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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19. 2021

쓰레기 빼고 주세요 (2021.0119)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21화


1. 플라스틱 바다



지난달,
네 살 준이랑 겨울바다를 걸었다.

파도 소리가 마음을 흔들고
썰물이 땅에 그려놓은 물결무늬는 걸작이다.

그런데 중간중간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보인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넌 생일이 언제니?
버려진 지 몇십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괴물 같은 존재들.

부패는 축복이다.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아름답다.

그런데 이 괴물은 뭐지?


아이는 플라스틱을 들고 "조개다!" 한다.




아이가 그 쓰레기들을 가리키며 묻는다.
"엄마. 이것들은 뭐야?"

아이는 진짜 라서 묻는다.

나는 마음 어딘가가 아리다.

미안하다.


창피하다.

안 그래도 기후며 코로나며 미안한 게 천지인데
내가 쓴 플라스틱과 비닐까지 유산으로 쥐어주고 가려니 더 미안하다.

나는 어영부영 대답을 피다.


다.


아이는 내 옆에서
깨진 흰 플라스틱 조각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다.

"엄마!
책에서 본 조개다!!!"


아이의 기쁨을 깨지 않으려
이번에도 입을 다문다.

  


2. 오늘은 월요일


오늘도 보자기를 깔고
1월 둘째 주 일주일간
음식과 함께 플라스틱을 얼마나 샀나 살펴본다.

아빠가 이번 주에
갈비탕이랑, 샌드위치, 샐러드를 사다 주셨는데,
다 플라스틱 포장이다;;;;
악!


그리고.. 연말 여행 때
노브랜드에서 엄청나게 싼 가격에 홀려
충동구매한 생수 한 박스와
일회용 김 한 다스는

지금도 꾸준히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해 내고 있다.


후회막급이다.


그런데, 저건 뭐지?
엄청나게 큰 플라스틱 통!

한살림 무료 귤나눔-플라스틱통과 사연 쪽지



맞다.

한살림에서 저번 주에 귤을 무료로 나눠줬지!
제주에서 귤 수확량이 너무 많아서,
서울 한살림에서 200톤을 사서 무료로 나눠주는 아름다운 협상을 했나 본데,

신나게 받아와서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


그런데.
그때는 공짜에 눈이 멀어,
전혀 안보였던 저 통이 이제야 눈에 띄네?

왜...?
왜죠??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르신거죠?
한살림 님?
대답해보시죠?


한살림은 우리 먹거리, 병 재사용 등
환경 쪽 캠페인이나 실천에 앞장서는 곳인데,
왜 하필 플라스틱 통인 가요?

갑자기 화가 났다.

200톤이 무료로 분배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을까?


종이봉투로 했으면 안 됐을까?
망사로 했으면 안 됐을까?
아니면,

아예 '무료로 줄테니까 통은 알아서 가져오세요!'라고 광고했면?

그랬더라도 사람들은 집에 있는 목욕 바가지라도 들고 장을 나섰을 거다.
 (공짜는 양잿물도 마시니까)

아쉽다..
너무너무 아쉽다.

한살림 같은 깨어있는 곳이
좀 더 앞장서 주시지...




3. 일단, 한살림은 접어두고 내 삶이나 기록해본다.


연초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쓰레기 줄이기



1) 비닐 씻어 말려 다시 쓰기 (이제 습관이 되었다)
2) 장 볼 때 플라스틱 통 기피하기
(완전하진 않다.
종이상자나 유리병 등 대안이 있다면
당연히 대안을 택한다.
1000원 정도 가격차이가 나도 대안을 택한다. 작년에는 이런 개념조차 없었기에 칭찬해~)



알면서도 실천 못한 순간


1) 대용량 종이 요구르트를 못 찾아서,
불가리스 4입-포도- 플라스틱 통을 사버림.

2) 플라스틱에 든 꿀을 삼. 병에 담긴 대용량은 우리 3인 가족에게 너무 많다는 생각에 고민하다가 굴복. 병에 든걸 서 필요한 지인과 나눴어도 됐을 것을.

3) 완숙토마토, 양송이, 딸기, 두부가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다. 쓰레기도 사온 셈이다.

시장에 가면 쓰레기까지 사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쓰레기는 안 파는 곳을 찾아 필요를 느낀다.
그런데 양질의 식품을 파는 시장이 근처에 어디 있지? 새벽 배송 탓에  있는 곳도 문 닫을 판이다. 

가락시장까지는 못 가겠고. 고민이 된다.

 

새로 시작한 것


1) 식탁 주변에 티슈를 치웠다. 그 자리에 손수건을 놓았다.
(쓰던 곽티슈는 혹시 쓸 일이 있을까 하여, 식탁에서 제일 먼 찬 맨 위 칸에 처박아 놓았다.
그러나 일주일 써보니 정말 손수건만으로 일상이 다 커버가 되더라.  닿는데 휴지를 안 두면 된다.

손수건은 아이 어릴 때 쓰던 것 재활용.)


곽티슈 자리에 손수건을



2) 물티슈 good bye!
어릴 때 거의 박스로 사놓고 막 쓰던 물티슈.
아... 미안하다 지구야.
이제 우리 집에서 안녕이다.
(나는 못했지만, 아이 엄마인데 물티슈 거부하는 엄마. 리스펙트!)

새로 시작한 습관을 잘 유지하고 싶다.



4. 공감의 힘!


오늘 옆 동 언니가 잠깐 집에 놀러 왔다.

내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을 공유하니
자기도 이미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왜 오아시스에는 제일 싼 우유를 플라스틱에 파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700원을 더 내고, 종이팩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니!! 바로 내 말이 그 말이야!!!!!! 언니도 봤어?"


우와~ 속이 뻥 뚫린다!

나같이 화나는 사람 여기 있구나!

나 오늘 아침에도 그 우유.
살까 말까 하며 화났는데!

나는 공감의 파도를 타고
환경 개념 없는 기업과,
그 기업이 만들어내는 플라스틱 상품을
가장 싼 미끼상품으로 마케팅하는 중간 플랫폼을 마구 비난했다.


내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 진짜 고민됐겠다'라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무지 위로되어라.

동지를 많이 많이 만나고 싶다.
공감으로 연결되어 이 실천을 지속할 힘을 얻고 싶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쓰레기 유산을 내 아들에게 덜 물려주고 싶다.


2020.12. 서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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