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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ㅡ앎을 삶으로 만드는실험
내 몸과의 비폭력대화 - 자궁에게 (2020.0607)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12화
by
유하나
Jan 9. 2021
1. 자궁에게 쓰는 편지
출저 - 프로젝트칠
자궁아. 자궁아~ 자궁아....
이렇게 네 이름을 부르니까
‘궁’이라는 받침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끼를 부리게 되네?
되게 친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야.
맞아.
아마도 너는 내 몸 중에
나랑 가장 친한
존재일 거야.
지난 5년 동안
임신이 당면 과제라 너를 늘 인식하고 있었지.
너는 내 몸 중에 제일 내 맘대로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지금 말을 걸어보는데,
몸의 다른 곳과는 달리 꽤 오래 머무르게 되었고
갑자기 눈물이 났어.
네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하고
염치없기도 해서.
두 번의 인공수정
두 번의 시험관
한 번의 유산
임신
출산
또 임신
또 한 번의 유산
또 한 번의 시험관
그리고 2020년 6월이 되었네.
그동안 수많은 호르몬 알약과, 과배란 주사, 질정제 등으로 너는 범벅이 되었을 텐
정말 수고 많았어.
그런데 그동안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껴안고 수용해주지 못
한
것 같아.
자연임신은 얼마나 쉽고 편할까 상상하며
날 번거롭게 만드는 너를 원망했어.
너 때문에 정말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했고
병원을 오가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늘 아까웠어.
두드러기나 어지러움증 같은 부작용이 있을 때는
정말 귀찮았어.
인공수정 날이나 시험관 이식 날을 내 편의대로 잡아놓고는
딱 그날까지는
온갖 한약과 운동, 호흡법 등으로 너에게 아첨을 하다가
낙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치하거나 외면하곤 했어.
내 약함의 상징 같아서
부끄러워해야 하나 싶다가도
널 이용해서 휘파람을 불며
당당하게 병휴직을 하기도 했지.
네가 하도 뜸을 들이니까
준이를 임신했을 때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날 아는 사람들은 모두 뛸 듯이 기뻐해 주었잖아.
난임 여성의 출산은
모두에게 아마도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나 봐.
이 드라마가 과연 해피엔딩일 것인가?
비
극으로 끝날 것인가? 그런 쫄깃한 긴장감이 있는 듯.
임신 전까지 너 자궁은
평생 내 안에 있는 은밀한 곳이었는데
임신을 했던 10개월 동안은 마치 공동의 것이 된 것만 같았어.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어댔지.
몇 개월이냐고,
어떤 방식으로 낳을 거냐고
아들을 품고 있냐고 딸을 품고 있냐고.
때론 부끄럽기도 하고
때론 아무렇지도 않기도 했어.
그렇게 엄마가
되어갔나 봐.
친정엄마는 준이가 태어나고
인생의 숙제를 해결한 듯
엄청나게 홀가분해하셨어.
자기 딸이 아이를 낳는 것조차
엄마의 숙제가 되는 이 풍조란. 참.
이 ‘엄마’라는 역할에 씌워진
자식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책임감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히고 답답해져.
우리 시부모님은
아들 나이 서른아홉에
장손이 장손을 낳았다고 병원에 와서 우셨잖아.
그 눈물을 봤을 때
처음엔 너무 뜻밖이라 당황했고
다음엔 곱고 투명한 그분들의 마음에 깊이 감사했고
그다음엔
‘아들 못 낳거나 애를 아예 못 낳았으면 난 어쩔 뻔했나’ 하고
조건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처럼
마음이 좀 조마조마해졌어.
그리고 난
'21세기 고학력 현대 서울 여성'인데
‘장손을 낳아 준 여자’로 감사를 받으려니
마음 깊은 곳에
설명하지 못할 거북함과 불편함과 낯섦이 있었어.
나는 아들을 낳아도 유하나고
딸을 낳아도 유하나고
아이를 못 낳아도 유하나인데 말이지.
2.
"내 몸이 아니다"
그런데 자궁아.
저번 주에 문득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제일 많이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어.
그 말이 너무 비겁해서
그 치졸함에 놀랐어.
나는 주위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식의 말을 뱉지 않는데 말이지!
산부인과에서 다리 벌려 앉아야 하는 굴욕 의자에 앉을 때마다 이렇게 주문을 외웠어.
‘이건 내 몸이 아니다’
‘이건 내 몸이 아니다’
‘이건 내 몸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건 내 몸이 아니다’는 그때만 되뇌었던 말이 아니야.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손가락을 30분에 한 번씩 넣어서 뭔가를 확인했어. 몇 시간에 걸쳐!
그때도 나는 너무 굴욕스러워서 순식간에 기절하고만 싶었어.
내 몸에 뭘 하든 난 상관없으니 의식만 없었으면 했지.
자궁아, 네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난 그냥 다 내팽게치고 의식 저 너머로 사라지고 싶었어.
그날 밤.
수치심에 압도당하며
‘이건 내 몸이 아니다’를 수십 번 외쳤던 것 같아.
결국 제왕절개를 하러 반신 마취를 하러 갔는데,
허리에 찌르는 주삿바늘이 너무 무서웠어.
