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눈으로 정인이를 보기(2020.0107)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11화

by 유하나


1. 아.....정인아!!!!




"아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어!
입양을 하겠다고 나서지를 말지!
인격적으로 자격미달인 사람들이 마음만 앞서 가지고!
자기 자식만 귀한 줄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
경찰은 뭐 하고 있었어? 제대로 일을 한 거야? "


양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16개월짜리 정인이가 사망했다.
이 기사를 보며 분노가 불일 듯이 일었다.
나는 쇼크를 받아서
닥치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비난했다.


2. 읍!!



비폭력대화를 배우기 전까지는
내 안에 느닷없이 폭발하는 분노를
도대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내가 화가 나서 울거나 떼를 쓰면,
어른들은

"쓰읍!!!!"
"뚝 그쳐!!!"
"어딜!!!!"

그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자기 분노도 어쩔 줄을 몰랐으니
자기가 모르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결과
내가 터득한 것이라고는
자기 몫의 분노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어른들 밑에서
마구 흔들어댄 사이다 캔 같은 내 분노를
그냥 디립다 참으며 누르는 것뿐이었다.




3. 비폭력으로 '분노 표현'하기



한편,
비폭력대화에서는 '분노'를
무시하거나
억누르거나
삼키라고 권하지 않는단다.

오히려 분노의 핵심을 완전하게 이해해서
더 충분히 표현하도록 한다네? (비폭력대화, 231p)

'분노의 핵심?'

'완전히 이해?'

'더 충분히 표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우와~!!!!
화내는 법을 가르쳐주는데도 있구나!

나 진짜 배워야 돼 ㅠ.ㅠ.
절박해졌다.
다르게 살고 싶고
더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nvc 식으로 분노하는 법을 배우려면,
기본 명제에 동의해야 한단다.

기본 명제는 이것이다.


'내가 화나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자극일 뿐,
내가 화나는 이유는 나의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 동의하는가?



자~ 그러면 이제 화를 내보자!

핵심적으로다가,
완전히!
충분히!
비폭력적으로!

(핵심적으로 완전히 충분히 화내려면,

상 뒤집어엎고,

필요하면 눈도 까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을

이 기회에 고쳐보련다)






4. 분노를 표현하는 4단계 (비폭력대화 242p)


1) 분노를 표현하고 싶을 때 일단 멈추고, 크게 숨을 쉰다.

정인이 기사를 봤을 때,
욕이 올라오면
크게 숨을 쉰다



2)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들을 인식한다.

무책임한 인간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
자기 능력치도 모르면서 행동부터 하는 한심한 인간들!

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구나.



3) 자신의 욕구와 연결한다.

- 나는 아이가 가정에서 충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 나는 아이가 한번 버려진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다음에 연결되는 가정에서 진짜 진짜 사랑받기를 원한다.

- 나는 약자 중의 약자인 아이들이 가정, 마을 공동체, 법과 제도로부터 충분히 보호받기를 원한다. 아동학대를 잘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나는 어떤 부부가 입양을 결정할 때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결심한 것인지를 좀 더 명확히 알고, 충분히 신중하기를 바란다.

아.. 내가 이런 걸 원했구나...



4) 자신의 느낌

충족되지 못한 욕구표현한다.

처음에 내 맘대로 지껄였던 비난 메시지가
nvc 번역기를 통해 이렇게 바뀌었다.


"나는 화가 나고 절망스럽다. 안타깝고 슬프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게 (특히 입양아) 충분히 안전한 사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


머리를 있는 대로 굴리며
분석, 판단, 비난하고 있다가
가슴으로 내려가
느낌과 욕구를 보았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짧지만 엄청 멀다는 그 길을
nvc를 타고 내려와 보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했기 때문에 화가 난다'를
'나는 ~이 필요/중요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로 의식적으로 바꾸어 본 건데,

그냥 대놓고 욕만 했을 때랑
에너지가 너무 다르다.

나의 욕 밑에
이런 아름다운 욕구가 있었구나.

내 마음을 안아주는 시간.


산책 중, 한파 속에 찾은 새싹





4. " 마샬 아저씨~ 근데요~
때로는 '의로운 분노'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거장은 달라!

벌써 책 속에
자신이 묻고 대답까지 해놓으셨다.


비폭력대화의 창시자, 마샬 아저씨의 대답은 각색하자면 이렇다.

' 이런 무책임한 행동 같으니라고!
이런 탐욕스러운 사람들 같으니라구!'
라고 다른 사람에게 분노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만큼
이 지구 상의 폭력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폭력대화, 235p 참조)

정인이 양부모가
'물리적'으로 지구 상의 폭력에 기여하고 있다면,

그들을 비판만 하고 있는 나는
'생각과 말'로 지구 상의 폭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범?????????????????????'

sticker sticker


소름이 확 끼쳤다.


드러난 죄목, 법의 판결을 받는 죄는
투명하기라도 하지.

정인이 기사 아래 있는
저 수십만 건의 비난 댓글은
자기도 지구 상의 폭력에 기여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오히려 정의에 기여한다고 착각하며)
주렁주렁 매 초마다 달리고 있다.


에너지는
남을 비난하는데 쓸 것이 아니라,
고이고이 아꼈다가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써야 한단다.
(마샬 아저씨의 충고이다)

왜냐.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우리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밤,
정인이 기사를 샅샅이 살펴보며
독기 어린 비난을 뿜고 있는 나도

에너지가 한정되어있는 인간이다.


지금 얼른 자빠져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낫다.

진심으로
비폭력대화를 삶으로 실천하고 싶다면!

그리고
내일 아침 빵빵하게 충전된 에너지를
내가 지금 찾은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써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
- '정인이 법'과 관련된 정치 참여하기
(안건 발의 때 온라인으로 참여 등)

- 나부터, 우리 집구석에서 부모로서 심신건강히 내 아이를 돌보자(애 볼 때 잠이 모자라면 아동학대의 유혹에 시달릴 수 있다. 어여 자자).
그리고 부모로서의 난감함을 사람들과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우리가 더 건강한 부모가 되기 위해 서로 돕자!
(글 또는 대화로)


갑자기,
힘이 솟는다.

불끈!

욕구와 만나는 순간은
이렇게 늘 힘이 나고
뭔지모를 회복이란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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