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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12. 2021

 "No"속에 "Yes"찾기 (2021.0112)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15화


1. 자다가 머리채 잡히기



준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 밖에 나가자~”라고 말한다.
 
처음에 좋게 말하다가 칭얼대는 게 아니다.
첫마디부터 징징이다.

말을 못 할 때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 젖혔다.
그땐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해 죽겠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울음으로 같은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다.

말을 약간 할 수 있으면서부터는 ‘이여나~이여나~’하며
두 손으로 자고 있는 내 머리를 붙들고
거칠게 위로 들어 올렸다.

자다가 갑자기 머리채 잡혀 봤는가?

아..
진짜 완전..
화난다....

자식이고 뭐고
화나고 열 받고 짜증 난다.

잘 자고 일어난 옆집 아이는
순하고 방실방실하고 애교가 넘친다는데

우리 집 애는 자고 나면
힘이 넘친다.

지금 당장! 나랑 놀아야 한다며
고집도 넘친다.

그럴 때마다 주로 내가 하는 말은

“하지 마~~!
엄마는 준이 이러는 거 싫어~
엄마 아파~!!!!
스읍!~~!!!!
아진짜 ~ 말로 하라고~!”


안 먹힌다.
눕혀있는 머리를 붙잡고 계속 징징징.

아...

이렇게 아침을 시작하고 나면
하루의 시작부터 지친다.

형제자매가 있으면
둘이 일어나서 잘도 나가서 논다던데,
(그것도 케바케라는 둘, 셋 엄마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이 넘은 나만 붙잡고 매일 놀아달란다.

신은 공평하다.


다둥이 엄마보다 가뿐한 외동 엄마는
신이 주신 이 '노라조' 형벌을 하루 죙일 감당해야 다.




2. 자녀가 "싫어!"라고 말할 때


6월 24일 아침은 평소와 좀 달랐다.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내가 웬일로 다른 말을 했다.



그전날 밤에 nvc 소책자
'자녀가 싫어라고 할 때'를 읽어서일까?
나도 모르게 책을 따라 해 보았다.




책의 요지는 이거였다.

자녀의 '싫어!' 속에 '좋아!'가 있단다.

자녀가 무엇에 대해 '싫어!'라고 말할 때
다른 무엇에 대해 분명히
'좋아!'라고 말하고 있는 거란다.

애는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하니  
부모가 '뭐에 대한 yes!'인지 찾아 읽어주라 했다.

아이는 내가 조금만 더 자는 것에 "싫어"라고 말했지만,
그 "싫어"속에는
"나는 엄마랑 지금 노는 게 좋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봤다.


“준이는 거실로 나가서 엄마랑 재밌게 놀고 싶구나?(너의 욕구)
엄마는 지금 너무 졸려서 좀 자고 싶은데(나의 욕구)
엄마 5분만 자다가~ 같이 나가서 신나게 놀까?(합의점)”



그러니,  
“응!”이라고 흔쾌히 말하는 것 아닌가?


놀랐다.


이전까지 한 번도

너의 욕구를 읽어주고,
나의 욕구의 표현하고,
나름대로 절충안을 제안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놀랐다.

몇 개월간 반복는 스트레스 상황이었는데
그때마다 어쩌면 나는

"하지 마~!
그러는 거 싫어!"라는 말만 했는지?!


'아니, 얘가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라고 속으로 비난했다.

말 '습관'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너무도 질기다.  

이렇게 내 말 습관을 알아차리고 났더니,


그다음엔 울했다.

'뭐야?
이렇게 단순한 걸. 지금까지 난 뭐했던 거야?!'





3.  "싫어" 안에 '자율성'?


며칠 후,
 '이 방법이 진짜 먹히는 건가?' 싶어
일부러 예전과 똑~같이 말해보았다.

''준이는 거실에 나가서 놀고 싶구나?
엄마는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5분만 있다가 밖에 나가서 신나게 놀까?''

그럼 그렇지...

저번과 다르게 바~로 ''싫어!''한다.

그래서 이번엔 5분을 1분으로 바꿔보았다.

''그럼 1분만 있다가 밖에서 신나게 놀까?''

또 ''싫! 어!''
한다.

힘을 주어 소리치며
주먹마저 쥐었다.

그래서 이렇게 해봤다.

'' 아니 ~~~
엄마는 잠에서 깨면
이렇게 누워서 손목도 돌리고(내 손목을 돌린다)
발목도 돌리고(내 발목도 돌리고)
고개도 돌리고(내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눈알도 돌리고(내 눈도 돌린다)
몸도 흔들 시간이 필요하거든
(몸의 힘을 빼고 사지를 바보처럼 흔든다)''


아이는 지금 이 엄마가 뭘하나? 하며
신기한지 입술이 웃을랑 말랑한다.
화내던 것을 까먹은 듯하다.




아...

엄마는 힘들다.
'나우이즘(Nowism)'의 극단을 달리는 네 살, 다섯 살 나이에는
아이와 서로 샤우팅하는 비극을 피하려면

이렇게 순간순간 엄마의 창의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누워서 체조하며 어영부영 말로 시간을 끄니
1분이 지났다.
이제야 나도 잠이 좀 깬다.
일어날 마음이 생긴다.

머리채 잡힐 때랑은 달리
내 페이스대로 잠을 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아이와 무려 서른다섯 살 차이나 나는 나에게도
"자율성"이 무~~~~~~~쟈게 중요한 것이다.

욕구는 남녀노소에게 universal한 것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한다.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싶다.
아이가 일어나랄 때 재깍 일어나기가 그~렇게 싫다.
아이가 일어나라는 그 시각이랑
1분이라도 다르게 일어나고 싶다.


'자율성이 중요했구나'


나를 공감한다.

아들에게 No!라고 말할 때,

나는 내 자율성에 대해 Yes!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니.
내가 시키면 하다가도 안해버리이의

'넘치는 자율성'에 이전보다 화~악 공감된다.



자율성은 그렇다 치고

 왜 이렇게 피곤한 거니..


아이가 자면 잠이 확~깨고,

아이가 깨면 잠이 몰려온다.


이 영원한 '반비례의 비극'이여!!!




4. No is Yes



그 후로
6개월이 지났다.
 2021년 1월 11일.



" 엄마가 지금은 준이랑 놀아줄 수 없어.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데(Zoom을 하며)

그동안 아빠랑 좀 거실에서 놀래?"

" 아야써~ 엄마 공부하고 나와~
내가 아빠랑 똥 싸고 있을게~"

"고마워~!"



오늘 아이와 나눈 대화이다.




아주 한때 막무가내 더니

점점 협상이 되는 나이가 되고 있다.

말이 통하니까 너무 기쁘다.

살아있는 동안
너의 욕구.
나의 욕구.
그 중간에서 우리 자주 만나자.


우리 서로의 No에서 Yes를 찾아주는

숨바꼭질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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