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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an 30. 2021

공감 안됨에 격한 공감을(2020.1208)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31화


1. 공감. 쉽고도 어려운




''공감하기 위해서.
심리 이론이나 심리치료를 위한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
- 그 순간에 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특정한 느낌과 욕구-에
함께 있어줄 수 있는 능력이다.

(비폭력대화, p207)


'함께 있어줄 수 있는 능력'

멋지다.


근데...
그 멋진 능력이
유독 가족에게는 왜 안 나오냔 말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비폭력대화, p198)

마샬 아저씨!

아시죠?
저만 그런 거 아니지요?





2. 남편 공감
 


"괜찮겠지???......"

남편이 달력과 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이 한마디에 나는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했다.




"아버님은 코로나고 뭐고 계속 게이트볼장 계속 가시고!

어머님은 친구들이랑 저번에 여행도 가시고!

자기는!!! 응?!!! 맨날 회사 가서!!!  점심때 밖에서 밥 사 먹잖아!! 그리고 내일은 회사 골프도 가잖아!!

그러면서! 응?!

무어? 나랑 잡은 결혼기념일 외식을 '괜찮겠지?'라고? 뭐?~~~~!'


상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몇 초의 적막이 흐르고, 남편이 부드럽게 말한다.

"자기야~~
나는 괜찮겠지.라고 말했을 뿐이야."

정신이 차려진다.


민망하다.


맞다. 남편은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 가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갈 건데!
안 간다는 게 아닌데!
그 염려되는 느낌을 나와 '공감'하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둘이 가려면
시부모님께 준이를 맡겨야 하고,  
'코로나로부터의 안전'을 이유로 부모님들께서 '가지 말라니 어쩌니'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그저
걱정되는 마음을 나와 나누고 싶었고,
부모님으로부터의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싶었다.






한편, 나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에게서
"코로나라도~다른 건 안 해도 결혼기념일 날은 자기랑 특별한 시간을 보낼 거야"

이런 류의 말을 듣고 싶었다.

정말 안전이 염려된다면

"안전이 중요하니까~
거기 말고 내가 더 안전한 곳을 찾아볼께~!"
라고 대안을 가져오길 바랬다.

또는,

"안전보다 우리의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게 더 나에게는 더 중요해."
라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결국 우리는 결혼기념일을 '둘이서 축하'하자는 데는 서로 동의하고,  
처음과는 다른 수단과 방법을 찾았다.

남편이 평일 휴가를 내기로 했고,
집 가까운 북적이는 식당 말고,
좀 먼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는 시부모님 말고,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으로!

'안전과 자율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 남편이 해피해졌다.

남편이 휴가를 내겠다는 말에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아까 화난 것도 바로 까먹고 기분이 뿜 업이 되었다.
자존심. 같은 건 없다. 흐흐~


상상해본다.


"괜찮겠어?"라는 남편의 말에
처음부터 내가
"당신은 우리 모두의 안전이 중요한 거죠?"라고 공감해주었더라면?

나는 백조처럼 우아한 와이프로 남았겠지.

쩝..

하지만 아까는 남편을 공감할 여력이 없었다.

집이라는 뻔한 공간에 '코로나, 코로나'하며 아이랑 있다 보니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 가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내 공감이 급할때는

남 공감이 무지 안된다.





우여곡절끝에 간 레스토랑. 분위기는 별 5개





3.  아이 공감


한 해 동안 아이와 지내며
'언제 내 속이 타들어가지?'
'언제 내가 화가 솟구치지?'  질문하며
그 순간들을 계속 기록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준이의 욕구가 예전보다 더 빨리, 더 뚜렷이 보인다.

아이의 메인 욕구는 "자율성, 재미"다.

특별할 것도 없다.
모오~~ 든 육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그럴 나이라는 걸 '머리'로 안다고 해서
'마음'으로 모두 공감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아이의 '재미'의 욕구를 시원하게 무시해주었다.






9시 50분까지 어딜 가야 했다.
나는 시간을 지키고 싶었다.
약속한 사람과 신뢰를 쌓고 싶었고,
서로에게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고 싶었다.


늘 그렇듯. 아이는 바쁜 날 특히나 더 자율성을 뿜어낸다.

어린이집에 가는데 아주 한 세월이다.

친구들이랑 가져가서 놀고 싶은 것을 챙기고.
(볼링핀 10개와 공-어마한 부피다....)

그건 이래서 저래서 안된다고 대화하느라 시간이 또 간다

어린이집 가방이 있는데도, 그 가방 말고 자기가 고른 가방을 또 매야한다.
(원숭이 가방,
아기 상어 가방,
뽀로로 가방 중 계속 바꿔 매며 고민하는데)

그 가방에는 또 가져가고 싶은걸 아침마다 바꿔 넣는다.
(가방을 바꾸면 내용물을 또 바꿔넣야한다. 무한반복.
소방차 뺐다 경찰자 넣고,
경찰자 뺐다가 나무 막대기를 넣고 등등)

신발도 이거 신는 댔다가 저거 신는 댔다가.(으아!)

누군가의 조언을 따라서
전날 밤 아이한테 낼 입고, 신고, 가져갈 것을 준비하게도 시켜봤지만,
소용없다.

그냥 '그 순간 바꾸는 재미'가 너무 큰 것 같다.
'엄마 열 받게 하는 재미'도 큰 것 같고... 쩝.

나는 현관에 서서 심호흡을 한다.
성질대로 했으면 현관문 몇 번 부쉈다.

