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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25. 2021

어쩌자고 한다고 했을까(2021.0225)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45화

1. 어쩌자고     



어쩌자고 연락을 했던 것일까?


그렇다. 작년 겨울. 가만히 있는 잡지 ㅇㅇㅇㅇ’ 편집부에 내가 자원해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써봐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후회막급이다.      


목, 금, 토, 일, 월. 이제 5일만 있으면 진짜 개학이다.

5년 동안의 휴직을 마치고.

무진장 긴장되고 불안하고 떨리고 우울하고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온라인 수업은 처음인데?

수능 특강도 어려워...’

(며칠 전 한글 문서를 오랜만에 작성하는데,

문서에 형광펜을 치려면 뭘 눌러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온라인 수업도 무섭고~

고등학생들도 무섭고~

새 학교도 무섭다.’

 (교과서를 받으러 오는 고등학생들을 봤는데 몇 년간 아기만 보다가 보니 너무 거대하다.)


‘우리 애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올해 유치원에 간다. 이제는 내가 등·하원을 내가 시켜줄 수 없다.)



‘아이랑 떨어져 있을 나는 괜찮을까?’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거의 4년을 살았다.

자고 있는 아이를 두고 나가고, 자기 전에 잠깐 함께하는 것?

너무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일주일 해봤더니 확~ 멀어지는 느낌.

엄마로서 이렇게 아이의 삶에 대해 몰라도 되나?

낯설고 이상하다.

분리불안을 겪는 건 내 쪽인 것 같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와중에, 원고 집필이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너무 없다.


게다가 뭔가를 집중해서 해보려면,

직장일과 육아와 가사를 다 마치고 난 새벽에 해야 하는데.

잠이나 잘걸... 지금 새벽 세시다.

이걸 내가 한다고 했다니!    



      

2. 후회될 때 하는 비폭력 대화     


나 지금 후회된다.







내 안에 무슨 ‘생각’이 있나... 가만히 들여다본다.      



‘기본에나 충실해. 뭘 또 한다고 그래.

학교 다니고 니 애 잘 보고~

쉬는 날 푹 쉬고 그럼 됐지.

또 일 벌인다.’      



‘니가 과연 비폭력대화에 대한 글을 쓸 자격이 돼?

삶을 그렇게 살아낼 수 있어?

다수의 모르는 이 앞에 내 불완전한 삶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거.

할 수 있겠어?’      



이전의 나 같으면, 이런 생각을 성경 말씀 묵상하듯이(성경은 충분히 안 묵상하면서),

묵상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


비폭력대화 배우는 사람이라고!


후회될 때. 지금까지 와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다.






3. 어떻게? 





Step 1.
관찰을 기반으로 후회되는 상황을 적는다.

Step 2.
‘나는~’으로 시작하는 내 안의 비난과 판단을 적는다.

 Step 3.
Step2의 문장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나의 욕구를 발견한다. 느낌도 적는다.

Step 4.  
Step 1(후회되는 상황)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나의 욕구를 발견한다. 느낌도 적는다.

Step 5.
Step 3과 4에서 발견한 욕구, 둘 다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어본다.
 


해보자~!


Step 1. 상황을 적는다.

두 달 전쯤 잡지에 글을 써보겠다고 자원했다.

그런데 막상 첫 원고를 내려고 하니 복직(feat. 육아와 가사)으로

심신이 피곤하고 모든 것이 막연히 두렵다. 후회된다.




Step 2. 내 생각을 적는다.


1) 나는 나를 들볶는 경향이 있다.   

2) 나는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있지만 배운 대로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

 이런 내가 이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Step 3.  내 생각을 욕구로.


1) 나는 나를 들볶는 경향이 있다.

   -> 나는 호기심이 많고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은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글을 써보겠다고 자처한 것도,

‘기록과 공유가 내 특기다’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보았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떠나서,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나에게 해주는 내가 좋다.



2) 나는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있지만 배운 대로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 ‘배운 대로 정말 잘 살아내고 싶구나?

 ‘계속 기록해나가고 싶구나?’라고 내 마음을 알아차린다.


매끄럽게든 덜컹 덜컹이든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서로의 ‘난감함’을 깊이 공감하고 을 얻고 싶다.      



적고 난 느낌: 

계속 생각만 할 때랑 참 다르다.


숨이 길게 내쉬어지고,

어깨와 머리 뒤가 풀린다.

내 생각 뒤에 숨어있던 고운 마음을 알아 주니,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욕구로 보니.

나는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에서

삶의 생동감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


안심이 된다.

편안하다.   





Step 4. 후회 상황 욕구로


-> ‘쉬고 싶었구나. 여유가 절실히 필요했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나를 돌보는데 시간을 더 쓰고 싶었구나’


 알아차린다.  



적고 난 느낌: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그냥 너무 쉬고 싶었을 뿐이었네.

그런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한 거야?

왜 나를 비난하고 그러냐고~’


 마음이 가볍다.

더 자고 먹고 놀면 될 것 같다.      






Step 5.

 Step 3에서 발견한 욕구(호기심, 도전, 즐거움, 일치, 공감, 지지)

Step 4에서 발견한 욕구(휴식, 여유, 자기 돌봄), 

두 쪽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부탁하기)


-> 두 달에 한 번 네 쪽을 쓰는 것은 에너지가 아주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다.

지금처럼 마감 닥쳐서 하며 온갖 생각에 시달리지 말고

미리 여유 있을 때 써 놓으면 되겠지?   


심플하다.


정리된다.


힘이 난다.



4. 그의 마음


 비폭력대화는 관찰을 기반으로

느낌과 욕구에 귀 기울이고,

부탁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비폭력 대화를 배울 때마다 나는 신기하게도

내가 믿는 신의 마음을 느낀다.


내가 나를 비난할 때마다

나의 느낌과 함께 머물며 토닥이고,

나의 아름다운 욕구를 발견해 주고,

‘손잡고 다시 가보자’ 부탁하시는 그를 만난다.


오늘도 그랬다.




5. 나의 마음


한동안 던져진 삶 속에 생존(survival)하느라 너무 못썼다.

못썼더니 더 마음이 헝클어졌다.

헝클어지니 또 안 쓰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오랜만에 쓰고 나니

내 느낌과 욕구가 무엇이었는지 명료해진다. 개운하다.  

가볍고 기쁘다.



그래.


쓰는 게 쉬는 거다.

쓰는 게 밥 먹는 거다.

쓰는 게 자는 거다.


나에게는 그렇다.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참 신기하고 기쁘다.  


튤립 두 송이. 그의 마음과 나의 마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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