의 소통.

아이들로부터의 떨어진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

정서적 안정. 평안...

다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3. 당신이 책임져!!



애들이 미끄럼틀 타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지들끼리 자알 놀고 있었는데!
굳이. 왜? 왜? 왜? 왜?
갑자기 등장해서 그 물건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냐고ㅠㅠ
굳이. 왜 왜 왜 왜..?

저 미끄럼틀은
엄마 참여도를 최상으로 요구하는 놀잇감이다.

한 번은 준이가 너무 세게 내려오다
저 멀리 책장 모서리에 입술을 박아 피가 철철 났다.

다른 한 번은 친구 셋이 몸을 겹쳐서 내려오다가
한 아의 피부가 미끄럼틀에 세게 쓸려 화상을 입었다.

미끄럼틀 아래 딱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깊숙한 공간이 있는데
아이들은 자주 서로 들어가겠다고 육탄전을 벌인다.

그 외에도 중간중간 계속 나의 개입이 필요하다.

"쟤가 안 내려가요~"
"쟤가 거꾸로 올라와요~"
이르기 때문이다.

아.. 피곤해...

이런 이유로 여러 명이 노는 미끄럼틀 옆에는
어른 한 명이 붙어있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엄청난 의미가 담긴 미끄럼틀'을
무심코 꺼내다니!

아이들은 다른 방에 있던 볼풀장까지 거실로 끌고 와 이미 난리가 났다.

그런데, 그의 쿨내 진동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갑자기 그가 내 남동생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애들 잘 노니까 처남도 저쪽 방에 들어가서 눈 좀 붙여~''

그리고는 한 점 망설임도 없이
난리 굿판이 펼쳐진 거실을 뒤로하고
자기도 유유히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럼. 지금 이거 실화임?
그럼 저 애들은 누가 보라는 거지?
내가 당신이 미끄럼틀 꺼낼 때 맘에 안 들었지만 한번 참았는데!
근데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놓고
어딜 자러 가십니까?

으아~~~~!!
nvc고 뭐고 모르겠다!

그냥 꼴리는 대로 참지 못하고 내지르고 말았다.

'' 지금 어디가?!
다 들어가면 어쩌라고?''

답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투로 쏘았다.

'' 미끄럼틀은 누가 한 명 옆에서 봐야 돼.
여러 번 다쳤다고.
자기가 꺼냈잖아!
저녁 준비해야 돼!!! 자기 가봐!"


남편은 멈칫하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돌아서서 거실에 있는 1인용 소파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는 애들을 보랬더니 핸드폰을 본다.


' 그래!
그렇게라도 앉아 있으라고!'

잘 놀아달라는 게 아니었다.
왜~ 수영장에 세이프가드처럼
누군가는 그 옆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아이들 옆에 있어줄 수 있어요?"하고
곱게 부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강요가 하고 싶었다.
No Mercy!!!!!!

강요의 부작용이 그렇게 많다고 nvc책에 조목조목 쓰여있었고 그 내용에 크게 공감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일부러 강요를 해서라도 책임지게 만들고 싶었다.
당신이 저지른 일을 당신이 수습하시오~

말하고 싶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나는 종종 이렇게 무척이나 예민해진다.






4. 분노의 화신 in 부엌



동화책 《자꾸자꾸 화가나서》


한동안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다가 거실 쪽을 우연히 보았다.

어라?
남편이 없네?
애들만 덩그러니 놀고 있다.

부엌에서
안방 침대 끝에 꼼지락거리는 그의 발이 보인다.


순간 머리 끝까지 약이 올랐다.

아이 낳고 아이 키우며 3년 동안
수도 없이 느낀 뭔지 모르겠는 강렬한 분노가
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1단계ㅡ 갑자기 미끄럼틀을 꺼낸다.
2단계ㅡ 그러고는 남자 둘이 유유히 자러들어간다.
3단계ㅡ 있으라고 강요하니 조금 있다가 튄다.
( 남편 쪽에선 'again 별 의도 없이 졸려서 방으로 간다'일 것이다)

3단계에서 드디어 내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분노가 내 안에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나는 화가 없는 여자인 줄 알았다.
난 조신하고
절제력 있고
인내심이 많고
상냥하고
우아한 여자인 줄 알았다.

남도 속였고 나도 속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반갑지 않은 감정들이 너무나 내 것임이 분명하다.
너무 자주 강렬한 분노와 억울함이 찾아와
친근할 정도다.

온몸이 긴장되고
어깨가 뭉친다.
머리 쪽으로 열이 몰린다.


육아계의 포청천이라 불리는
오은영 박사님이 가르쳐준 대로 황급히 따라 해 본다.

'심호흡! 심호흡!
화나면 그 상황에서 몸을 돌려서 심호흡!!'


나도 혼자서 애 셋쯤은 하루 종일도 볼 수 있다!
만약 더한 것이 주어져도 어떻게든 해냈을 거고!

