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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18. 2021

질투는 나의 힘(2021.0118)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20화


1. 질투는 나의 힘!


2002년 개봉작. 영어제목이 인상깊다.                               'Jealousy Is My Middle Name'



if only

그 질투를 통해
내 욕구(needs)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욕구를 작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질투는 분명 힘이 된다.




2.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


20일 연속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올리고 있다.

나도 나의 이러함에 놀라고 있는 중.

'내가 여기에 글을 쓰는 동력이 뭐지?'
이 밀고 나가는 힘은 뭐지?'
생각해봤다.

답은 '질투'였다.


2020년 3월 말.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글이라는 걸 좀 써보고 싶었다.
당연히 작심삼일 몇 번 쓰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거의 9개월이나 지난 작년 12월 어느 날,
무심코 핸드폰에 뜬 알람을 보았다.
 


'제8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길에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클릭을 한 순간.
수상자들의 글을 보는데
질투가 불일 듯이 일었다.

'에이...
나도 되든 안되든 응모 정도는 해볼 수 있었는데!!!!'

억울했다.

뭐가 억울하냐고?

작년 4월부터 혼자 뭔가를 써봤다.
혼자 써보다가
선택적으로 안전한 대상에게,
비교적 안전한 소재로 쓴 글은
가끔 남한테 보여주기도 했다.


블로그나 카페나 어디에 올리는 거?

부끄러워서 못했다.
공개할 자신도 없고...


계속 운영할 자신은 더더욱 없다.
코로나로 매일 아이와 붙어살며
기본적인 일상을 영위하는데도 버겁다.


그런데 어찌 됐건,
'저 사람들은 결국 브런치에다가 썼고
나는 썼지만 올리지 않았다.'

' 저 사람들은 결국 응모했고
나는 응모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만 하다가 1년이 지나버린 것을,
저 사람들은 행동했고 결실을 얻었다.'

이 차이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아. 왜 이렇게 질투가 나지?
왜 이렇게 훌륭한 수상자들을 괜히 깎아내리고 싶지?'
왜 이런 데서 수상하는 거 별거 아니라고 애써 생각하고 싶지?'

나에게 물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데?'


내가 대답했다.

'저 사람들의 행동력이 부러워.
결국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잖아.
소원과 삶이 '일치'한 거잖아.
그리고 저 사람들 글 속의 '표현력'이 부러워.
그리고 상을 타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도 부럽고'


질투 안에 내 욕구가 있었다.


일치
글로 자아실현하는 것 
자기표현
인정 



아  '일치, 자아실현, 자기표현, 인정'
이런 것들이 지금 굉장히 중요하구나.
그래서 내가 질투가 났구나.
순간 알아차렸다.


그럼 나는 오늘 지금
이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뭘 할 수 있지?


' 너도 오늘 써~'(속닥속닥)


내 안의 작은 아티스트가 속삭인다.


이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 매거진이다.   






3. 질투 안에 욕구(needs)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종종 질투라는 감정과 맞닥뜨렸다.

비폭력대화(nvc)를 배우기 전에는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감정', 분노, 질투, 우울, 절망 등은
느끼는 즉시 회피하거나 부정하거나 차단했다.
직면하기가 어려웠다.
직면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고.

질투가 나면
'아.. 나는 왜 이렇게 쫌생이 같냐'라고 생각하거나
'아고... 부끄럽다. 누구한테 말도 못 하겠네'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척했다.
(비폭력대화의 언어로는 '자칼 in', 자기 비난으로 빠졌다.)


때로는 '도대체 쟤는 왜 저래?'
라며 상대방을 비난하기도 했다.
(비폭력대화의 언어로는 '자칼 out', 남 비난으로 갔다)



최근에도 그랬다.
어떤 모임에서 코로나 때문에 밥을 못 먹으니까
김밥을 시켜서 가져가기로 했다.

참지 김밥, 치즈김밥, 돈가스 김밥, 떡갈비 김밥 등 여러 종류의 김밥이 있었다.

나는 한참 전부터 '떡갈비 김밥'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쏙~ 빼 가지는 않았다.
기다렸다.
대화를 통해 각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스럽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참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난 떡갈비! 저 떡갈비 너~~~ 무 좋아해요! 어제도 떡갈비 김밥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 내가 가져가도 되죠?"
하는 것이 아닌가?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아 뭐~ 그렇게 원한다면야~~~~' 하는 표정으로 눈빛으로 만장일치를 외쳐주는 거다.

그 사람이 기쁨에 몸을 부르르~떨며 떡갈비 김밥을 가져가 버린 순간.

나는 영영 내 손에서 떠나버린 떡갈비 김밥을 망연자실하며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질투의 화신이 되어 그 사람을 몰래 째려보았다.  

' 뭐야~ 자기만 먹고 싶나~이기적이기는~'

질투에서 욕구를 보지 못하면
질투는 초라한 '판단'과 '비난'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떡갈비 김밥을 애도하며 한 컷



그때 나의 욕구는... 뭐였을까?
이제와 서라도 생각해보자.


아마 '자기표현'일까?

평생 가정에서 사회에서
'공동체'안에서 '배려'를 중시해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묻고 쫒는 것은
늘 죄책감이 느껴졌고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고 쉽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표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얻어내는' 거지?

그래서 질투가 났다.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좀 더 솔직해져도 괜찮고, 그래도 안전하다고 믿고 싶었다'
 




4. 요즘 내가 질투하는 사람들


내가 질투하는 저자의 책들



요즘 내가 질투하는 사람들을 써봤다.
이 안에 내 요즘 욕구가 다 들어있다.


1) 작가 은유
- 문장력! 필사해서 그녀의 능력을 다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2) 작가 이슬아
- 일단 다작! 양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매일 써내는 성실함. 생활밀착형 글감. 글로 온전히 돈 버는 것, 근데 웃기기까지 해. 넌 어린데 참 만능이구나?

3) 어떤 비폭력대화 강사 선생님
- 탁월한 내용 전달력, 존재를 품는 능력

4) 자의에 의해,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사람.
- 일에서 얻는 활력, 정체성은 얻되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은 사람.




어쩌면.
나는 내가 질투하는 이들의 특성들을
'흠모'하고 '질투'함으로써 이미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질투 대상자를 보고

'뭐야~ 하나도 안 부러운데~'하며 콧방귀를 뀌고 있을 수도? 

마치,
내가 축구선수 '손흥민'을 질투해본 적이 없듯이.
(축구를 잘하고 싶은 적이 없었기 때문다)
 
피겨요정 '김연아'를 질투해본 적이 없듯이.
(추운 건 안 그래도 질색인데
아이스링크를 매일 가야 한다니..
제 선에서 먼저 사절입니다요~ )

질투가 안나는 건

내게 그 욕구가 없는 거다.




5. 질투라는 보물상자  


"질투는 나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나의 진실된 친구죠.
친절한 친구는 아니지만요 "

며칠 전 '아티스트 웨이 코치' 제시가  해준 말이다.
 

맞다. 질투는 친절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질투를 갓난아기처럼 가만히 보듬어 안고
욕구를 물어봐주면.
이내 나에 대한 어마어마하게 귀중한 정보들을 쏟아낸다.
마치 숨겨진 보물상자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그리고 파괴적이고 공격적이었던 질투는
쓰다듬어주고 달래주면

이내 강하고 온순한 욕구로 변해있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읽는데 나에 대해 질투가 느껴진다면?


이제 당신 차례다.

그 질투라는 갓난아이를 조심히 안고
방으로 들어가 당신의 욕구와 만날 차례다.

준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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