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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13. 2021

돈받을 때. 우리 좀 솔직해질까요?(2020.1210)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16화


1.


아이를 어린이집에 잠깐 맡기고
어젯밤에 쪄놓은 고구마, 밤,
그리고 싸게 득템 한 딸기를 담아
강일동 할아버지 댁으로 향한다.



옆자리가 가져다 드릴 음식으로 든든하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더 고립된 80대 노부부.
경로당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오가는 사람이 원래도 없지만
요새는 오겠다는 사람도 극구 오지 말라고 하신다.

"할아버지!
저예요~
문 앞에서 마스크 쓰고 뭐만 드리고 올 거예요~
마스크 쓰고 문 여세요~"
갑자기 전화를 드리고 출발한다.


'고구마는 맛있게 드시니까'

할머니의 식사대용 구황작물을 싣고 가는 마음이
참으로 시원하다.
가봐야지. 가봐야지만 몇 주째였으니.


현관문에 서있으니
할머니는 안에 서서
애꿎은 할아버지에게 마구 역정이다.

"아니~!
오랜만에 왔는데 좀 들어오면 어쩐다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할아버지는
마약 밀매상들처럼 얼굴을 가리고
물건을 건네며
확고한 눈빛을 교환한다.
 
'노인 안전제일!!!!'
우리의 욕구는 완전히 일치한다.



현관에서 눈빛 교환으로 반가움을 한껏 드러내고
가져간 음식을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할아버지가 흰 봉투 한 장을 내미신다.

'오잉?~'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갑자기 기분이 째진다~  

사실 12월에 이래저래 지출이 어마어마해서
더 이상의 지출은 자제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봉투를 보는 순간
 '에이.... 안 사야지~' 하고 포기한 패딩이 하나 떠오른 것이다.


'앗싸~'


그런데 이상하게도 맘과는 다르게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할아버지~ 왜 또 주셔요~
이런 거 받으러 온 거 아닌데~"



겸손과 체면치례가 미덕이라고 배웠다.

너무너무 좋은 척을
그 자리에서 드러내 놓고 하는 건
왠지 싸 보인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저 따위다.
 

기쁠 때 기쁘다고 하면 뭐 어떻다고...





2.

하루가 지난 지금.
나는 그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했을까  
복기해본다.




비폭력대화 NVC로 감사를 표현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요소를 명확히 한다.

1)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 그 사람의 행동
2) 그 행동으로 충족된 나의 욕구
3) 그 욕구들이 충족되어 생기는 즐거운 느낌
<비폭력대화> p298


다시 nvc로 말해보자.

1) 할아버지의 행동

할아버지가 특별한 날도 아닌데
용돈을 갑자기 주실 때

2) 충족된 나의 욕구

할아버지가 저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고,
사랑받는 것을 느껴요.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게 느껴져요.  

3) 그래서 내 느낌
그래서 신나고 행복해요.
안심이 돼요.
따뜻해요.
저 이 돈에 얹어서 사려다 포기한 패딩 살 거예요!
감사해요~!



쓰고 있는데 급. 후회가 된다.

그날 현관문에서
내가 이렇게 말할 수만 있었다면
할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리고 내 마음은 얼마나 잘 전달됐을까?
우리는 얼마나 깊게 연결됐을까?

늦지 않았다.

내일 저 감사 표현 그대로
핸드폰에 꾹꾹 눌러 할아버지에게 보내드리자.







3.

그 후  며칠이 지나서.

어색하더라도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할아버지께 문자를 보냈다.


이날 하루.

할아버지와 연결된 끈으로 얼마나 후끈했는지!  


한 번이 어렵지.

용기가 더 생긴다.


다음엔 누구한테든 돈을 받으면

축구선수들이 골 넣고 세리머니 하듯이

기쁨을 마음껏 표현해야지~


급~화색이 된 얼굴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내비치고,

돈 준 사람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춤도 춰봐야지!


내 마음이 느끼는 대로

표현해 봐야지!


그걸 보는 사람은 얼마나 기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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