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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14. 2021

지지주. 한잔 하실래요?(2021.0214)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41화

1.


요즘 '나를 지지해주는 말'을 모은다.

힘 빠지게 하는 말, 주눅 들게 하는 말, 자신 없게 하는 말, 듣자마자 짜증이 뻗치는 말, 듣고 있기 아픈 말은
모으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까먹으려고 해도
까먹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지해주는 말을 모아놓고
필요할 때 꺼내보는 것은
정말 요긴하다.




2.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작년에 혼자서 끄적끄적해놓은 글들이 있었다.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만 이따금 보여주었다.
용기가 안 나서였다.

글을 공개해보려 할 때
나는 내 글에 대한 깊은 의심에 휩싸였다.



'내 글을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할까?'

괜히 공개했다가 소질 없음을 확인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좀처럼 첫발을 내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간 내 글을 보고,
정말로 다정하고 따뜻하게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의 '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애 재우고 밤에 부엌 식탁에 앉아
시간을 6-7개월이나 거슬러 올라가며
카톡 대화창을 다 뒤졌다.

내가 생각해도 좀 섬뜩했다.
스토커가 된 느낌?


 지지해주는 말을 다 캡처하고(무려 70개나 되었다),
캡처한 것을 다 모아서 몇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도 볼 수 있게 내 비공개 카페에 딱! 저장해놓았다.


그랬더니
뽕 맞은 것처럼
갑자기 없던 용기가 솟으면서
주눅 들어 쭈글쭈글해진 마음이 짱짱하니 펴졌다.


딱. 그다음 날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릴 용기가 났다.


그런데,  요즘 또 내 안의 회의론자(Mr. Gray)가 자꾸만 고개를 든다.

'이런 거 써서 뭐해~'
'잠이나 푹 자~'
'넌 왜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하게 사냐?'
'네가 사는 방식이 늘 그렇게 되곤 하지~'


 
자신감의 풍선이 '피시~'하며 계속 빠지길래
방금 전,
잘 저장해놓은 '지지의 글'을 다시 찾아 읽어봤다.

약효는 여전했다.
 
다시 턱이 들리며 용기가 차오른다.
내 안의 회의론자, Mr. Gray에게 들이받을 힘이 생긴다.

' 써서 뭐하긴!
나 재밌어 쓴다 왜?!
나 좋아서 쓴다고!
네가 뭐 보태줬냐?'


'잠은 다 알아서 자~ 네가 내 걱정할 건 없어'

'피곤하게 사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거든?
난 하고 싶은 게 많아~
이렇게 태어났다고~
난 이런 내가 좋아!'


실컷 퍼붓고 나니
Mr. Gray의 공격에 주눅 들어 숨어있던 리래가
다시 빠꼼히 방에서 나온다.
(리래 - 내 안의 어린 아티스트, Little Rainbow)





2020년 지지의 말 모음









3.

글을 쓸 때 말고도,
'지지의 말'은 평소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으면 아주 든든~하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 내 미술학원에서
one day class가 열렸다.  

코로나로 아이가 집에 하루 종일 있을 때라  심심풀이로 보내봤는데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




미술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피드백





갑자기 내가 늘 가지고 있는 불안.
'엄마인 내가 애를 잘 키우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증폭되며 마음이 요동쳤다.


평소,
유난히 엄마 러버인 아들을 보며,
'내 양육태도에 뭔가 문제가 있나?' 불안했다.
 
'저때는 다 저렇지. 다 지나가는 거지' 하고 애써 외면하곤 했는데
이 선생님의 말이 내 불안에 불을 지른다.

그날 밤 아주 싱숭생숭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 단어를 기억해냈다.

" good enough mother"





완벽한 엄마가 될 필요가 없다.

될 수도 없다.
충분히 좋은 엄마면 충분하다.

나는 70-80점은 되지 않는가?
그러면 충분하다.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다.

자신감을 회복하며 아이에게 직접 묻는다.

(질문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함을 이때 깨달았다)


"어제, 생일 케이크 만들면서 어땠어?"

" 응? 재밌었어~"

(정말 쿨하네. 그래. 재밌었다면 별 일 아니다..)


불안이 급속히 해독된다.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때,
꾸역꾸역 할 때가 있다.

처음, 분명히 있었던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하기 싫고 무겁게 느껴질 때,

내가 먹는 특효약은 이거다.

친구가 써준 캘리그래피



이 짧은 문구를 되뇌다 보면, 
나는 내가 믿는 신이 손을 내미는 것 같은 환상을 본다.


그 손길은 아주 강하지만 동시에 부드럽다.
질책하는 손이 아니라

격려하는 손이다.



주저앉아 있던 나는
그 강인한 손을 렛대 삼아 을 일으킨다.

 







 
늘 일상적인 말만 나누는 것 같은 남편과도
나는 지지의 말을 수집한다.


작년 한 해 좀처럼 바깥 외출할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은 Zoom으로 해결했다.
 
봄가을 츄리닝, 여름 츄리닝, 겨울 츄리닝,
츄리닝 시리즈로 한 해를 보냈다.

집 밖을 나설일도
어린이집 등하원밖에 없었기에
남색과 흰색 츄리닝 바지가 교복이었다.

'내가.... 세수는... 했나?'
오후가 되면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나도 남편에게 아직 여자일까?


이번 생일에 그가 써준 카드를
주방 찬장에 떡! 하니 붙여놓는다.

설거지 할 때마다 읽는다.


나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된다.
 








4.

남이 예의상 한 말이든 어쩌든 상관없다.
기억하지 못하는 말이어도 상관없다.

받는 내가 진심으로 받고
내쪽에서 영구 보관하면 된다.


적극적으로 내가 나서서
나를 '지지의 말'로 샤워시키는 것.

 
최근에 와서 배웠다.  

만성 불안에 특효약이다.


저장해놓은 말들로 흠뻑 'self 지지'를 받으면,
아이에게 자연스레 그 에너지가 흘러간다.


오늘도 그랬다.


(하트 뿅뿅한 눈으로)
"준아~
넌 존~~~~ 귀한 자야"

혼자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
무턱대고 말한다.



"나? 존기아닌데? 나 하준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지지의 뽕을 맞은 나는
기분이 좋아 술주정하듯 다시 말한다.

(볼을 비비며)
"아니다~ 넌 존~~ 귀한 자다~~~~"


" 아니야~!!!!
아니라고!!!!
나 하준이라고!!!!!!"

울먹이는 아이를 껴안고
이유 없는 뽀뽀세례까지 한다.


나...
술 취한 거 맞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가 제조한 '지지주'에

거나하게 취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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