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편)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때(2020.0522)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8화

by 유하나



1. 귤이 된 오렌지




오렌지 조각을 잘라주니
준이가 연달아 맛있게 먹는다.

그걸 보고 있는 내가 이야기해준다.
''이게 오렌지야''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야~ 귤이야''

''오렌지라니까~''
''귤이야~~(웃으며)''

''오렌지거든!(나도 웃으며)''
''귤이거든!(깔깔거리며)''

표정을 보니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래 귤이라고 해라~'하며 그냥 내버려 둔다.

'' 오렌지 맛있지?''
'' 아니야~맛없어"
(오렌지 두 개를 거의 다 먹으며)

웃기다
그리고 안심된다.


무조건 엄마 말에 반대로 하는 게 재밌는 네 살.
그래.. 너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장과정을 거치고 있구나.


그런데 문득.
며칠 전 식이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아빠를 아빠가 아닌 '한 존재'로 보기 위해
앞으로 '식'이라고 칭하겠다)

식이와 했던 대화도 전개가 비슷했다.


A라면 B라 한다. B라 하면 C라 한다. C라 하면 D라 한다. 사사건건 아니란다.

그때는 어땠지?

몹시 화가 나고 약이 오르고 분했다.


비슷한 자극에
내 반응이 달라도 너무 다르네?


단순히 자식이라서 사랑스럽고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말을 받아들이는 내 뇌에 뭔가 문제가 있다.




2. 분노의 놀라운 목적




우연히 오늘 '분노의 놀라운 목적'이라는 nvc소책자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답을 찾았다.


책에 따르면,
자극에서 분노로 가는 그 짧은 몇 초 동안에 무언가 있단다.

나의 생각(주로 도덕적 판단)이 껴들어간다고 쓰여있었다.

'자극ㅡ> 나의 생각ㅡ> 분노'라는 것이다.

똑같은 자극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화가 나고
어떤 사람은 웃음이 나고.

똑같은 자극에
어제는 화가 나는데
오늘은 화가 안나는 것도
다 나의 '생각(판단)' 때문이란다.

자극은 자극일 뿐
내 분노의 원인이 아니란다.


적용해보자.


오늘 준이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 웃기다 ㅋㅋ 너~ 잘 자라고 있구나^^'


며칠 전 식이의 말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늘 저런 식이지! '


생각을 도식화 해보았다.




만약. 친구 아빠가 그랬다고 하면,
나는 친구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욕 좀 해주다가
' 근데 너네 아빠 되게 웃기다' 하고 까먹고 말았을 것이다.

왜?
자극 -> (별생각 없음)-> 반응
이었을테니까



그럼 자극이 왔을 때 어떻게 하지?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자극과 분노 사이에
내 '생각'이 껴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
그 생각을 옆에 잠깐 두고.
('생각아~너~ 내 옆에 딱 서있어!')

sticker sticker

(눼...)



나의 지금 느낌과 욕구가 어떤지를 느끼고,
그걸 말해보란다.



그래서! 역할극을 해보기로 했다.

띠로 롱~~~~~~~~~~~~~


식:
그거~ 티브이에 나왔더라.
코로나랑 미세먼지랑 전~~~ 혀 관계가 없다고.
너같이 생각하는 애들 때문에 정치인들이 그걸 이용하는 거야!

나:
아빠가 그 이야기를 한 순간
저는 지금 답답하고 황당하고요. 화도 나요~

저는 너무 좋은 이 날씨를 아빠와 그저 '공감'하고 싶어서 전화했던 거예요~그리고, 뭐 사둔 게 있는데 드릴까 하고 전화했었어요~
코로나가 미세먼지와 관련이 있는지 토론하거나 정치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었거든요.
(나의 애초의 욕구에 집중한다 ㅡ 공감. 연결, 도움주기)

제 말이 어떻게 들리세요?(연결 부탁)

또는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으시면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어때요?(행동 부탁)


흠..
어제의 그 진흙탕 대화보다는 훨씬 낫다.



