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
벌써 9월이 다 가고 있어.
런던 너희 집에서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
너는 어떤 한 달을 살았어?
'생선이랑 손님은 집에 온 지 3일이면 썩은 냄새가 난다'는 속담도 있던데
'손님'이었던 나랑 준이가 쑥~ 빠지니
엄청 후련하고 여유롭고 시원하고 그랬어?
ㅋㅋㅋㅋㅋ
나는 돌아와서
여름에 한 달 살기 중에 깨달은 걸 살아내고 싶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봤어.
우선,
내가 9월에 붙잡고 싶었던 것 3가지는
1. 설렘
2. 논문
3. 100억
이었어.
까먹지 않고 싶어서 매일 쓰는 노트북에 써서 붙여놨지!
지금 보니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지고 물도 뭍은 걸 보니
애착이 가네~
설렘은
'유럽 여행의 설렘을
일상에서도 잊지 말자.
일상도
여행처럼 살아보자.
그리고 주변을 설레는 것들로 채워보자.
설레지 않은 것은 버려보자'는 취지였는데,
10점 만점에 10점 주고 싶어.
전혀 설레지 않은데 오래 가지고 있던걸 많이 버렸고,
나한테 꽃도 사줬어.
가벼운 산책도 자주 했는데
집 주변에서 안 가본 곳에
혼자 걸어서나 버스 타고
한 달 동안 7군데는 가본 것 같아.

돈 들여 시간 들여 유럽가지 않아도
내 집 근처에서도
파랑새를 찾을 수 있는 걸
실험해보고 싶었어.
결론은
'된다!'
이것도 각 장소별로 한 꼭지씩 쓸 글감일텐데
정신없이 살다보니 쓰지를 못했네.
두번째로,
논문은..
이번학기에 박사 논문을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막상 한 달 동안
밀물처럼 계속해야 할 일들이 몰려오더라고.
계속 울리는 핸드폰 알람,
카톡,
전화,
살림,
육아,
각종 만남,
친인척 챙기기 등으로 포화상태가 돼버리는 게
버거웠어.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한테..
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 때문에
내가 집중을 할 수 없다고 남편에게 토로했지.
근데 남편이
"준이 학교가 있을 시간만 해도
충분한 거 아니었어?"
라고 하는 거야.
바로...
아. 그렇지. 그렇지...
암요... 그러는구먼요.
일도 안 하고 있는 황금기간인데.. 하며.
진짜 고3 모드로 돌아가자! 하며
핸드폰 한 번도 안 보고
애 학교 가자마자
커뮤니티 도서관에 와서
제일 좋은 자리 차지하고
아침 9시부터 1시까지 4시간 동안 딱 1번
물먹으러 일어난 거 빼고 읽고 썼어!
지금 정말 뿌듯해!
안심돼!
희망 차!
이렇게만 일주일에 몇 번만 해도 될 것 같아!
내 박사논문 주제 너무 잘 정한 것 같아!
너무 재밌어!
급 브레인 가동으로 인해
초콜릿 엄청 까먹긴 했지만....
(위선자!! 인정!! 어제 과자 끊임없이 뜯는 준이 손등 내리쳤는데!)
그리고 또 한 번 생각했지.
핸드폰은 뺏거나
자진 반납해야
집중할 수 있다
어른인 나도
핸드폰으로 울려대는 온갖 연락과 정보 때문에
뭘 읽을 수가 없는데
애들은 오죽하겠냐고!
10월은 이런 기분 좋은 몰입 Day가
많기를 바랄 뿐이야.
세 번째는 100억인데,
100억
100억이 있어도
가진 돈과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어.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죽을때까지 신나게
계속 몸 담고 살아가고 생각할
'분야?'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 오늘 논문 서치하면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어.
다은.
이제 10분 있으면 준이가 하교해.
엄마로 돌아갈 시간이야.
오늘 간식은
해물크림파스타를 해주기로 했어.
요새 학교 급식 먹고 오는데도,
오후에도 먹고 저녁도 먹고.. 하며 4끼를 먹더라고?
집에 있으면 계속 배고프다고 해서 열심히 대주고 있어.
9월에 붙잡은 3 단어를 보니,
교체할 생각이 없다..^^
더 꼭 붙잡는 10월이 되고 싶어.
다은.
말해줘.
너는 9월에 뭘 붙잡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