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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ㅡ앎을 삶으로 만드는실험
2021.0101 겁 없는 시댁 vs 유도리 없는 친정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5화
by
유하나
Jan 2. 2021
1. 시댁 편
우리 시댁은 우리 집 바로 옆 동.
2020년 코로나가 강타했을 때
우리 부부는 시댁을 내 집 드나들듯이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더더욱 갈 데가 없어졌고,
셋이 집에 있는 게 너무도 지겨워질 때마다
그곳은 우리에게 제2의 집이 되었다.
맛있는 제철음식이 가득하고
언제 가도 '어서 오너라'하며 환대가 있는 곳.
게다가 기꺼이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시는 어머님이 계신 그곳은
바로 천국!
코로나의 기세가 거세지는 것에 비례하여
우리는 시부모님과 더욱 자주 만났다.
아가씨도 애 둘 데리고 있기 힘들 때마다
어머님 댁에 자주 왔고
우리는 자주 먹고 자고 놀고 한 집에서 뒹굴었다.
겁도 없이!
2. 친정 편
우리 친정은 우리 집 뒷동.
2020년 한 해 코로나가 강타했을 때
그 집은 친정이 아니라 꼭 '남의 집' 같이 되었다.
'방문이 민폐겠지?' 걱정하게 되는
코로나 시대의 남의 집.
일주일에 한 끼 함께 식사를 하던 관례도
언젠가부터 흐지부지되었고
'조심. 또 조심하자! '는 아빠의 말에
'오늘은 가볼까?' 했던 날도
'됐다. 가지 말자'하며 아이랑 그냥 집에 주저앉기 일쑤였다.
아빠는 2013년에 폐암 1기 판정을 받고 폐를 잘라냈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완치'는 없다는 것을.
그런 아빠가 먼저 나서서 조심하자는데
꾸역꾸역 갈 배짱은 없다.
폐 관련 기저질환자는 '조심 또 조심'하는 게 맞다.
경북 김천에 사는 동생 가족도 올해는 가뭄에 콩 나듯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보기에 '수도권'은 코로나가 득실거리는 곳이었고,
올라가겠다 할 때마다 집안 어른들이 상경을 극구 말렸다.
평소에 자주 방문했던 할아버지 댁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거듭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80대 노인이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걸리시면 바로 중환자'라며.
이래저래 친정과는
명절도, 기념일도 만남을 최소화하더니,
12월 말에 있었던 할아버지 생신은
급기야 아빠와 내가 각각 마스크 쓰고 잠시 방문으로 끝이 났다.
질병관리본부에서 표창장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아 진짜
유
도리도 없네!!
3. 뭔가 이상해
남편과 나는 갈수록 양극화되는 이 방문 패턴을 보며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남편은 친정아빠에게 '좀 거리감이 느껴진다'라고 고백했고,
'진짜 오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가 진심일까?' 걱정했다.
나는 시댁에 뻔질나게 가며
심심치 않아
좋으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로 모이지 말라는데 이렇게 자주 봐도 되나?
이렇게 밥을 계속 같이 먹어도 되는 거야?'
너무 다르니까
자꾸만 '판단'이라는 놈이 고개를 들려했다.
똑같은 상황에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4. 비폭력대화(nvc)를 몰랐다면..
비폭력대화를 몰랐다면,
시댁 가족은 '참 겁도 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고,
친정가족은 '유도리도 징하게 없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분들을 안다.
이분들의 과거를 알고,
맥락을 알고,
그래서 이분들의 마음 깊은 곳의 '욕구'를 안다.
시부모님은 원래
아들사랑이 지극하신 분인데
그 아들이 서른여섯까지 장가를 안 갔다.
어찌어찌하여 장가를 가서는
그 후에 또 4년 동안 아이가 안 생겨서
또 손주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그렇게 겨우 빠지려던 목을 간신히 잡고
장손을 봤는데,
'아니! 아들이 또 태어났나?' 하고 착각할
정도 정도의
비쥬얼이 태어났다.
그래서 이 장손은
어머님의 만성위염도 플라세보 효과로 치료해버리고
아버님의 적적한 은퇴 1년 차에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 되었다.
요즘에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면
갑자기 시어머님들이 멀리 이사를 가거나 안 가던 여행을 다니신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엄마 잃은 나를 불쌍해하며
손주 봐주시러 한달음에 이사를 오신 분이다.
그만큼, 시부모님에게 '가족'은 소중하다.
이분들에게는 '가족이 함께 있음'이 너무나 소중한 가치다.
모든 것을 걸만큼.
우리가 너네고,
너네가 우리다.
운명공동체라고나 할까?
반면,
요즘 친정에서 최고로 쳐주는 가치는
'신체적 안전'이다.
2년 전 갑작스럽게 친정엄마의 죽음을 겪은 우리 가족은 아직 그 트라우마에 깊이 잠겨있다.(고 본다.)
'신체적 안전'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아름다워 보이는 그 모든 다른 가치가 어떻게 소멸해버리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혹시'가 사람 잡았고,
'설마'의 끝은 죽음이었다.
엄마의 죽음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깊은 죄책감을 드리웠다.
'좀 더 엄마의 건강에 신경을 썼더라면!'
'우리가 좀 더 방심하지 않았다면!'
'좀 더 미리 조심했더라면!'
'서로의 안전을 챙겼더라면!'
코로나 때 극도로 멀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설마~'하고 방심했다가
우리 안에 또 하나의 비극을 초래해서는
안 되겠다는 비장한
결단인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두렵다.
가족 누군가가 아프고
가족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
그래서 또 끝도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까 봐 두렵다.
5.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는 시도이다."
<비폭력대화 1, p63>
오늘도 '함께 있음'이 중요한 시댁에서
우리는 떡국을 먹고
'신체적 안전'이 중요한 친정아빠와는 거리두기를 했다.
내 욕구는...
음...
'수용'이다.
그분들의 욕구를
그대로 '수용'해드리고 싶다.
'존중'해드리고 싶다.
이렇다 저렇다 따지지 않고
그분들의 경험과 느낌과 욕구와 행동을 수용하고 싶다.
돌아보니 오늘은
모두의 욕구가 충
족
된
아름다운 1월 1일이었구
나.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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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난감함을 나누는 식탁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읽고 쓰고 나누는 행위가 지니는 생명력과 치유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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