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와의 통화를 끊고 욕구를 찾아보며 나는 식이와 내가 둘 다 똑같이 '자기표현'과 '존중'의 욕구가 있었다는 것에 허걱! 놀랐다.
갑자기 깊은 회의가 들었다. '둘이 대화하는데 둘 다 자기표현하겠다고 달려들면!? 둘 다 존중 원한다고 하면?
이거 대화가 되긴 될까?'
2. 비폭력대화에서 '솔직하다'는 것
나는 그날 자기표현을 하겠다고 하면서, 내 '의견과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이렇게 '참지 않고 거침없이' '의견'과 '생각'을 말하는 게 자기표현일까?
다행히도 nvc 이윤정 선생님이 설명해준 것이 떠오른다.
솔직함에는 두 방향이 있다고.
1) 나에게 솔직한 게 있고
2) 남에게 솔직한 게 있다
nvc에서 솔직함이란. 1)을 하는 거라고 하셨다.
나한테 솔직한 건데, 나의 '어떤 부분'에 솔직한 거냐면, 나의 '느낌과 욕구'에 솔직한 것이라고 하셨다. (Not 생각과 의견, but 느낌과 욕구, 전 국민이 알법한 not A but B 구문 차용)
즉,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는 게 '자기표현'이 아니라 '나의 느낌과 욕구'를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란다.
한편, 2) 남에게 솔직한 것에 대해서는 이게 nvc에서 말하는 솔직함은 아니지만,
하기로 선택했을 때는, 남을 평가 말고 '관찰'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란다.
남에 대한 평가를 관찰로 바꾸는 것.
(예: 걔가 날 싫어하나 봐 (판단, 평가) ----->>>>>걔가 날 보고 인사를 안 했어(관찰))
후자가 솔직한 것.
아. 명쾌하다.
나의 느낌과 욕구에 대해 솔직히 표현하되, 남에게는 평가 말고 관찰을 하기.
이 명료한 깨달음에 마음이 벅차다!
3. 일지는 왜 쓸까
문득, 내가 이 nvc 일지를 쓰는 것이 진정한 자기표현임을 알아차린다.
내 느낌과 욕구를 솔직히 기록한다. 솔직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여느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처럼 내 삶을 멋져 보이고 쿨 해 보이게 포장하고 싶은 유혹이 순간순간 고개를 든다. 그럴듯해 보이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사랑하는 nvc답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앎과 삶과 글이 일치되는 인생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글에만 집중하게 해 줄게요'라고 홍보하는 brunch를 선택한 이유다.
밖으로 보이는 것을 show 하기보다는 nvc라는 탁월한 도구를 가지고 독자와 같이 내면의 심연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고 싶다.
다 함께 모여 내 일상의 평범하고 작은 대화들을 nvc 수술대 위에 놓는다.
그 수술대를 둘러싸고 협력의사(nvc 도반) 레지던트(nvc beginners) 교수님(nvc 강사분들) 간호사(nvc staffs) 지나가던 행인 1(nvc가 뭐여? 하고 얼결에 들어온 사람) 등이 이 수술 과정을 함께 지켜본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후에 사람들이 의과대학에 몸을 기증하듯이 나는 생전에 nvc에 내 일상을 기증한다고 보면 되겠다.
수술대에 놓인 내 삶이 너무 날것이라 수술을 공개할 때마다 주저함이 있다.
하지만 그 주저함만큼 일단 개복하고 나면 느껴지는 어마한 자유함이 있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에게~ 뭐야. 별일 아니었잖아?' 하는 느낌.
나는 나를 가두는 문제로부터
놓임을 받는다.
삶이 명료해지고, 나에 대해 어제보다 더 잘 알게 된다.
이 과정이 꽤나 중독성 있다.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산책 길 나무 의자. 의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듯
일지를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난감함을 드러내는 것이 공동체의 치유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난감함이든 일단 '솔까'하고 나면 같은 난감함을 가진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커밍아웃을 한다. 난감함이 난감함으로 서로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nvc를 더 배우기도 전에 이미 nvc의 목적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