정말 책에서 나온 대로
내 생각을 잠시 멈추고 나의 느낌과 욕구에 집중해보니
대화가 대단히 다르게 전개될 것 같다.
대화의 에너지가 다르다.

전에 했던 대화에서는

식이를 '적(enemy)'으로 인식했었는데 여기선 아니다.

독기가 빠져있다.



대화 중간에 '이건 아니다'라고 인식한 순간부터

내 느낌과 욕구를 불완전하게나마 말했더라면

훨씬 대화가 진정성 있었을 텐데. 싶다.



나는 그냥 날씨가 좋다고 말하고 싶었고,

식이와 연결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내 욕구를 알고 나니 나를 좀 안아주고 싶다.


식이와의 관계에서
수없이 좌절되었고 지금도 좌절된 이 '공감과 연결의 욕구'를 생각하니 좀 슬퍼지려고 한다.

하지만 분명 저번 통화 때 느꼈던 불타오르는 분노는 아니다.



다시 한번 떠올린다.
식이의 말은 '자극'일뿐
내 분노의 '원인'은 아니다.

내 분노의 '원인'은 내 '생각'이다.

"또 저래!
날 존중하지 않아 또!
아는 척 해!
또 일방적으로 들어야 해!
나한테 왜 이래 정말?"
이런 생각들..

이런 생각들이 분노를 불러왔다.

생각에 집중하지 말고,

내 욕구에 집중하니
일단 글을 쓰는 내 몸의 반응부터가 다다.
저번 일지를 쓸 때는 온몸이 긴장되고 괴롭더니.
지금은 한결 릴랙스 되고 편안하다.


내가 나에 대해 더 알게되서

한결 친해진 기분?







3. 분노. 진실한 나의 친구


'분노'는 내가 원하는 그것!
그런데 충족되지 않은 그것!
그게 뭔지를 알려주는 빨간 신호등이다.

진실한 나의 친구이다.

덮어두고 감추어둔 나의 내밀한 어떤 부분을
콕! 짚어내서 드러낸다.

우리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고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친구다.

"거 다 썪었네~

이거는 왜 여기 처박아놨냐

다 꺼내봐봐 얼른~"



그래서 놀란다.
아프다.
보기 싫다.

그래도 그게 진짜 나다.

이 진실한 친구랑 올 한 해는 좀 더 친해져야지 싶다.
부끄러워하고 모른척하고 시선을 돌려버리는 게 아니라
화가 솟구칠 때마다 나에게 물어봐야겠다.



"너 지금 마음이 어때?


뭐를 원했어~?


뭘 원했는데 안돼서 그렇게 화가 났어?"






4.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고민한 이유는,
여긴 nvc일지이지, 영성일기 쓰는 데는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나는 영성일기도 쓴다-

그러다 이내.

아니. 내가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뭘 그리 의식해? 분노에 대해 생각나서 적는 건데 뭐 어때? 싶다.)





갑자기, 성경 속에 한 구절이 툭 튀어나와
입체적으로다가 깨달아진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고
(we take captive every thought to make it obedient to Christ).
(고후 10:5 후반 절)'



읽을 때마다 그 뜻을 알듯 말 듯했었다.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하기 그런 그런 거?

오늘 일지를 쓰다가 갑자기 제대로 알겠다!

이 성경구절의 뜻은

네 생각이 너의 분노를 부르니.
분노를 일으키는 그놈의 생각을

1) 팩트라고 단숨에 믿어버리지 않기
2) 그 생각을 물고기처럼 샥~ 사로잡아다가~
3) 내가 믿는 신에게 가져가서~
3)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같이 웃으며 회쳐먹기
(복종시키기)

오늘은 내가 믿는 신 함께
"아빠는 맨날 저래!"라는 생각을 사로잡아다가 얇게 회를 쳐서

포도주 한잔 곁들인 거나한 회 파티를 열어봐야겠다.







생각나는 노래는



'라 트라비아라. 축배의 노래'

https://youtu.be/eUoPVRv14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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