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2020.0807)

비폭력대화(nvc)를 삶에서 녹여내기 - 17화

by 유하나

1.



''그래서 어때?
요즘 비폭력대화를 삶에 녹여내고 있어?~''



요즘 내가
nvc 수업을 듣는 줄 아는 동네언니가
놀이터 벤치에서 느닷없이 묻는다.

''글쎄..
녹여냈냐고 물으니..
뭐라 대답해야 할지 ㅋㅋㅋㅋㅋ
대답하기가 엄청 부담스럽네 ㅋㅋㅋ

가끔은 녹기는커녕 물과 기름같이 분리되어 있다고나 할까?
하하하~ ''

이렇게 서로 킥킥대며
대화가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이 질문이
한 주 내 내
나를 따라다닌다.


'녹여내고 있어?'


'녹여내고 있어?'


'녹여내고 있어?'



그래.
이제 시험관 시술을 받아 틈만 나면 누워있어야 하니
천장을 벗 삼아
그간 도망 다녔던 질문에 답을 해보자.




2.



8월 7일 금요일 오전.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2016년에 수정해놓았던 배아가 4년의 냉동 기간을 거쳐 드디어 해동의 영광을 얻었다.

그래서 오늘은 nvc의 꽃이라는
'부탁'을 남편에게 남발해보았다.


'' 사실.. 내가 다 혼자 할 수 있지만
자기가 같이 갔으면 좋겠어.
그날 휴가 낼 수 있어?''

남편은 회사에 일정이 빽빽했지만 회의를 조정했고
결국 휴가를 냈다.

덕분에 나는 여유 있게 병원을 갔고
남편은 낑낑대며 아이 등원을 시켰다.

시술이 끝난 후에는
"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 하여
둘이 나란히 앉아 간호사에게 주사 놓는 법에 대해 같이 배웠다.

만약 지구 상에 나밖에 없다면?

당연히 아마 난 손을 덜덜덜 떨며 어떻게든
내 배에 주사를 놨을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이렇게 효율적일 수가! 하고 감탄했을 것도 같다.

내 몸에 내가 놓는 것이니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하면 되니까.

남편의 밤 일정은 변수가 많아서 출근 전에 놔줘야 했고.
그러려면 적어도 나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즉.
대상과 시간에 얽매이는 거다.
내쪽에서도 운신의 폭이 적어진다.


이건,
수단과 방법을 다양하게 하라는 nvc 정신에도 위배된다.

그래도 난 자청하여 얽매이고 싶었다.
관심과 사랑과 돌봄과 연결의 욕구를
주사를 매개체로 채우고 싶었다.

내가 아닌 '남편'이 내 배에 주사를 놓음으로
10일 동안
이것이 '나'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했다.



시술이 끝나고 병원을 나와서는
''나.. 초밥!
초밥 먹고 싶은데 초밥 사줄 수 있어?

그리고 맛있는 빵도 주말 간식으로 쟁여놓고 싶은데 그 동네에 베이커리도 들려도 돼?

그리고 나~사실~식당이랑 베이커리 들리면서
일부러 좀 멀리 돌아서드라이브하고 싶었어~~''



우리는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두 피스씩 나오는 연어초밥, 참치초밥, 광어 초밥 등을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먹고
미니 우동과 미니 소바까지 양껏 먹었다.
꿀맛이었다.
그 후, 베이커리에서는 눈과 코와 입이 호사를 했고,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올림픽 공원을 바라보며 마음이 보들보들 야들야들해졌다.


집에 와서도 나의 부탁은 계속되었다.

'' 나 조용히 자고 싶은데
자기 핸드폰 볼 때 이어폰 끼고 봐 줄 수 있어?''

'' 나 주사 맞은 데가 너무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
안방 문 좀 닫아줄 수 있어?''

'' 나 집에 저녁때 혼자 누워있게 해 줄 수 있어?
준이 어린이집에서 데려다가
놀이터에서 놀리다가
어머님 댁에 있다가 자기 전에 데려와줄 수 있어?''

