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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Aug 08. 2021

네 남자와의 밤

(제목으로 낚시질을 했다.


나는 분명 '낚시'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읽는 것은 그대의 몫이다.


요즘 '나도 모르게 클릭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제목 짓는 법'을 궁리 중이라 이런 만행을...)




1. 삼고초려당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한번.


그거를 못 기다리고

그냥 스스로 돌아왔다.



요즘에 브런치에 하도 글을 안쓰니까

브런치 회사가 나에게 친히 쪽지를 보냈다.



7월 18일 AI가 던진말


나 같은 사람에게 브런치가 이런 개인적이고 따뜻한 쪽지를 보내다니!



처음에는 감동했다.


순진하게시리.





그런데 8월의 어느 날.



7월과 완전히 동일한 메시지가 온 것을 보고,

'이것은 어장관리'구나.

직감함.


내 순진함에 스스로 민망해져,

'에이.. 내가 두 번 조르는 거에는 안 간다.

삼고초려하면 모를까!'


하고 아무도 모르는 억지를 부리다가


그 결단마저 까먹고

오늘 자진하여 돌아옴.




(몰랐니.. 나... 이런 쉬운 여자 ㅎㅎ)






2. 변명을 하자면


브런치는

나에게 세 번째 남편 정도 된다.


아 맞다.

네 번째 남편이다.

진짜 남편을 까먹었....미안..남편..


어쨌든.


남자 네 명이랑 살아봤냐고!!!!





가랑이 찢어진다고!!!






누가 그러랬냐고!!!?





아몰라~이렇게 생겨먹은걸!!!




게다가 낮에는 본업도 있는데

애도 있다.



그러니 밀회다운 밀회는

약 밤 10시부터 12시-1시 정도까지.


밤마다 뭔가를 홀린 듯 적어 내려가고 있는데,

네 다리를 걸치고

기분 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만나다 보니

밤 문화가 참으로 난잡하다. 





3. 편 외에 첫 번째 남편은 '예수 동행 일기'


-하나님께 쓰는 일기다.

-서로의 일기를 공유하는 안전한 모임이 있다.

- 관계는 10년이 넘었고  어제까지 1469건의 관계를 했다.

- 이를 닦고 자는 것처럼 어느새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한 줄을 쓸 때도 있다. (체력이 딸리거나 말할 기분이 아닐때)

-10년을 써오며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에라 모르겠다 일단 쓰고 보는 습관.

알 테면 알라지~공개하는 용기.

너의 난감함이나 나의 구질구질함이 비슷하구나 하는 안도.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는 근자감.





4. 두 번째 남편은 '비폭력대화 일지' 다.


예수 동행 일기에 못할 말이 따로 있지는  않다만.

이거는 그거랑 좀 결이 다르다.


거침이 없다고나 할까?


예수 동행 일기를 대하는 것과는 확실히 달라.


음.... 다르고 말고.


화끈하고 원색적이다.


별일도 아닌데 글이 이렇게 시작하곤 한다.


3일전 비폭력대화 일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애 앞에 대고 이 말을 하면

'화풀이'지만


애 앞에서 잠시 멈춤. 하고

애 재우고 새벽에 혼자 하는 마음 복기는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몸부림이다.  


애만 등장하는 건 아니고,

내 삶 속에 함께하는 온갖 사람이 등장한다.



비폭력대화 일지는 하도 여러 군데 써놔서

몇 개인지 집계하지 못하겠지만.

약 1년 반전부터 일주일에 1-2개는 쓰고 있으니 현재까지 약 100편은 쓴 듯하다.  







5. 그리고, 너.  브런치.


8개월째 접어드는 관계다.

따끈따끈한 시기지?



이 남자는 뭐랄까.


항상 같은 곳에서 바위처럼 받쳐주는 첫 번째 남자,

지지고 볶고 민낯을 거리낌 없이 나누는 두 번째 남자.


와는 달리.


아주 젊고 센티멘탈하고 패셔너블한 너.

그런데...

 '트로피 허즈밴드(trophy husband)' 같은 느낌?

(트로피 허즈밴드: 아내에게 지위 상징으로 간주되는 남편)


일단 처음 관계 맺기 위해 '문턱'이라는 게 있었고,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며 알랑 방귀를 뀌어주고

(손사래와는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


'브런치에 써요~' 하면

남들한테 뭔가 있어 보인다.



조회수와 구독자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알고리즘을 만들었으며,


첨부하는 사진과  글의 배열 등, 글의 내용 외에

시각적 이미지에도 꽤나 신경 쓰게 만들고,

(사진이 글을 산만하게 하는 느낌이 있어 경계 중이다.

그런데 한편, 사진이 주는 임팩트가 있어 이용 중이다.)




툭하면 콜라보 프로젝트와 공모전을 열어

'너 말고 나랑 알고 지내는 매력적인 여자는 수두룩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어

멤버끼리 질투심 조장하고

관계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고도의 전술을 구사한다.


아무튼

매력적이나

은근 신경이 많이 쓰이는 파트너.


꽃뱀.


저 거봐 저 거봐.


보름간 안 들어왔다고 메시지도 보내잖아?





6.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기.. 덥다고 팬티만 입고 거실을 돌아다니는 내 본 남편.

(팬티 입은 사진 첨부)




"자기 뭐 써?"


밤마다 나를 지나치며 종종 묻는다.



하지만 그는 대답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에게 'How are you?"같은 말인 것이다.


그는 신기하게도 내 글은 읽지를 않는다.

(사실 글이라는 것을 고3 때 놓아버린 것 같기도..)


살면서 남편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는데


내 글에는 관심이 없으니


나는 이 점이 참으로 신기하고

자유하다.


나 같으면 남편이 글을 쓴다고 하면

이 잡듯이 찾아 읽겠구먼...



본남편의 뜻밖의 무관심으로

나는 밤마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세 남자와 자유롭게 밀회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 그런데 왜 쓸까?



재미.


재밌어.








재밌어서 쓴다.




내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고

그 언어를 세공하는 재미.


그러니 잠도 안 자고 쓰고 자빠졌지.




삶이라는 아메바 같은 것이

보이고 들리고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명료해지고 다듬어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오늘도 썼다.


쓰고 보니 2시간이 걸렸다.


예수 동행 일기를 쓰는 데는 약 30초-길어도 30분을 넘기지 않고,

비폭력대화 일지도 30분을 넘기지 않는데.


브런치는 역시 쉽지 않은 남자다.

트로피 허즈밴드.


잘 쓴다는 소리 듣고 싶고

더 완벽한 것을 차리고 싶은 마음에

신경을 쓰곤 한다.




그리고 이제 12시.


육아동지 및 신앙동지 및

최근에는 형제애까지 느껴버리는

편안하디 편안한

팬티 입고 돌아다니는 저 남자 옆에 자러 가야지.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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