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아빠편(2020.0520)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7화

by 유하나


1. 날씨가 좋아서


내가 전화기를 든 건 날씨가 너무 좋아서였다.
아침 공기가 끝내줬다.
이건 몇 년 동안 못 맡아본 퀄리티다!

날씨가 좋으니 운동가시기 좋겠다고
반찬을 많이 샀는데 받고 싶은지 궁금했다.

분명히 전화의 의도는 선하디 선했다.


그런데 결론은 초등학생 말싸움, 기싸움이 되었다.

끊고서 생각했다.

'우와~
정말 어~쩜 이럴까?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안에 기분이 확 잡쳐질까?
어이없고 지친다...'

통화기록을 찾아보니 2분 54초다.
그런데 이렇게 강렬하게 불쾌하다니.



믿을 수 없다.





2. 대화 전문




(각색은 없고 기억의 한계와 편파성은 있다.)


아빠~ 방금 준이 어린이집에 델 다 주고 왔는데 날씨가 진~~~~ 짜 좋아! 완전 하와이야 하와이. 진~~~ 짜 청명해요! 우와~~


진~~~ 짜 좋지? 지금 창문 열어놨는데 정말 좋다. 오늘이 미세먼지가 10프로도 안 되는 날 이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안 움직여서 자연이 좀 쉰 대요~


그거~ 티브이에 나왔더라. 코로나랑 미세먼지랑 전~~~ 혀 관계가 없다고.
너같이 생각하는 애들 때문에 정치인들이 그걸 이용하는 거야!

(빈정이 확 상한다)
어떻게 전혀 관계가 없어~? 사람이 덜 움직이는데?
해양에도 배가 안 다녀서 해양생물들이 다시 살아난데~
그리고 내가 작년 미세먼지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3.4.5월 날씨가 가관도 아니었어요. 내가 확실히 기억이 나. 이래서 한국에서 살겠냐고 이민 가고 싶다고 했어!



응~ 그래~(비꼬는 말투로)
너 같은 애들이 있어서 가짜 뉴스가 먹고 사는 거야~
그걸로 정치인들이 코로나 이용해서 화력발전 못하게 하는 거지.
환경론자들이 또 그거 이용해 먹고.
기상학자가 저번에 나와서 이야기하더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오기가 생기고 화가 난다)
그 기상학자란 사람 말은 그럼 어떻게 믿어요?
그 사람 믿을만한 사람이에요?
확인해봤어요?
어디 소속인데요?
그리고 코로나랑 날씨 이야기랑, 정치 얘기는 분야가 다른 얘기죠.



응~~ 그 사람은 아~~~~ 주 믿을 만하지! 유명하시고~ 정직하시고~~



( 아.. 이제는 뭐 둘 다 완전 초딩이다...
인식했지만 멈출 수 없다)


정치인들이랑 환경론자들이랑 너 같은 애들을 이용하는 거야~
종교도 같은 거지~
종교도 다 사람들 속이는 거잖아?
사실이 아닌데 믿게 하는 거지~


(웬 종교까지? 화가 점점 더 나기 시작한다)
종교는 또 다른 얘기죠.


아니~ 같은 얘긴데?
종교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냐?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알겠어요.
저 이제 아침 먹을게요.



그래. 밥 먹어라.

(통화 종료)




길가다가 똥물 맞은 느낌이다.
내가 왜 괜히 전화란 걸 해서!

배가 꽤 고팠었는데 갑자기 밥맛도 뚝!이다.
뭘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도 싹 가신다.

됐다!
안 준다!

절망스럽다.
짜증 난다.

어쩜 이리 우리는 불통인가?
저 사람은 대체 대화방식이 왜 저따군가?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불같이 날까?
왜 약이 바짝 올라서 매번 그의 페이스에 속수무책 그대로 휩쓸려가는가?
왜 나아지지가 않는가?
왜 이렇게 대화법을 배우고 노력해도
한 수 위가 되어 여유롭게 받아지지가 않는가?


둘 다 모든 에너지를
'공격과 방어'하는데 썼다.

최악의 대화다.

말이야... 방귀야....

자칼의 대화로 서로를 할퀴었다.



<기린과 자칼이 함께 춤출때, 19p>






3.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비폭력대화 nvc 1, 114p>



나는 순전히 아빠 '때문에' 내 좋던 기분 잡쳤어!!!

라고 단정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비폭력대화(nvc)'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자극'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우리 느낌의 '원인'은 아니다."
<비폭력대화 89p>



자극은 맞는데~원인이 아니란다.

근데 왜 자극이 되냐?

그건 내 '안'의 어떤 욕구가 충족이 안돼서 그런 거란다.

