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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23. 2021

역할의 재발견(2020.1116)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25화


1. 역할을 벗고 존재를 되찾아라?

루빈의 술잔


요즘 '존재'라는 말이
엄청 많이 들리고 보인다.

전에는 안보이던 것이
이상하게 많이 들리고 보일 때는
신이 내 귀에 고함치고 있는 것이라고 하던데.


한동안 '존재'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분법적으로 보았다.

'역할'은
나를 힘겹게 하는 것.
무거운 것.
버릴 것.
벗어날 것으로.

'존재'는
추구해야 할 것.
유토피아 같은 것.
가벼운 것.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으로.


그런데 최근.
이 견고한 생각에
균열을 일으킨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2. 짬뽕과 짜장



며칠 전 참관자로 초6 교실을 구경할 일이 있었다.

이날은 선생님께서
'다수결이 진짜 좋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수의 의견도 잘 들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예를 하나 들어 보이셨다.


''모두가 짜장을 먹는다고 할 때
혼자 짬뽕을 먹겠다고 할 수 있나요?

메뉴를 하나로 통일하면 빠르게 배달될 수 있어요.
모두 다 배가 무지하게 고픈 상황이고요.

모든 아이가 짜장을 먹겠다고 할 때
끝까지 자기는 짬뽕을 먹겠다고 한 아이가 있었어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애들이 소리 높여 그 짬뽕남을 비난했다.

"짬뽕! 그까짓 거 안 먹으면 되는데~!"

"하나로 통일하는 게 낫죠~ "

"민폐다! 아 눈치 없어~저 같으면 먹고 싶어도 말 안 할래요"

"정 먹고 싶으면 너네 집에서 먹으라고!"
등등.


선생님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런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에게 짬뽕은...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음식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엄마는... 돌아가셨고요''



아이들은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였다.




한편
나는 뒤에서 심드렁~해있었다.

온갖 한국형 막장드라마를 보며 자라서
영혼이 닳고 닳았기 때문일까?

'아.. 뭐야.
급...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너무나 전형적인 한국형 드라마 스토리 라인이라..
'실화일까 지어내셨을까' 궁금할 뿐이었다.




3. 엄마. 그 강력한 이름




그런데 갑자기 죽어버린 엄마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나 심하게 짬뽕남을 혐오하던 바로 그 남자아이들이 심상치 않았다.   

어떤 남자아이는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이렇게 말했다.
 ''안돼~~~ 제발~~~!''

또 어떤 아이는
''아~~~~ 내가 같이 짬뽕 먹어줄수있는데!''
라고 외쳤다.

또 한 아이는 매우 슬픈 표정을 하며
"그냥 다 같이 짬뽕 먹어요!!"라고 외쳤다.



왜 나는 여기서 울컥했을까.


아이들의 말을 듣는데
순식간에 그들의 엄마가 되었다.
(하필이면 나도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의 시키..
말 더럽게 안 들어도..
그래도 너네가 엄마를 좋아하는구나.
너네가 응... 그래도. 엄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고마움의 울컥 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초6 남자애들의 가오를
힘없이 와라 락 무너뜨릴 수 있는 그 한 단어.

엄마.


엄마를 향한
모~~~~ 든 인간의 깊은 갈망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엄마 역할을 어쩌다 보니 맡고 있다는 것이
로또에 당첨된 듯 엄청난 행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아들'인 이 귀한 녀석들.  

겨울 패딩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엄마가 고심 고심하여 비싼 값에 사줬을 겨울 패딩을.
먼지 구덩이와  함께 구르고 있는 옷을
털어주고 의자에 걸어다.

어떤 남자애의 책상 위에는
200미리 빈 우유갑이 올려져 있었다.

저 등치에 쟤 저거 먹고 점심시간까지 배고플 텐데..
한 팩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겠구먼.
쟤한테는 두 개 주지.. 하며 혼자 안타까워하고.

 





2017년에 아이 낳고 3년 반.
엄마라는 역할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늘 고군분투했었다.

역할에 눌린 내 존재가 불안해서
'나'를 기억하고 돌보려고 지키려고 참 애썼다.

그런데,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이 '엄마'라는 역할의 옷도
완전히 다른 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향해 입 어보 고나니 너무나 새롭다.

이 새로이 마련한 안경이
참으로 신기하다.




4. 당신들은 내 아이의 아빠



그런데 오늘 아침.
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침 9시 반 우리 집 거실.
또 나만 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금토일 여행을 다녀와서 뻗어 잤더니
월요일 아침 9시 반이다.
10시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텐데..

집에서 이리저리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나에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유유히 준이가 다가온다.
로봇이 10개쯤 그려진 책을 들고 있다.

'What the?'
불길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나.

상황 파악 같은 건 할 생각도 없는 너.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 로봇들 만들어줘"

헉..

"엄마는 이거 못 만드는데...
음.. 근데 이거 그릴 수는 있어~"
(그 와중에도 아이의 호기심. 재미.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다)

제일 쉬워 보이는 거 두 개를 그렸다.

내가 그린 로보트들


"다른 것도 그려줘"

아이의 호기심을 덮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전 간식이 배급되는 10시 전에는
보내고 싶다.

