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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25. 2021

86세의 내가 나에게(2021.0125)

비폭력대화(nvc) 삶으로 살아내기 - 26화

1.



이번 주 아티스트 웨이 숙제를 후루룩 했다.
(아티스트 웨이는 12주짜리 창조성 워크숍이다)

이번 주 주제는 '개성을 되찾는다'이다.

 숙제가 개성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나'를 만나라는 숙제를 받았다.  





2. 86세의 유하나



우선, 미래로 날아가 본다.
80대의 유하나를 상상하기 위해
86세로 현재 살아계신 우리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얼굴은 주글주글. 버섯이 뒤덮인 몸.
머리는...(머리카락이 많으면 좋으련만) 숱이 별로 없겠지.
50대였던 엄마를 떠올리면
벌써 그때부터 머리숱이 적어져, 모임용으로 쓰는 부분가발을 가지고 있었다.

80대라면, 100프로 흰머리일 거고,
몸은 지금처럼 말랐을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귀, 목, 눈, 허리, 다리, 무릎 등 안 아픈 곳이 없이 아프던데.
약을 한 줌을 드시고도 일상이 고통스러워 보이고...

나도.. 그럴까?
갑자기 굉장히 두렵다.
늙는다는 것.
아프다는 것.
회복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내.

86세 유하나 할머니의 내면에 집중해본다.

보잘것없고 초라한 몸과는 대비되게
환한 웃음.
맑은 영을 갖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쫒으며 살아온 평생이
표정과 아우라에 배어있다.


성경에서 약속하기를
이런 아름다움은 세월이 가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없어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갖춘 나를 상상한다.

그리고
'오목하고 단아한 단색 그릇' 같은
할머니의 말투와 몸짓을 상상한다.

나이, 경험, 젠더, 언어 등이 다양한 어떤 상대를 만나도
'들을 줄 아는 귀'와
'볼 줄 아는 눈',
'따듯하고 아늑한 가슴'을 가진 노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순간.
팔십은 너무나 늙어 보일 것 같아서.
꼭 팔십까지 말고,  
그전까지 맛깔나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결국 죽기 직전까지 최대한 할머니 '급'에서는 쁜 할머니이고 싶은 거.)




3. 86세 유하나가 쓴 편지


 "일단 관심이 가는 건 너무 쟤지 말고 해 봐~
~~ 해보라고~~
 
안 해도 80살은 되고,
해도 80살은 될 거야.

만약 실패한다 해도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아.

적어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배울 거야.

뭐가 두려워?

괜히 시작했다가 고생만 할까 봐 걱정이야?

괜찮아~

막상 그때 되면 사람은 다 "A C~ I C" 거리면서
다 하게 되어 있어.

아니면 중간에 그만 두면 되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알수가 없네. "












"아.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지.

네 몸을 지금처럼 다루지 마.
넌 마치 네 몸을 오래 같이 산 배우자처럼 홀대하고 있잖아?

당연한 건 당연한 게 된 지 오래고,
네가 해주는 건 요만큼도 없으면서
바라는 건 엄청나게 많고.  
 
네 몸과 좀 더 대화하고 관심을 가져줘~
모든 관계는 노력한 만큼 오솔길이라도 나는 거야.
배우자랑 관계는 회복 불가능하면 이혼이라도 할 수 있다지만,
네 몸과 너는 죽을 때 이혼하는거야.
그러니 어떻게든 잘 보듬고 돌보며 살아야 되지 않겠어?

네 몸과 만들어내는 그 아름다운 오솔길이
어느새 잡초에 뒤덮혀 버리지 않길 바라.

그리고, 비교적 네 몸을 자유롭게 데리고 다닐 수 있을 때
네 몸과 함께
걷고
뛰고
여행하라고~~!

뛸 수 있을 때 뛰어!

달릴 수 있을 때 달리고!

움직임이 자유롭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넌 내 나이가 돼보지 않으면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리고 어떤 상황에도 호기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 
내가 지금까지 인생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엄청 단순하거든.

난 궁금한 게 많았어.
물론 지금도 많고.

내가 궁금한 것들에 몰두하다 보면 하루는 휙 가곤 했지.

몰두할 것이 있고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참 아름다운 것 같아.

호기심과 몰두.


네 안에 한 때 가득했던 것들이야.
그걸 절대 빼앗기지 않길 바라"












 


"아!!!! 빠뜨릴 뻔했네~
뭐든지 기록해~!  
뭐든지~!

왜냐고?

기록하고 공유한다는 건
내가 아는 가장 찐한 사랑의 방식이야.

내 경험.
내 아픔.
내 실패.
내 성공.
내 고뇌.
내 난감함.
내 모든 것을 글로 남겨주는 게
내가 상대를 믿고, 사랑해서, 함께 사랑하자고 하는 행동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부지런한 기록은
부지런한 사랑이야.

난 네가 계속 무언가를 쓰길 바라."



4. 고마워요. 할머니!



왜 '개성을 되찾기 위해'  80대로 가보라 하는지 알겠다.

- 도전과 실패를 가볍게 여기는 것
- 몸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 호기심과 몰두를 귀히 여기는 것
- 계속해서 쓸(사랑할) 것

86세의 유하나가 말해준 이 네 가지.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여실히 드러난다.

다른 누구의 조언이 아니라.
어떤 베스트셀러 책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
너무나 나답다.

 

'고마워요. 유하나 할머니.
덕분에 나에 대해 오늘 더 알게 됐어요'

나에게 나직이 속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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