찾아보자..
찾아보자.
나를 보자.

나는 코로나가 인류에겐 재앙 지만
자연에게는 꿀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활동을 안 하면 자연이 쉰다.

평소에도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구에게는 코로나와 같다고 생각해왔다.
하루 살겠다고 내가 내놓는 저 쓰레기 양을 보라!

공기가 이렇게 맑아지자
너무 기뻐서 그냥 평소 생각을 말한 것뿐이다.

그런데 되돌아온 건
공감은커녕 '너는 가짜 뉴스에 속는 애고
너 같은 애가 있어 정치. 종교가 인간을 속이기 쉽다.'
라는 비난이었다.

공감!

내가 원했던 건 '공기가 좋아서 기쁘지?' 했을 때 같이 기뻐하는 것이었다. 내 의도는 그뿐이었다.

그리고 존중.

날 향한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훅~ 들어와 날 비난한다.
정신을 못 차리겠다.

게다가, 나는 평소 '뉴스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안 그래도 한심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네가 그 그룹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으니 속이 뒤집어졌다.

평소에 미디어를 거의 안 보기 시작한 지 5년은 된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헤드라인만 확인해도 충분하다.
어느 매체든지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비판의 레이다를 잔뜩 치켜뜨고 읽는다.

이런 나에 대해 1도 모르면서!!!?
가짜 뉴스에 속는 애라고?

날 모르면서 '내가 널 안다'라고 확신하는 게 더 화난다.
나를 모른다고 인정하라고!


최근 일지를 적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아빠에게 분노 포인트의 끝은 항상 같은 말이 나온다.
(이런 걸 nvc에서는 '코어 자칼'이라고 하더라)


"나 알아요?
나에 대해 모르잖아요!!
왜 아는 체해요?"


흠...

정말 사춘기스럽다.
사춘기를 건강하게 소화해내지 못하고
대책 없이 늙어버린 것 같아 슬프고 당황스럽다.
지랄 총량의 법칙으로
저런 분노는 사춘기 때 다 발산했어야 했는데.
짧고 구욹게.

그때 너무나 순종적이었어서
지금 뒤끝 작렬 아주 구질구질하다.

특히, 마지막으로 종교이야기까지 했을 때
나는 급히 대화 종결을 원했다.
순간적으로 싸울 의지를 잃고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보호'를 위해 단절을 원했다.

이건 상처다.
아직 괜찮지 않다.

이건 엄마 투병 이후 아빠와 나 사이에 더 예민한 주제고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님이 고쳐준다며? 살려준다며?
기도하면 된다며?
종교 믿는 사람들은 입만 살아가지고!'

나를 조롱하는 게 아니라
부인이 죽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절규하는 거라고 애써 이해하곤 했다.
그래도 그 말이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을 순 없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으며 자기 보호를 했다.

나는 공감받고 싶었고,
존중받고 싶었고,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다.



4. 아빠의 욕구

<비폭력대화 nvc 1, 119p>


이번에는 '기린 귀 밖'으로 가서

아빠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빠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 그래도 내가 명색이 지 아빠인데 한 번을 안 지고 말대꾸냐?'
'어라? 근데 얘가 요새 갑자기 왜 들이밖지?'


맞다.
한 번을 안 졌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후회가 없다.


이제 자기표현 좀 하고 살고 싶다.
이제 와서 아빠 앞에서 '자기표현'의 욕구가 하늘을 찌른다
이 욕구는 평생 아빠 앞에서 만족된 적이 없는 욕구인데,
유년기엔 그가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 했고
청소년기엔 말도 섞기 싫어서 '안'했다.

사실 그냥 '네~ 네~' 하고 들어 드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빠라는 이유로
내가 표현하는 것을 '예의가 없다'없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억울하다.
그런 식의 대화는 평생 해와서 이제 정말 질린다.

나는 '상호성'을 원한다.
'소통'을 원한다.
'소통'이 없다면, 그 대화는'가짜'다.
각자 자기 말하는 것이다.
갈등이 없는 진정성 없는 대화보다
차라리 갈등 있는 대화가 더 '진정성' 있어 보인다.


난감한 것은 아빠는 말하는 걸 꽤나 즐기는데
그 내용이 거의 내가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라, 듣고 있는 것만으로 상당히 괴롭다.


종교 이슈.
젠터 이슈.
고용자ㅡ노동자 이슈.
세대 이슈.
정치 이슈 등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서 나와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
근데 말하는 건 겁나 좋아한다.
내가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비꼰다.
어쩌라고...

아빠도 '아빠로서 딸에게 받고 싶은 존중'의 욕구와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었나 보다.

어쩜!