" 두 개만 골라. 나머지는 오후에~"
다행히 협상이 됐다.

"이제 가자!"~하니

"까이유~까이유 하나 보고 갈 거야" 한다.
매일 어린이집 가기 직전에 하나씩 보고 가던 영상이다.

후.. 그래!
마음은 급하지만
아이와 늘 하던 의식이니
예측가능성. 신뢰. 일관성을 지키고 싶다.


10분 영상을 보고
"이제 진짜 가자~" 하고
현관을 나서는데 갑자기 현관 앞에서 자전거를 꺼낸다.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자전거! 안 그래도 늦었는데!
ㅠㅠ'

혼자 씽씽 타고 가는 자전거가 아니다.

자전거 핸들과 연결된 기다란 손잡이가 있어서
내가 두 손으로 힘을 줘서 방향 조종을 해야 한다.
발 구르는 힘도 약해서 밀어줘야 하고..

게다가 오늘은 월요일..
이불까지 가져가는 날이다.

이불에.
애 어린이집 가방에.
애는 한 손에는 장수풍뎅이 장난감 가져간다고 들고 있고.
자전거까지 탄데..
미쳐 미쳐.

한숨이 나왔다.

"아 됐어!!!!!!"
빽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었다.


현관 앞에서 오늘도 깊은 심호흡을 했다.

들숨이 날숨이 자매가 내 몸을 위로하며 토닥인다.

내 몸에 생성중인 사리를 숨 자매들이 녹여준다.

'아이는 시계를 모르고,
늦게 일어난 건 내 잘못이다.

그리고 좀 늦으면 어때.
수능시험장도 아니고
겨우 어린이집이잖아?'

그래서 나는 그냥 자전거를 타라고 한다.

이렇게 내쪽에서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겨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서 누가 탄다.

30대 남자 한 명과,
40대 남자 한 명.
정비공 유니폼 같은 걸 입고 있다.
대화를 들어보니, 현장을 보고 나서 도구를 챙기러 주차장에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준이에게 말을 건다.
'' 아고~ 너도 마스크 쓰느라 고생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짐이 주렁주렁 인 내가 아이 자전거를 못 밀어 한바탕 씨름을 한다.

그들은 갑자기 119 구급대원들처럼 한꺼번에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나를 구조해준다!

한 명은 문을 잡아주고
다른 한 명은 아이의 자전거를 능수능란하게 몰고 가며

'' 아저씨가 이거 선수야~
아저씨도 아들 자전거 많이 몰아줘봤거든?
아저씨는 이런 자전거 만들수도 있어~너 만들어봤어?'' 하면서.


이거 뭐지????
별것도 아닌 일인데 눈물이 핑 도네?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아이를 안쓰러워하는 아빠.

짐이 주렁주렁 이고 아이 자전거까지 몰아야 할 때
얼마나 정신없는지 겪어본 아빠.

갑자기 닫히는 무거운 철문이
아이에게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인식이 있는 아빠.


그 순간 그 두 남자는
자기 존재 위에 아빠라는 역할의 옷을 입었다.

'당신들.
혹시 나 작정하고 유혹해요?'





5. 나는 남편이 여럿인 여자


어찌어찌하여 아이를 데려다주고
이제야 아침의 난리법석 끝났다.

비로소 혼자된 순간.

깊은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며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작업들을 시작하려는 그때.

너무나 소중한 약 3시간 남짓.


갑자기 아래층에서 귀청을 찢는 드릴 소리가 난다.

뭐니?


순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까 그 두 남자구나!


평소 나라면.

정말 평소의 나라면.

예고 없이 끼어드는 공사 소음에 광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사하겠다고 위 아랫집 동의받으러 다니는 사람한테 '동의하지 않음'이라고 면전에서 써줘 봤던 자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정말 뻥 안 까고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아까 내가 마음이 가난했던 순간.
그들이 보여준 아빠라는 역할의 옷을 떠올리며.
나는 그 순간 아내의 옷을 입었다.

'아침은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
우리 남편처럼 아침 일찍 출근했겠지?
오늘 엄청 추운데... 현장행이네.'

차에 있는 공구를 뒤져가면서
처자식 먹이겠다고 일터에 뛰고 있는 남편들.

귀를 찢는 소음도 때로는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5. 역할에 압도되지만 않는다면



역할이라는 것도
내가
벗을 때 벗고
입을 때 입을 수만 있다면!

'이 역할을 지금 내가 입고있구나!'
라고 알아챌 수 있다면.

'이 역할을 내가 지금 벗는다!'
라고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낄낄빠빠하는
재치 있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나는 입입벗벗하는
더욱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 텐데.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역할을 입되.

입고 있는 이 옷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고,
그 옷 안에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서로 기억하고 인정하고 존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존재로 만났다~
역할로 만났다~
다시 존재로 만날 수도 있는.
무한히 풍요로운 관계를 누릴 수 있을 텐데.

딸,
엄마,
아내,
며느리,
누나,
학부모.. 등의 역할을

치마, 원피스, 바지, 블라우스, 목폴라 입듯이
마음껏 즐기고 소화하고 누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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