그런데 이건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금
애가 셋이고 어른도 셋인데.
내 동의 없이 남자 둘이 당연한 듯이!
내가 보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동의 따위는 구할 생각도 없이!
지금 나는 저녁 준비도 하고 있는데!

들어가서 자버리는 이 상황이 내 분노 포인트다!


육아는 기본값이 늘 나다!

나는 늘 고정이고
다른 사람은 옵션이고 도와주면 호혜다.


나는 일이 있으면 늘 봐달라고 하며
여기 굽신거리고 저기 굽신거리고
그들은 봐줄지 안 봐줄지 상황 봐서 선택한다.

엄마가 육아의 기본값인
이 문화. 이 배경. 이 맥락. 이 사고방식. 이 역사..
모르겠다.
그냥 뭉뚱그려서
다!
다!
다!
가부장제의 잔재가 묻은 사회정치경제역사 모~든 것에 구체적으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열불이 나는 것이다.


그게 수시로 조금 억울하고
가끔은 억울해서 죽겠다.

그들은 '너도 편하게 좀 해~'라고 쉽게 말한다.

그게 쉽지가 않다.

일단 애가 물고 늘어지고
나도 물고 늘어지는 애를 못 놓겠다.

평일에는 나한테 잘도 떨어져 노는 아이가
주말엔 더 이상해진다.
아빠가 자꾸 자기를 데려가려 한다 생각하는지.
나한테 더 붙는다.
나는 짜증이 난다.
애한테 짜증난다기보다
어찌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짜증 난다.
주말이면 '어른이 더 있으니까 육아가 더 쉽겠지' 생각했던 내 기대에

내가 먼저 희생량이 되고 만다.


나도 고정 패널 하기 싫고 '게스트' 하고 싶다.
나도 '선택' 좀 하고 싶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나는
24시간 일하는 워킹맘이다.

요즘도 늘 아이는 엄마엄마엄마.

아빠가 해준다 해도
''안돼. 엄마가.''

남편이 날 좀 쉬게 해 주려고 ''이리 와 봐. 읽어줄게''
해도
''안돼. 엄마가 읽어''

밥도.
''엄마가 옆에 앉아''

안아주는 것도
''엄마가 안아야 돼''

그러면 남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나도 시도는 해봤어'라는 당당함까지 등에 업고
아래의 모든 걸 할 수 있다.

1. 눕는다.
2. 잔다.
3. 존다.
4. 목적 없이 뒹굴뒹굴 쉰다.
5.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무한히 본다.
6.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다 졸다 웃는다.
1번부터 6번까지를 동시에 하기도 하고
순차적으로 하기도 한다.
모두 그의 자유다.

I C....
나는 그의 자유가 사무치게 부럽다.

나도 저런 종(species)였는데 말이지...
이제는 전혀 다른 종이 되어버렸다.
여성과 남성과는 다르다는 엄마종..

다른 엄마들은 다 어찌 사나.
다른 여자들은 아이와 자웅동체가 되어
부비부비 행복하게 잘만 지내는 것 같다.
쉽고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질투가 난다.
나도 육아가 쉽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싶다.

'나는 육아랑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나 보다..' 하며 이내 의기소침해진다.

모성이

만들어진 신화라는 걸 이미 책에서 읽었다.

사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
나 스스로 이미 알았다.

나에게 타고난 모성은 없다.

모성은 장착하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 아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부대낀다.
내가 낳은 아이를 힘들어하는 내가 참 맘에 안 든다.

엄마가 된다는 건
안 그래도 할 일이 오만가지인데
마음까지 다스려야 하는
안팎으로 아주 멀티를 요하는 직업인 것 같다.



5. 옆집을 보듯이


아이들은 내 염려와 달리 미끄럼틀에서 오래 놀지 않았다.
볼풀장으로 다 같이 들어가서 그럭저럭 잘 논다.

어쩌면 나의 미끄럼틀에 대한 반응은
남편의 생각대로 '오버'였는지도 모른다.

순간 내 '까봐병'을 알아챈다.

요즘 이상하게 까봐병이 깊어진다.
나는 우리 할머니의 까봐병만은 절대 닮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야금야금 닮아가는 내가 오싹하다.

아이가 생기면서 더하다.

다칠까 봐.
싸울까 봐.
남한테 미안한 일 생길까 봐.
미리 차단하려 한다.

늘 내 두려움의 깊은 곳에는
통제하고 싶고 예측하고 싶고 심신이 안전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이 잘 놀고 있고,
내 까봐병이 날 힘들게 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에 아까는 없었던 조그마한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을 둥지 삼아
아이들을 즐겁게 놀게 해주고 싶었던 남편의 동기가 아까보다는 공감이 된다.