등등

이것들이
오늘 10시부터 4시까지
내가 폭포수처럼 쏟아낸 부탁들이다.

그는 이 모든 부탁을
흔쾌히!
즐겁게!
기꺼이!
들어주었다.

쩨쩨하고 구질구질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말해봤는데
전부 다~~~~ 수용받으니

이제 한 일주일은 혹시 좀 거절 같은 걸 당해도
정말로 진심으로 괜찮을 것만 같았다.

우리 '관계의 통장'에
백만 원쯤 저축되어 있는 것 같았고
마음이 배부르고 든든했다.

그는 오늘

젠틀하고
너그럽고
다정하고
든든하고
자상하고
책임감 있는 남편이었다.


관계의 통장 - "이번일로 백만원 저축!"




3.

sticker sticker

그런데.. 이상하다..

똑같은 상황이었던 작년 12월 어느 날의 그는

비정하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고
둔감한 남편이었다!!!!

아니.
말은 바로 하자.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고 판단'했다.

그때도 나는 똑같은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그 시술 전후 과정이라는 것이
처음 해본 사람에게는 힘든 일일 수 있는데
나에게는 매우 익숙했다.
그래서 호들갑 떨지도 않고, 긴장되지도 않았다.

마치 여섯째쯤의 아이를 낳으러 가는
여유 있는 산모의 마음이랄까?
(시술 때마다 성공했으면, 진짜 아마 여섯쯤 낳았겠다.)


맞다.
익숙해서 그랬나 보다.
남편에게 별다른 요청을 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했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직장에 다니고 바쁘고 피곤해 보여서
괜한 신경 쓰게 하지 않음으로 그를 존중하고 싶었다.
내가 최대한 모든 걸 처리해서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시험관 할 때 정말 혼자 가도 괜찮아?'
'정말 혼자 해도 괜찮겠어?'라고 여러 번 물어봤을 때.

난 쿨내 진동하며 흔쾌히
'그럼!'이라고 내 입으로 말했다.


그런데 시험관 시술 전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와보니
그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다른 방에 잠들어있는 게 아닌가?

순간
'아 진쫘!!!!!! 너무한 거 아냐?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저렇게 전날 다른 방에서 술 취해서 자냐?

뭐야!
애는 혼자 만드나?
한 달 전부터 병원 다니고 주사 맞고 약 먹고
백 프로 나 혼자 다했잖아?
결국 지금 애 낳는 거를
나랑 병원이랑 둘이 하라는 거야 뭐야? 응?!!!'


억울했다.
분했다.
섭섭했다.
외로웠다.
화났다.
치사했다.

그러다 갑자기 덜컥!
준이 출산날까지 생각났다.
전날 밤도 하필이면 만취였던 것이다.
회사 사람들이
첫애는 예정일 전에 태어날 리가 절~~~ 대 없다면서 출산 휴가 전 마지막 회식이라며 술을 먹인 것이다.

산부인과 분만실 보호자 의자에
그는 나와 나란이 만취상태로 누워있었다.

누가 보호자인지 알 수 없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던 그날 밤과
그 후 육아 과정에서 섭섭했던 일들도 떠올랐다.

'지금
또 그런 거야?'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졌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순식간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남편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천하에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 looking forward'라는 연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설이다.

우리가 인생 속에 모르고 찍은 점들이
결국은 연결되어 있었다는
그리고 미래에도 그럴 거라는...
놀랍고 감격스러운 통찰을 담은 명연설데...

그날 밤.
나는 잡스 오빠의 말을 삶에 하게 적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을 잇는 태도인데,

분노의 화신이 되어 매우 비극적으로 연결하고 있던 나.

'과거의 섭섭이'들과 한참을 북 치고 장구 치다가
'미래의 최악이'들까지 몰려
혼자 심란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 혼자 가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괜찮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었다.
내가 자청해서 그러겠다고 한 일이다.
그날 아침 남편이 갑자기 휴가를 낼 수도 없었다.

병원을 다녀온 후에도 뒤끝은 지리멸렬하게 계속되었다.


"이런 걸 원하세요?"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때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몰랐다.

