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반려동물, 자칼을 소개합니다(2021.0215)

비폭력대화를 삶으로 살아내기 - 42화

by 유하나



1.


이틀 전에 썼던 글이 후회된다.


글의 소제목은
'비폭력 대화를 삶으로 살아내기'로 달고,
나도 모르게 폭력 대화를 실었다.




2.





주기적으로 빠지는 생각이 있다.

'너는 왜 이렇게 인생을 복잡하게 사냐~?
'너는 왜 이렇게 일을 만들어서 피곤하게 사냐~?"



이 생각으로 나를 볼 때.

나는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버겁고 무거우며
내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오늘 깨달은 것은,
이 말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아빠가 예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얼어붙는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니었구나.
남이 준거였잖아?


남이 줘도 내가 안 받으면 되는데!

나는 왜 못난이처럼 그걸 받고서
그걸 가슴에 고이 품고~ 묵상하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반복 재생하고 있었지?
또 자책 모드다.


이게 왜 놀랍냐면,
그 말을 들었을 당시,
나는 엄청 분노하며 확실히 반박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반사!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것이
내 안에 견고한 똬리를 틀고 앉아있네?


이 교활하고 응큼한 말!





3.

며칠간 런 생각들에 마음이 시달렸다.

그러다가 수집해 놓은 '지지의 말들'을 읽고
들이받았다.

그 과정을 브런치에 기록했었다.


그저께 브런치에 쓴 글 - 자책하는 생각을 들이받기




일단, 이렇게 쏘아붙이고 나니까

속이 시원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뭔가 힘이 차오르는 것 같다.
내가 이긴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래서 브런치에다가

'지지의 말을 수집하고 꺼내보니 힘이 생긴다'라고 자랑스럽게 적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난 후. 지금 알아차린 것은

''을 '자기 보호와 풍성한 관계'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어와 공격'을 위해 썼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말은 전형적인 '자칼의 언어', '비난의 언어'였다.

(비폭력대화에서는
비난의 언어를 '자칼의 언어'로,
공감의 언어를 '기린의 언어'라고 부른다)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피곤하게 살지'라며
나를 향해 비난하고,

'네가 보태준 거 있냐? 네가 걱정할 건 없어!'라고
밖을 향해 비난했다.


결국 방향의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에너지는 '비난의 에너지'다.


비난의 에너지는 안으로 쓰나 밖으로 쓰나
'안 써도 될 힘'을 쓰며 '독기'를 유통한다.

사지 경직도 유발한다.


표정이 굳고,
어깨가 뭉치고,
목이 뻣뻣해진다.


내가 그 말을 듣고서


낮은 자존감, 죄책감, 수치심을 기 싫다고,
상대방에게 낮은 자존감, 죄책감, 수치심을
덮어 씌운다.
이기는 사람은 1명뿐인, '적 이미지'로 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인류가 8000년 동안 살아온 방식이란다.





4.
나는 비폭력대화를 배운 자로서 정신을 가다듬고,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4가지 반응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한국nvc센터 -nvc 1교재, p117



1) 자칼 in - 자기 비난
2) 자칼 out - 상대 비난
3) 기린 in - 내 공감
4) 기린 out - 상대 공감



비난은 연습 안 해도 테랑으로 하고 사니까
기린 역할을 해본다.




먼저 나를 공감해봤다.


"너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 너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냐?"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 진짜 기운 빠졌지.
너 억울했지.
너 많이 화가 나고 지.

맞아. 너 정말 듣기 힘들었을 거야.

왜냐면 너는 나름대로
너의 삶을 최선으로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었잖아.

그걸 알아주기까지 바라지도 않아도
적어도 네 삶이 '어떻다'라고 타인에 의해 단정 지어지지 않았으면 했지.
네 삶이 '복잡하고 피곤하다'라고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지?

그냥 나에게 혹시 관심이 있다면

'요즘 어때?'라고 따뜻하게 물어봐줬으면 좋겠지.


잘 살아보고 싶.

그냥 내가 삶을 사는 스타일을
그대로 '수용'받고 싶지.

그게 너에게는 '존중'이고 '배려'고 '인정'이었지?


그래. 너한테 이런 것들이 그 순간 중요했었구나.

너 진짜 그 말 들었을 때 힘들었겠다.

토닥토닥....


길게 숨을 들이쉬어본다.

물통에 물감이 풀어지듯이 마음이 풀어진다.
혼자 말을 거는 것인데

온몸이 이완된다.



'응... 나 그랬어'

. . . . . .


'이제 됐어. 내 마음 알아줘서 고마워'





5.

그리고 이제,
대망의 마지막 과정!




듣기 힘든 말을 했던 상대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격렬한 저항감이 몰려온다.




sticker sticker


해주기 싫다!

나라면 저렇게 절대 말 안 한다!

아놔~~ 다시 열 받네?

꼭 사과받아야겠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 알까?


어떤 이유에서건 너무 무례해!!!



자칼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못하겠다.
하기 싫다.





가만히 4개의 선택이 그려진 도표를 본다.

그리고 그 밑에
내가 써놓은 필기를 우연히 본다.
2017년 것이다.


2017년. 필기




"자칼이 계속 올라올 때
자칼을 실컷 하기.
(실컷 하면 그 과정 중에 내가 뭤담시 이러는지 명료해짐)


그렇다고 당사자한테 하라는 게 아님.
혼자 하기.


내 안의 엄청나게 큰 자칼은
내 좌절된 욕구를 가르쳐주는 귀한 존재.


나를 건강하게 하는 '과정' 중에 쓰일 것임.
(걱정하지 마시게.
계속 욕하라는 게 아니라, 과정 중에 쓴다고~

또 너무 욕하는 것만으로 빠질 것이 우려되면

열 문장 만들어 보기, 한 장 써보기 등

제한을 두,

나를 이해할 '목적'을 가지고 안전하게 해 보라고 배웠다)


계속 올라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이 자칼도 나의 일부.


이 아이도 돌봐야 할 내 안의 어린아이.


억압만 하고 있지 말기.




그래......
내가 잘 모를 때 하는 주문("뭔 욕구가 있겠지")을 중얼거리면서
오늘은 자련다.


"아 몰라. 아빠는 그때 뭔 욕구가 있었겠지.
몰라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일단 자야겠다.

비폭력대화의 제1의 원칙!
- 나부터 돌본다.


그리고, 상태 좋을 때
내 안의 자칼을 좀 다시 봐야겠다.




6.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에 대 많은 오해가 있지만


대표적인 오해는
'대화'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꼭 남하고 해야만 대화인가?



남하고야 나중에 하든 말든
일단 '나랑 하는 비폭력대화'는 정말 소중하다.


self 회복이 일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내 안의 안팎으로 뻗치는 비난의 에너지를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이 시작이자 반이는 거)

나를 공감했다.


그리고 내 안에
오래 키워 온 막무가내 자칼 한 마리를 또 한 번 확인했고.
(지금 당장 어찌하지는 못했지만)


저 자칼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한다.


상대를 공감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충분하다고 느낀다.


내 안의 사나운 자칼을 능수능란하게 길들이지 못해

끝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이러함도
온전히 수용한다.



'충분해'


비폭력대화는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대화지만,
혼자 써도 충분히 아름다운 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