그는 나와는 달리
아낌이나 계산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 이왕 자는 거 편하게 자라!' 선심 쓰며
안방에 켜있는 불을 꺼주고
조용히 잘 수 있게 문도 닫아준다.

휴식이 간절한 그를 위한
나의 사랑과 존중의 표현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그는 일어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한다.

아이와 완전히 분리돼야 온전히 쉴 수 있는
나를 위한 남편의 사랑의 표현이고 배려다.


나는 모두가 나간 뒤
초토화된 집을 바라본다.

가관이다.
블록. 자동차. 인형. 병원놀이. 미끄럼틀. 텐트. 볼풀공.. 모든 바닥이 뭔가로 가득 차있다.
볼풀 장서 흘러나온 공만 치우는데도 15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부엌 쪽도 마찬가지다.
애들 간식. 어른 커피. 저녁 준비했던 야채 쓰레기에. 아침 설거지까지....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내 마음과도 같다.


잠시 고민하다
'지금은 안 해!'하고
홱! 돌아선다.

얼마 전의 나였다면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며 청소와 설거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몹시 피곤해져서
왜 모두의 집인데 가사노동에 나만 이리 신경 써야 되냐며 짜증을 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최근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 걸
선택할 힘이 생겼다.

혼자 있을 때 내 심신을
'과하게!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잘 추스르는 쪽을 선택한다.

처음엔 가족들한테 미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 본 지 몇 번 되지 않아
이것이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내 배 부르고 내 몸 편하면 가족들에게 세상 너그러워진다.

육아는 탄수화물 빨, 체력빨이라는 말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알겠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이 뭔가를
'과하게 이기적으로 추구해봤자'
별 것도 안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외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다.

백화점에서 카드 할부로 명품을 사지도 않는다.

그저 영화 한 편을 보거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필기류를 사러 문구점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나가서 혼밥 하는 정도다.


그걸 알게 된 후부터

좀 홀가분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나를 돌보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날도.
모두가 나가고 난장판이 된 집구석을 마치 옆집 보듯이
'아~ 장난 아니구먼~'하고 흘려보고는.

올케가 사다준 맛있는 빵 쪼가리 하나를 들고
tv앞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푹신한 쿠션에 기대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미 몸과 마음이 노곤노곤 말랑말랑 해진다.

영화를 반쯤 보고 나서
새 기분. 새 마음. 새 몸이 되어.
의욕적으로 온 집안을 치웠다.

기꺼이 하니 순식간에 해낼 수 있었다.

이 맛에 중독이 되어

나를 더 자주 돌보게 된다.






6. 특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
새벽 2시다.

'엄마아~어디 갔어?~'
내 부재를 느끼고 준이가 깨서 울먹이며 나를 찾는다.

얼른 가서 '여깄지~'하며 안아준다.
머리를 쓸어 올려주고
베개를 다시 괴어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내 손을 꽉 잡고 있길래
나도 계속 잘 것처럼 아이 옆에 누워본다.

뒤에서 아이 몸을 겹쳐 안고
포동포동하고 부드러운 아이의 살을 껴안는다.

아이 정수리에 턱을 대고

아직은 아기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고
조그맣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어본다.

신비롭고 황홀하다.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다는 것.
생명이 자라나는 걸 함께한다는 것.


엄마의 특권이다.


그래...
이런 말로 형언 못할 엄마의 특권도 있는데
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는 걸까.

잃은 것을 되찾겠다고 투쟁하다
특권마저 전심으로 누리지 못하는
미련 방 퉁이가 되고 싶지 않다.

이 순간.
이 시절.
너무너무너무
고요하고 소중하다.

그 옆에
준이와 싱크로율 100프로에 가까운
한 남자가 보인다.

'육아는 체력 빨'에 이어,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게 되었다.

소중하지 당신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지.


언제부턴가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남편을 '육아 조력자 or 육아 방해꾼' 프레임으로만
보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 프레임에 꽉 갇혀 지냈다.

이 관계가 부부 사이에 건강한 관계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안다.
이 기준에 따라 내가 분노조절이 안되니 말이다.

그는 그저 그인데.
그는 아빠나 남편 이전에 그다.

엄마가 되고 나서 그를 '존재'로 보기가
왜 이렇게나 어려운 걸까?


난감하다.


조용히 방을 나오며 두 남자를 다시 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나의 만감을
토닥인다.




덧.


7개월 전에 썼던 글을 2020년 마지막 날 고쳐 썼다.


7개월 전인데, 남의 이야기 같구나.

내가 그때는 이렇게 힘들었나 싶다.


아이는 그 7개월 동안

똥오줌을 가리는 기술을 습득했고,

낮잠을 안자도 쌩쌩해졌고,

말이 부쩍 늘어 제법 대화가 되고,

아빠랑도 한결 친해졌다.


그만큼 나도 육아가 한결 가벼워졌다.

메뚜기도 한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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