나도 모르는 걸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남편에게
돌봄. 배려. 사랑. 관심을 받고 싶었다.

내가 둘째를 갖고자 하는 게,
더군다나 시험관을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은
내가 씩씩한 척 해도
내 번거로움을 눈치껏 알아줬으면 했다.

그리고 4년 전
우리가 첫째를 갖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을 때 그때
우리가 누렸던 그 충만한 유대감과 애정, 공동체라는 느낌을 리메이크해서 누리고 싶었다.


변해버린 것 같은 그의 태도와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늘어난 고무줄 같은 우리의 관계가
이래도 괜찮은 건지 불안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한다고 한 것이
'비난'이었다.

그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 해도
내게 가장 '익숙한 방법'이었다.



4.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 나는 삶에서 nvc를 녹여내고 있는가?'

yes!

남편에게 휴가를 내고 시험관 하는 모든 일정을 함께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던,
적어도 오늘은 그랬다!
(내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

내 감정을 정확히 알아챘고
원하는걸 분명히 알았고
부드럽게.
하지만 명료하게 표현했고
구체적이지만 우아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그 부탁이
모두 수용되는 경험을 했다.

몸과 마음이 참으로 편안했다.
행동과 마음과 언어가 일치되었다.

원하는 걸 명료히 하고 부탁을 했을 뿐인데!!


벅차올랐다.
시술 결과 따위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을 것처럼 기뻤다.
8개월 전
느낌도 바람도 부탁도 몰랐던 작년의 내가
지금은 너무 낯설어져서 기쁘다!

나답게.
더욱 나답게
존재가 무르익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어젤라' ㅡ 어제의 나. 과거의 나
'레일라' ㅡ 내일의 나. 미래의 나
( 방금 만들어봤다. 프랑스식 이름이라고 치자.)

원하는 것을 부탁할줄 아는 '레일라'는

부탁을 삼키며 흘겨보는 '어젤라'보다
더 가볍고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아 신난다.




5.


이 글을 쓰고 하루쯤 지난 오늘.
신비롭게도 아이의 요구가 다르게 들린다!

자는 시간 빼고
나만 보면 끊~임 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한 생명체.


''엄마. 누워봐.
엄마. 퍼즐 같이하자. 엄만 이거 해. 난 이거 할 거야.
엄마 나 간지러워 여기 긁어줘.
엄마. 아파 밴드부 쳐줘.
엄마 떠어졌잖아. 잉잉. 주워줘.
지금! 지금!
엄마 이리 와바. 이리 와바. 내 옆에 앉아.
엄마 나 배고파. 사과 줘. 이리 와.
엄마 이거 읽어
엄마 더워 ....
..''

하아. 지친다.


어쩔 땐 '야 너 혼자 해! 난 몰라!!'하고 소리치고 싶다.

어쩔 땐 그냥 진~~~ 짜로 제발 혼자 있고 싶어서
안방 구석에 숨어있는다. (바로 붙잡히긴 하지만)

네가 유난히 그런 거니

너랑 나 말고 말할 사람 없는 이 환경이 문제니
한없이 너그러울 수 없는 내가 문제니
아니면 육아는 원래 이런 거니.

자주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어제.
남편에게 부탁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준이의 마음을 알겠다.

'너. 나처럼....

나한테 관심. 사랑. 애정. 돌봄. 안심. 확신
받고 싶구나?

폭포수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부어달라는 거구나.

이래도 저래도
엄마가 날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구나.


그리고 사실 너는 엄마에게 당연히 그런 걸 요구할 나이고.


어쩔 땐 네 맘 너도 모르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지?


엄마도 그랬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어.


우리같이 알아가 봐.


그리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어린 시절 네 부탁 좀 잘 들어줘서

우리의 관계 통장에 10억쯤 채워놓고 싶어 진다?


앞으로.

관계에 위기가 올 수많은 순간에 얼마든지 꺼내 써도 충분히 남아있도록!'



이 밤.

같이 사는 두 남자를 더욱 이해하고 나니

죽고 나서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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