의사가
“절대 움직이면 안 됩니다.
움직여서 다른 곳을 찌르면 몸이 마비됩니다”라고 겁을 줬거든.
그때 나는 ‘도살당하는 어린양’처럼 침묵했어.
양은 소리소리 지르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겁이 많아서 끽소리도 못하고 죽는다던데.
내가 바로 그랬어.
옆 방 어떤 여자는 ‘무섭다~ 살려달라~’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던데
나는 이상하리만큼 완벽히 순응했어.
대신
내 의식과 몸을 칼로 예리하게 자르듯
완벽히 분리하는 쪽을 선택했지.
그때도
‘이건 내 몸이 아니다.’
‘이건 내 몸이 아니다.’
‘이건 내 몸이 아니다”
라고 말했어.
이 주문이
나를 두려움에서 일시적으로 구원해준 건 맞아.
하지만, 나는 내 몸에게 의리를 지키지는
못한 거야.
함께 있어주는 게 얼마나 큰 가치 인지 알지?
그때 내 옆방에서 무섭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여자가
최소한 나보다 자기 몸과 더 소통하고 있었던 듯.
3.
몸
에게 말을 걸다
출처: 크림문디자인
그래서 그랬나 봐.
비폭력대화 수업에서
내 몸에 말을 걸어보라고 했을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
나는 몸에 말을 걸기는커녕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었잖아?
‘
난 널 몰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하면서....
사실 몸에 말을 거는 행위는
나한테 낯선 언어도 아니었어.
준이한테 평소에 늘 해주거든.
감기가 걸리면
‘오늘은 준이가 병원 가서 코 안을 좀 볼 건데,
좀 이상할 거야. 그래도 금방 끝날 거야.’라고 말해주고,
사레가 들려서 컥컥 대면,
‘목이 깜짝 놀란 거야~한꺼번에 많이 줘서. 놀랐지 목아? 목한테 물 먹여줘’라고 하는데.
이 지극히 익숙한 언어를
왜 내 몸에게는 해줄 생각조차 못했을까?
동네 아이들에게는 관대하면서
내 자식에게 엄격한 엄마처럼.
나는 내 몸인 널 그렇게 멀리 세워놨네.
자궁아~
자궁아~
자궁아~
지금까지 나는 너를
‘애물단지’ 정도로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은
너의 성실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아져.
나는 식구들을 위해 밥을 정성껏 매끼 차리기도 힘들거니와,
차렸는데 안 먹겠다고 하면 부아가 치밀거든?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매달 밥을 차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네가 만든 밥상을 받는 일은
한 인간에게 몇십 년에 한두세 번, 많게는 네 번 정도 일어나는 일이잖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매번 차리니?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밥상을 받으러 오는 이가 없으면
네가 그 즉시 그 음식을 다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는 거야.
그리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 밥을 지어.
몸속 장금이가 따로 없구나!
그건 인간 세계에서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하나님이나 가능한 일이지.
아..!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성품을 새겨 넣으신 건가?
그 무한한 성실함을?
정말 경이로워.
너의 성실함과 우직함.
인내와 한결같음을 생각할 때
나는 찬사가 나와.
그래서 생명을 품는 일은 놀라운 일이라고 하는 건가 봐.
그래서 너를 흉내 내는 ‘인공 자궁’ 같은 건
아직 발명되지 못하는 거겠지?
4. 자궁에게 하는 서약
50대 정도의 친한 지인들에게 폐경에 관해서 들을 때가 있어.
요즘은 폐경을 ‘완경’이라고 한다지?
완경,
완경,
완경,...
이 말도 세 번 소리 내어 읽어봐.
'완성'한다.
정말 아름다운 말이야.
그런데 내가 지금 이 단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만큼
실제 내 몸이 완경 될 때, 내가
얼
마나 자연스럽게 그걸 축하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한 사람이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임을 하는 순간은
정말 뜻깊은 순간이잖아.
그것처럼 한 자궁이
수십 년의 성실한 밥 차림과 밥 버림의 사명을 살아내고
밥을 차릴까 말까 지도 헷갈리며
오락가락 치매를 앓다가
결국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밥을 차려낼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그 자궁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
..
완경박스 - 이런 선물 꾸러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금부터 너에게 이야기하며 살래.
고마웠어.
정말 고마웠어.
네가 최선을 다해 품어준 생명이 있었고.
봐봐!
그 생명이 이만큼 자랐어
!
네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든
너를 껴안을게.
늙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반려견처럼
네가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걸을 수 없고
하루 종일 주로 잠만 잔다 해도
네가 나에게 차려주었던 그 수많은 밥상을 떠올리며
너를 귀히 여길게.
앞으로 너를
소외시키지 않을게.
외면하지 않을게.
연결되어 살게.
넌 어떠냐고 자주 물어볼게.
안 괜찮으면 말해 달라고 할게.
너의 청춘은 이미 지났으니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겠지.
처음으로 널 온전히 껴안고
내려가는 날들은
오르막길을 독불장군처럼 올라갔던 단절된 날들보다
훨씬 더 멋질지도 몰라.
그 멋진 날들을 우리 함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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