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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16. 2021

부탁 III - 대화의 단샤리(2020.1126)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 19화


1. 단샤리

だんしゃり
(断捨離)


명사
불필요한 것을 끊고(断), 버리고(捨), 집착에서 벗어나는(離) 것을 지향하는 정리법[삶의 방식, 처세술]



2. 물건의 단샤리 


요즘 집안의 물건을
엄청나게 방출하고 있다.

버리고 나눠주면서
생각지 못한 쾌감을 느낀다.

내 스타일인 것만 집안에 남고 있다.

친정엄마가 혼수로 준 것.
친구들이 줘서 마지못해 갖고 있던 것.
내 취향 아니지만 비싼 거라 차마 못 버린 것.
'나중에. 혹시나'를 10년째 되뇌며 쌓아놓은 것.
 
갖가지 핑계를 대며 함께 살던 것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이사 갈 것처럼 버리니까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아마도
예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나 보다.

나답게.
마음만이 아니라
물건까지 나답게.

일본 미니멀리즘 관련 책자들을 보니
물건을 정리하는 노하우로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버릴 것'보다 '남길 것'을 우선 생각하라!


이거.
해보니. 효과가 아주 좋다.

정리를 한답시고.
좋아하지도 않은 것들을 한 아름 들고서
'이걸 버릴까? 저걸 버릴까? 아.. 저건 어떡하지?'
비교하고 고심하다가
초장에 지쳐서 나가떨어진 것이 한두 번인가!
호기롭게 정리를 시작하다가도, 슬슬 막막해지고 귀찮아지이내 시작을 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런데 남길 것을 먼저 생각하는 방법은
단순하면서도 아주 탁월하다.

예를 들어,
부엌에 있는 컵을 쫙~ 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

이거! 작고 빨간 내 컵.  
사이즈도 딱이고, 색도 좋고, 난 이게 좋아!

그리고.. 음..
가족사진이 들어가 있는 이 컵도 좋고~

1초 만에 나를 훅~ 잡아끄는 것 몇 개를 고른다.

잡아지는 것 외에 나머지는 방출이다.


이렇게 취할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버릴 것을 잡고 묵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하면 
일상 속에서 보물을 찾는 듯한
반짝 반짝이는 기쁨이 있다.

정리를 하는데, 재밌고 홀가분하고 가볍다.
그리고 내 삶이 더 단아~해지지만 충만해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컵. 늘 이컵만 쓴다.



3. 대화의 단샤리


어제 '비폭력대화' 책을 읽다가
상대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지 말고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부탁하라는 글을 읽었다.

'자기도 뭘 원하는지 모르는데
상대방한테 내 마음을 알아내라고 닦달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현실적인 것인지에 대해 적혀있었다.  

나는 nvc를 모를 때 자주 잔인했다.

남편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유튜브 좀 그만 봐요'

'밤에 과자 좀 그만 먹어요'

'과자를 이불 위에서 먹지 말아요'

'수건 가지고 나오지 말아요'

'치약 가지고 나오지 말아요. 제발!'

'면봉 쓰면 버려줘요. 거기다 그대로 두지말고'
...
'하지 마' 대화법은

신생아때 몸에 내장되어 태어나는 걸까? 

왜이렇게 쉬워?? 참내~ 


반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으로 바꿔 부탁하려고 하니...

말문이 턱! 막힌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려면~

터진 입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stop! 할 의식이 있어야 하겠고,
그다음. 내 느낌과 욕구를 들여다봐야. 원하는 걸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원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자...
해보자.

 
'유튜브 좀 그만 봐요'라고 하려다.
'나랑 산책할래요?'라고 말한다.


'밤에 과자 좀 그만 먹어요'라고 하려다가.

'당신이 건강해서 나랑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배고프면 과일이나 다른 걸 먹는 건 어때요?' 
라고 말한다.


'치약을 가지고 나오지 말라고요 좀!!'이라고
한숨 쉬며 말하려다가

'내가 치약을 쓰려고 할 때
약속된 그 자리에 치약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 여러 번 하는 일을 빨리 쉽게 하고 싶어요.
두고 나와줄 수 있나요?'
라고 말한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긍정 의문문으로 묻는 'nvc 부탁'은
그야말로 대화의 단샤리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물건만 단샤리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일상의 대화들도. 내 마음도.
단샤리 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로 난리였던 2020년도
이제 마지막 한 달을 앞두고 있다.

물건의 단샤리.
대화의 단샤리.

코로나로 모임은 없는 걸로 생각하라는 올해 12월도.
어쩌면 안팎의 단샤리를 혼자 샤부작 샤부 작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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