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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26. 2021

거절. 잘하고들 사십니까(2021.0126)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27화


1. no




최근까지 no라는 말을 쉽게 못 했다.
no를 즉시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한편,
상대방에게 no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무안하고, 뒤돌아서는 씩씩댔다.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만큼 남이 즉시 거절하면
몹시 야속했다.

비난하고 싶었다.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나 봐!!!! 으허헝'
또는
'저렇게 이기적이어서는!
누구는 저렇게 안 하고 싶나?'

나는 두려웠다.

거절당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2. 거절에 담긴 이유


작년 가을과 겨울, 비폭력대화를 배우며

나의 거절에도 아름다운 이유가 있고,
당신의 거절에도
내 것만큼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욕구(needs)는 보편적이기에,
그 이유 차원에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no를 주고받는 것이
내가 생각한 만큼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연결'될 기회라네?






3. 거절당하기 연습



수업 중에 참고도서로 '거절당하기 연습'이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이 글의 작가는
일부러.
수없이.
거절당할 상황을 찾아다니며. 거절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배우고 있었다.


오늘은 인상 깊었던 두 부분을 필사해본다.





상대방에게 '당신은 거절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바라던 승낙을 얻어낼 수 있다.
132 p


준이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말해보고 싶다.

'진심으로'에 방점을 찍는다.


''엄마가 이렇게 부탁하지만.
너는 거절해도 돼'

이런 말은 내 부모에게는 못 들어본 말이다.

사실 요즘도 매일의 일상에서 나는 아이에게
'의문형'으로 위장한 강요를 반복 재생하고 있다.

'지금 땀났는데 씻어야겠어 말아야겠어?'


'밥을 먹어야 그 뒤에 후식이 있겠지?'

내 자녀를 진심으로 한 인격체로 보고
내 부탁도 당연히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찐 존중'의 마음을 탑재하고 싶다.

하지만
'자녀에게 부탁하기'는 부탁의 끝판왕처럼 가장 어렵다.

거절당하면 많은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들까?
약이 오를 때도 있고 무척 서운할 때도 있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어' 해도,
막상 당하고 나면
'마음과 몸이(심사가)' 뒤틀린다.
( 이 주제는, 시간을 두고 내 마음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부탁 비슷한 말로 코팅된 강요 말고,
진짜 부탁.

거절당한다 해도

아이의 욕구를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okay~!라고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부탁.
 
오히려 너의 no를 통해
 더욱 깊이 연결되는 그런 부탁.

자녀와 그런 부탁을 자유자재로 주고받는 관계가 되고 싶다.





두 번째 필사한 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모두가 반대할 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용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이는 근육과도 같다.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차 약해지고 위축된다.

그래서 나는 용기라는 근육을 단련하고
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북돋우기 위한 방법으로 거절당하기 도전을 이어간다 (에필로그. 270p)


근육..
근육이란 말이지.

평생 운동은 작심삼일.
근육이라고는 장착해본 적이 없는 몸인데.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니.

첩첩산중이다.

마음 근육.

마음 근육.

마음 근육.

육즙이 줄줄 흐르는 몸과 마음을
꿈꿔본다.








3. 거절 연습


보디빌더처럼 육즙을 키우 싶어서

요즘 거절 연습을 하고 있다. 

지인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그곳에 가는 것보다 그 순간은

다른 걸 더 하고 싶었다.


담백하게 거절했다.


초대 문자에 대한 답장



캬~~~ 아~~~~~
맘에 든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내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내 답변이 참 마음에 든다.

예전처럼 갖은 핑계를 대려고 궁리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경제적!


건강한 애를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갑자기 없는 선약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고,

한가한데 바쁘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걸 표현하고 나니.
예전처럼 no라고 말할 때 느꼈던
내 몫 이상의 책임감과 미안함,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no를 제대로 하면.

참으로 가볍고 홀가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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