내 욕구랑 똑같잖아?!!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아빠가 그렇게 파르르! 했던 건 사실 짚히는 구석이 있긴 있다.



아빠는 최근
'화력발전-기후 문제-코로나'관련된 이슈에 대해 매우 화가 나있는 상태이다.

그의 사업분야는 화력과 원자력 발전이었고
수십 년 동안 그 분야에서 고군분투하여 살아남았다.
이 필드는 아빠의 자존심이고 인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화력. 원자력을 비난하는 소리가 커진다.
공들여 따놓은 몇십억짜리 수주가 공사 취소로 줄줄이 취소된다.
재정의 어려움보다 더 아빠를 자극하는 것은.
자신이 평생 몸 담은 분야를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전문가와 정치가들의 비난이었다.

'화력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데!
아~~~ 무 것도 모르고
입만 살아있는 환경론자들이 문제야.
그럼 화력 안 하고! 원자력 안 하고!
응?
어떻게 공장 돌리고 먹고살겠다는 거야?'

'인정과 감사'에 목이 타들어가는 아빠의 레퍼토리다.
자신의 인생 전체의 '의미'를 찾고 싶은 아빠의 절규다.
근데 딸조차 자기한테 한 마디를 '안' 진다.

집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존중과 인정 욕구를 채울 수가 없다.
비폭력대화고 뭐 고는 평생 배운 적이 없다.
남을 향한 비난만 나온다.



4. 자기 등장한 인순이



나는 밥맛이 없다더니
밥을 산 만큼 퍼먹고 잤다.

한결 기분이 좋다.
역시. 기분 나쁠 때는 먹고, 자야 한다.
자기 돌봄 중에 기본 of the 기본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


어?
근데 그 사이. 아빠가 카톡을 보내 놨네?

참네~
그 어이없는 기상학자 동영상을 보낸 건가?
기어이 내가 틀렸다는 걸 말해주려고?

흥! 칫!
갑자기 내 몸이
싸움을 앞둔 쌈닭처럼 다시 한껏 긴장한다.

몸에 힘을 빡! 주고 동영상을 틀었는데.
엥?

인순이의 신나는 노래 동영상이다.
"조pd~예어~ 인순이~예어~"



뭐지?
어이가 없네.

아무 말 없이 이 동영상 하나다.

이런 건 평소에 보낸 적이 없는데?
나보고 신나게 살라는 건가? 뭐야? 병 주고 약 줘?
음... 미안하다는 것 까진 아닌 것 같고....
신경 쓰고 있다는 것 같다.


몰라. 어쨌든 신경 쓰고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조금 풀린다.

이 정도로 풀리려 하는 내가 싫지만.


오후 3시 반. 어린이집에 애를 데리러 간다.

근데 또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몇 시간 만에 뭐지?
전화할 특별한 용건은 없을 텐데?


그: 뭐하니?
나: 나? 지금 준이 데리러 가는데?
그: 그래~ 우리 딸 잘 데리고 와라~뚜. 뚜. 뚜


실컷 퍼먹고 자버린 나와는 달리
그는 그날 오후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전화를 해서 어쨌든 말을 건다는 것에 나는 한결 또 풀린다.

에이. 나 이렇게 쉬운 여자 닌데...




5.연결되고 싶어서



밤이 되어 남편이 들어왔다.
현관에 쪼르르 달려가서 남편에게 거두절미하고 묻는다.

''코로나 이후로 환경이 좀 깨끗해진 건 팩트지??''

''뭐~ 흠.. 그렇지~ 중국 같은 데서 공장을 덜 돌리고 하니깐.
인도 사진 못 봤어? 차를 못 다니게 해서 대기가 엄~청 깨끗해진 거? 근데 왜?''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생각도 없이 한껏 의기양양해진다.
내가 아빠를 이긴 것만 같다.
한껏 우쭐하다.

정신연령이 4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밴댕이다.

이거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리 애쓴다.




다음날 우연히 이윤정 선생님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해서
3분의 1은 나랑 맞고
3분의 1은 나랑 다르고
3분의 1은 나한테 무관심하다'라고.

왜 이렇게 이 말이 위안이 돼지?

이 말에 따르면
아빠와 나는
일직선의 끝과 끝에 있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라기보다

그냥 3분의 1과,
또 다른 3분의 1에 속한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일 거다.


비극이 평범으로 바뀐다.

안심이 된다.


오늘 우리의 대화에

서로에 대한 충분한 존중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일지를 쓰고 있고,

아빠는 뜬금없는 화해의 제스처로 인순이를 소환했다.


이렇게 서로에게 연결의 욕구가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거겠지?





인순이 언니의 피날레 공연

https://youtu.be/bGjA15c_0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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