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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28. 2021

어쩌다 갑질(2021.0128)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29화


1. 누룽지 더 주실 수 있어요?





아~~~~ 누룽지탕 당긴다.
내가 좋아하는 단골 중국집의 누룽지탕!
가락시장서 떼온 해산물이 싱싱하고 풍성하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 데리고 외식 가기는 찝찝하고...
배달시키자~~~!

그런데,,,
간이 좀 짰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쯤 '거절하기'와 '거절 듣기'를 연습하고 있었고,
연습할 좋은 기회다 싶어 평소 안 하던 부탁을 한다.

'' 누룽지탕에 올려주시는 사각형 누룽지요~
혹시 좀 더 주실 수 있어요?
누룽지탕은 너무 맛있는데.. 좀 짜서요~
더 넣어서 먹고 싶어요~''


손바닥보다 작은 사각 누룽지는 (내가 보기에) 정말 저렴해 보였다.
그리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여기는 평소 군만두 서비스가 후한 곳이다.
누룽지 몇 조각 더 못주랴?  


진심으로, 강요가 아닌 부탁이었다.
상대가 거절한다 해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부탁을 하니
옆에서 운전을 하던 남편이 깜짝 놀라 날 쳐다본다.

'어떻게 저런 요구를 이렇게 당당히?'


부끄러움은 그의 몫이다.

나는 당당하다.
' 나 연습 중이거든? 안됨 말면되잖아~'  


중국집서 돌아온 답변.

''그 누룽지가 안 그렇게 보여도  꽤 비싸요~
그래서 더 드리기가 좀 그런데..

그리고 더 넣어 드시면 팍팍해요.
그 개수가 들어가는 게 딱 좋아요''

나는 '오.. 적정량이라는 게 있구나?
아... 이게 비싼 것도 몰랐고'
신기해하며
 
''(최대한 공손하게)
네~ 알겠습니다~ ~!'' 하고 대화를 끝냈다.


그런데
맙소사.


내 요구대로 평소보다 두 배의 누룽지가 왔다.

나는 의기양양.
남편은 신기.

남편은 부끄럽다던 누룽지를 가족 중에 제일 많이 먹었다.

'나랑 결혼하길 잘했지?'

그날 밤, 내 어깨 뽕은 한없이 올라갔다.



2. 부탁이었나 갑질이었나?


그날 밤, 나는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평소 안 하던 부탁을 했고,
어쩌다 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잊었다.

그리고 네 달이 지난 지금,
적어놓은 일지를 읽는데
이 날의 부탁이 뭔가 찝찝하고 아쉽고 불편하다.  

나는 부탁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은 강요로 받았을까?

이 지점에서 명쾌하지가 않아 그렇다.

처음에 분명히 안된다고 말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내 말을 들어줬다.

원망하고 짜증 내며
'에잇, 먹고 떨어져라~'라고 보냈을까?

무리한 요구를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진상고객들이 널렸다.
장사하면서 고개가 절레절레하게 수없이 만났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가득 가지고
누룽지를 더 달라는 내 말을 들었다면,
그날 나는 '오늘의 진상녀 3'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돈을 주고 음식을 사는 입장이기에
가게로서는 내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구조다.

부탁을 안 들어주면 내가 더 이상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을 수도 있겠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면 배울수록
행동 그 자체보다, 나와 남의 행동의 '동기'에 민감해진다.

나에게 '기꺼이' 주었을까
'두려움'에서 마지못해 주었을까?

두려움에서 누룽지를 주었다면,
우리는 그날 연결되지 못했다.

그저 내 말이 상대의 두려움을 자극했고,
그 두려움을 무기 삼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낸 게 된다.

이건 명백한 '강요'다.

미투 운동에서 확인했듯이
파워가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성폭력, 성희롱 과정은

이날 누룽지 배달 과정과 꼭 닮았다.






3. 강요하는 게 아니라
 '부탁'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리지?




비폭력대화 책에서는,

'기꺼이 진심으로 부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1) "기꺼이 할 수 있을 때만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라고 명백히 말하는 거란다.


명백히 말해주면,
이것이 강요가 아니라 부탁임을 상대가 믿도록 도울 수 있다.

중국집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 지금 부탁드리는 거예요~
기꺼이 누룽지를 더 보내주실 수 있으면 보내주시고 아니면 보내주지 마세요~"




2) 두 번째로는,
(책에 의하면)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그 사람 말에 공감해주는 것이란다.

(무엇에 공감?-느낌과 욕구에 공감)


지금 보니 나는 이 부분을 완전히 누락했었다.

상대가 내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움'을 표현했을 때,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끊었다.


나는 공손하려고 한 건데
상대는 내가 '알겠다'라고만 하고 끊으니
위협을 느꼈을 수도 있고,

고객과 단절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단골이 떨어져 나가려나?' 두려워하며)


다시 한번 말해보자.

"이러저러해서 좀 드리기가 그런데..."
->
" 네~
가게를 하시면서 수지타산도 맞추셔야 하고,
전문가 요리사분이 맛있게 조리한 대로 배달해서
제가 맛있게 먹기를 원하셨던 거죠~?
잘 알겠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전 진짜 몰랐어요~"


우와.

그냥 "알겠습니다"하고 끊은 거랑
너무나 다른 대화가 된다.

상대는 이 쯤되면
내가 했던 게 '강요'가 아니라 '부탁'이라고 믿을 것 같다.



 



4. 부탁하면 부탁이 되는 사회


강요가 만연한 사회다.
특히나 한국이 더욱 그렇다.

학생은 이래야 하고,
30대는 저래야 하고,
며느리면 요래야 하고,
엄마라면 고래야 한단다.
서로서로 놓칠세라 단속해주고,

스스로 혼자 있을 때도 자기 단속하기 바쁘다.

'거절'도 기꺼이 주고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진짜 부탁'은 희귀하다.

너무나 희귀하여,
그 귀한 '진짜 부탁'을 상대가 할 때도,

우리의 부탁에 대한 일천한 경험 때문에 내쪽에서  강요로 들어버린다.

안타깝다.



상사의 어떤 말도 부하직원에게는 '강요'로,
남성의 어떤 행동도 여성에게 '강요'로,
고객님의 어떤 단어도 서비스 업계에 '강요'로,
교사의 어떤 제스처도 학생에게 '강요'로 들린다.

사춘기 자녀가 끝판왕인데,


그간 부모에게 당한 수많은 강요의 후유증으로
부모가 입만 뻥끗하면 자기가 '강요당했다'라고 우긴다.  
 
나는 찐 부탁을 할 지혜와 혀,
찐 수락과 찐 거절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갈망한다.

'누룽지' 하나도
제대로 부탁하고
(나의 느낌과 욕구 needs를 잘 담아서)

부탁한 뒤에 제대로 거절당하고 
(no뒤에 당신의 아름다운 이유들이 있군요!라고 상대방의 거절을 진심으로 수용)

수락될 때는 제대로 수락되고 싶다.
(갑질로 느껴져 상대가 할 수 없이 수락해주는 거 말고)

이런 찐 시리즈(찐 부탁-찐 거절-찐 수락)가 펼쳐지는 일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다.


 

"진짜 부탁하는 건데요~" - 영화 슈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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