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더 먹고 싶었는데...

by 유하나

대학원 방학이 시작되고 모처럼

사람답게 살고 있다.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것은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

오늘은 미역국과 김치찌개를 끓였다.


끓인 미역국을 아들과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나를 낳고 몸조리를 하고 있을

광주에서 서울로 할머니가 올라오셨는데

마 안 있다가 곧 집에 일이 너무 많다며 외할머니가 가버리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내가 아기를 낳고 나서

여러 번 들었다.


그 이야기 끝에 엄마는

늘 "나 미역국 더 먹고 싶었는데..."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알겠다.

딱 고 시점에 서운하고 힘들었던 일은

진짜 까먹어지지 않는다.


외할머니는 좀 더 있다 가시지... 왜 그렇게 빨리 가셔가지고..



팩트 폭격 좀 하자면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


쪼들리는 살림의 다섯 남매의 장녀로

엄마는 늘 자기 욕구를 참곤 했.


생존 수단으로 발달한 '인내심'이

엄마의 병을 키웠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엄마는 남아선호가 강한 집의 장녀였고

외할머니는 정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분이셨다.


단 한 번도

엄마의 생일에

외할머니가 전화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


에도 전화를 안 하는데

다른 일로, 그냥은 할리가 없다.

아마.. 엄마에게

1년에 한 번도 전화를 안 했던 것도 같다..


엄마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내 생일에 전화도 안 하는 그 기분은 어떨까??

난 모르겠다.

엄마는 늘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줘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미역국을 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엄청 많이 끓여줄 수 있는데

먹을 엄마가 이 땅에는 없다.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엄마가

자녀를 이렇게 사랑으로 길러줬다는 그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고


다시 한번

감동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어머님은 성함에는 심지어

'남자가 필요하다'는 뜻이 들어가 있다.


본인은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자식 정은 어마무시하다.


그 시대.


자신은 부모의 사랑받지 못했으나

동시에

자녀를 무한히 사랑한

모든 엄마들에게

깊은 respect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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