"이제 다 된 거니?"
"열 번 센다~"



이날 간택받은 가방,신발,터질듯이 싼 장난감, 책





부랴부랴 차를 몰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리는데.
아이가 어린이집 쪽으로 안 가고
홀리듯 다른 곳으로 향한다.

"엄마. 저거 뭐야? 저거. 저거"


자동차 배기구 구멍에 앉아있다.

준이는 방금 전까지
그렇게 집착하며 챙겼던 모든 짐을 땅바닥에 털썩! 내려놓는다.

마치 '무소유' 퍼포먼스 같다.

스르륵!!
툭!!!  
미련 없이!
모조리!


그리고 이제는 쪼그리고 앉아
배기구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을 넋을 잃고 쳐다본다.
( 무소유 실천 후
이번에는 현존 중)

'제발.. 오노....'


매연이라고!

그리고 지금 늦었다고!'


"엄마. 여기서 곧 불이 나는 거야? 연기야?

이거 어떻게 나오는 거야?

왜 하얀색이야?

자동차가 화가 났나 봐?"


아 미쳐 미쳐..



육아의 법칙:
남의 집 애가 하면 귀여워 미칠 것 같고,
내 애가 하면 그 순간 진짜 미친다.



"아 그만해!!!!! 몰라!!!!!!!   빨리 가!!!!!"

나는 샤우팅과 동시에
아이 몸을 번쩍 들어 연행한다.
16킬로를 옆구리에 낀다.

애 키우며 느는 건 괴력뿐이다.

"아~~~ 나 더 볼 거야 더 볼 거야~~~ 으앙ㅇ앙~안 들어갈 거야~~ 으앙앙"


딱 현관에 갖다 놓고 강아지 무시하며 돌아선다.

난 내길을 간다!
넌 니길을 가라!
우리 이렇게 살자!
에잇~ 짜즁나~!!!!

그런데 이상하게
차를 몰고 돌아가는 길.
마음이 몹시 찝찝하다.


'아이가 더 보면 안 됐나?'

'내가 늦으면 안 됐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나?'


나는 사실... 약속만 없었다면.
배기구의 김을 넋을 놓고 관찰하는 이 네 살 아이가 참 좋다.
유튜브를 몇 시간째 보고 있는 멍한 눈과는
차원이 다르다.

휘둥그레졌다
반짝반짝했다가
골똘했다가 하는
까맣고 작은 눈동자.

나는 사실.. 약속만 없었다면.
세상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 네 살 아이랑 노는 게 좋다.

'차가 화났어?'라고 묻는 너에게

'응~지금 엄마 마음 같네.
엄마도 코에서 김이나 오려고 해.
봐봐. 입에서도 나오지?
하~하~
난 티라노사우르스다!!!~~~쿠아~~!!~'
라고
애랑 쪼그리고 앉아서 농담 따먹기 하는 게 좋다.


아이처럼 시계를 안 보고(못 읽고) 살면
아이와 부딪힐 일이 없는데.

'잠깐만~'
'잠깐만~'하며
핸드폰을 확인하는 대신,
핸드폰을 저기 두고 없는 것처럼 살면
아이랑 물 흐르듯 대화랑 눈빛이 오가는데.

배기구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을 보겠다고
고래고래 울 때도 딱 요때뿐일 텐데.

약속 장소에 가는 그 순간.

아이의 시공간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
내 인생에서 다시 안 올 순간이고
그 순간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근데.
돌아서면 알겠는데.
왜 그 상황에선 안되냐고!!!!!

그래도.
이렇게 뭔가 끄적거린 날은.
적어도 그 다음날 하루는.
(솔직히 말해서 하루도 못가..
한 나절은)
내가 조금은 달라진다.
내 마음이 달라지고
그래서 내 말이 달라진다.

이 맛에 계속 쓰고 있다.




4. 공감 안됨에 격한 공감을!



''뭐라고?
너도 그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순간. 우정은 생겨난다.  - C.S 루이스-


지나가는 행인.
아파트 주민.
어린이집 엄마.
오랜 친구.
오늘 줌 수업에서 만난 사람.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그들에게 공감이 된다.

남한테는 공감이 너무 잘돼서 문제다.
넘치는 공감력을 나름 '조절'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아빠. 남편. 아들 등.
가족에게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ㅠㅠ


그 간극을 깨달을 때마다
의기소침해지고 힘이 빠진다.

왜냐면 나는 누구보다도 가족과 '짙은 공감'을 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정도 노력하고 있으면
남들이랑 고만고만한 게 아니라,
좀 티 확~! 나게 뭔가가 달라져야 하지 않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폭력대화의 ㅂ도 모르는 행인1이나
애쓰고 있는 나나
가족이랑 똑같이 지지고 볶는 것만 같다.



가깝고도 먼.
가족이라는 존재.

살다 보니 나 말고도
가족이 가장 어렵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우리의 버둥거림이.
애씀이.
서로에게 큰 울림이 된다.

그 울림은 우리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마샤~쥐 해준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어쩌면
'가족끼리 제일 공감이 잘 돼야지!'
도 우리가 갖고 있는 '신화'가 아닐까?

신화

=사실 아무도 못하고 있는데
모두 목표로 하고 있는 그것

= 다들 하고 사는데 자기만 못하는 줄 알고,
모두 좌절하 그것

우리는 덕분에 온 인류와
'공감 안됨'을 격하게 '공감'하며
뜻밖의 우정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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