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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16. 2021

제 반려동물, 자칼을 소개합니다(2021.0215)

비폭력대화를 삶으로 살아내기 - 42화



1.


이틀 전에 썼던 글이 후회된다.


글의 소제목은
'비폭력 대화를 삶으로 살아내기'로 달고,
나도 모르게 폭력 대화를 실다.




2.





주기적으로 빠지는 생각이 있다.

'너는 왜 이렇게 인생을 복잡하게 사냐~?
'너는 왜 이렇게 일을 만들어서 피곤하게 사냐~?"



이 생각으로 나를 볼 때.

나는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버겁고 무거우며
내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오늘 깨달은 것은,
이 말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아빠가 예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얼어붙는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니었구나.
남이 준거였잖아?


남이 줘도 내가 안 받으면 되는데!

나는 왜 못난이처럼 그걸 받고서
그걸 가슴에 고이 품고~ 묵상하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반복 재생하고 있었지?
또 자책 모드다.


이게 왜 놀랍냐면,
그 말을 들었을 당시,
나는 엄청 분노하며 확실히 반박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반사!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것이 
내 안에 견고한 똬리를 틀고 앉아있네?


이 교활하고 응큼한 !  





3.

며칠간 런 생각들에 마음이 시달렸다.

그러다가 수집해 놓은 '지지의 말들'을 읽고
들이받았다.

그 과정을 브런치에 기록했었다.


그저께 브런치에 쓴 글 - 자책하는 생각을 들이받기




일단, 이렇게 쏘아붙이고 나니까

속이 시원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뭔가 힘이 차오르는 것 같다.
내가 이긴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래서 브런치에다가

'지지의 말을 수집하고 꺼내보니 힘이 생긴다'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난 후. 지금 알아차린 것

''을 '자기 보호와 풍성한 관계'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어와 공격'을 위해 썼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은 전형적인 '자칼의 언어', '비난의 언어'였다.

(비폭력대화에서는
비난의 언어를 '자칼의 언어'로,
공감의 언어를 '기린의 언어'라고 부른다)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피곤하게 살지'라며
나를 향해 비난하고,

'네가 보태준 거 있냐? 네가 걱정할 건 없어!'라고
밖을 향해 비난했다.


결국 방향의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에너지는 '비난의 에너지'다.


비난의 에너지는 안으로 쓰나 밖으로 쓰나
'안 써도 될 힘'을 쓰며 '독기'를 유통한다.

사지 경직도 유발한다.


표정이 굳고,
어깨가 뭉치고,
목이 뻣뻣해진다.


내가 그 말을 듣고서


낮은 자존감, 죄책감, 수치심을 기 싫다고,
상대방에게 낮은 자존감, 죄책감, 수치심을
덮어 씌운다.
이기는 사람은 1명뿐인,  '적 이미지'로 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인류가 8000년 동안 살아온 방식이란다.





4.
나는 비폭력대화를 배운 자로서 정신을 가다듬고,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4가지 반응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한국nvc센터 -nvc 1교재, p117



1) 자칼 in - 자기 비난
2) 자칼 out - 상대 비난
3) 기린 in - 내 공감
4) 기린 out - 상대 공감



비난은 연습 안 해도 테랑으로 하고 사니까
기린 역할을 해본다.




먼저 나를 공감해봤다.


"너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 너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냐?"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 진짜 기운 빠졌지.
너 억울했지.
너 많이 화가 나고 지. 

맞아. 너 정말 듣기 힘들었을 거야.

왜냐면 너는 나름대로
너의 삶을 최선으로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었잖아.

그걸 알아주기까지 바라지도 않아도
적어도 네 삶이 '어떻다'라고 타인에 의해 단정 지어지지 않았으면 했지.
네 삶이 '복잡하고 피곤하다'라고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지?

그냥 나에게 혹시 관심이 있다면

'요즘 어때?'라고 따뜻하게 물어봐줬으면 좋겠지.


 살아보고 싶.

그냥 내가 삶을 사는 스타일을
그대로 '수용'받고 싶지.  

그게 너에게는 '존중'이고 '배려'고 '인정'이었지?


그래. 너한테 이런 것들이 그 순간 중요했었구나.
 
너 진짜 그 말 들었을 때 힘들었겠다.

토닥토닥....


길게 숨을 들이쉬어본다.

물통에 물감이 풀어지듯이 마음이 풀어진다.
혼자 말을 거는 것인데

온몸이 이완된다.



'응... 나 그랬어'

. . . . . .


'이제 됐어. 내 마음 알아줘서 고마워'





5.  

그리고 이제,
대망의 마지막 과정!




듣기 힘든 말을 했던 상대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격렬한 저항감이 몰려온다.





해주기 싫다!

나라면 저렇게 절대 말 안 한다!

아놔~~ 다시 열 받네?

꼭 사과받아야겠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 알까?


어떤 이유에서건 너무 무례해!!!



자칼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못하겠다.
하기 싫다.





가만히 4개의 선택이 그려진 도표를 본다.

그리고 그 밑에
내가 써놓은 필기를 우연히 본다.
2017년 것이다.


2017년. 필기




"자칼이 계속 올라올 때
자칼을 실컷 하기.
(실컷 하면 그 과정 중에 내가 뭤담시 이러는지 명료해짐)


그렇다고 당사자한테 하라는 게 아님.
혼자 하기.


내 안의 엄청나게 큰 자칼은
내 좌절된 욕구를 가르쳐주는 귀한 존재.


나를 건강하게 하는 '과정' 중에 쓰일 것임.
(걱정하지 마시게.
계속 욕하라는 게 아니라, 과정 중에 쓴다고~

너무 욕하는 것만으로 빠질 것이 우려되면

열 문장 만들어 보기, 한 장 써보기 등  

제한을 두,

나를 이해할 '목적'을 가지고 안전하게 해 보라고 배웠다)


계속 올라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이 자칼도 나의 일부.


이 아이도 돌봐야 할  내 안의 어린아이.


억압만 하고 있지 말기.




그래......
내가 잘 모를 때 하는 주문("뭔 욕구가 있겠지")을 중얼거리면서
오늘은 자련다.


"아 몰라. 아빠는 그때 뭔 욕구가 있었겠지.
몰라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일단 자야겠다.

비폭력대화의 제1의 원칙!
- 나부터 돌본다.


그리고, 상태 좋을 때
내 안의 자칼을 좀 다시 봐야겠다.




6.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에 대 많은 오해가 있지만


대표적인 오해는
'대화'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꼭 남하고 해야만 대화인가?



남하고야 나중에 하든 말든
일단 '나랑 하는 비폭력대화'는 정말 소중하다.


self 회복이 일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내 안의 안팎으로 뻗치는 비난의 에너지를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이 시작이자 반이는 거)

나를 공감했다.


그리고 내 안에
오래 키워 온 막무가내 자칼 한 마리를 또 한 번 확인했고.
(지금 당장 어찌하지는 못했지만)


저 자칼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한다.


상대를 공감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충분하다고 느낀다.


내 안의 사나운 자칼을 능수능란하게 길들이지 못해

끝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이러함도
온전히 수용한다.



'충분해'


비폭력대화는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대화지만,
혼자 써도 충분히 아름다운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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