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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Mar 02. 2021

공감도 사이렌 오더가 되나요?(2021.0301)

비폭력대화를 삶으로 살아내기- 46화

1.


" 자기야.
나 요새 잠을 푹 못 자~
 
무서워~
두려워~

음.. 뭐가 두렵냐면,
어제 여기 선생님들한테 들었는데~
고3 애들이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거의 학교를 안 나왔던 애들 이래.

그래서 이제 고3 돼서 매일 등교하면
예전보다 더더욱 수업을 안 들을 거래.
학교에 안 나오는 게 아예 습관이 돼서
'집에 가고 싶다'
'이런 거 집에서도 들을 수 있잖아요?' 하는 표정으로 앉아있을 거래.

그리고, 한 반에 25명 정도인데,
예체능 하는 애들은 영어 필요 없다고 아예 작곡 노트나 미술 할 거 펴고 있고,
공부 좀 하려고 하는 애들은 수능특강 이미 다 동영상 듣거나 학원 가서 풀어놔서 필기돼 있고,
대학 갈 생각 없고 졸업이 목표인 애들에게는
영어 수업이 의미가 없어서 안 듣는대.

이러저러해서 듣는 애는 몇 명 없을 거래.

나 근데 왜 거기서 그거 하고 있는 거야?

나 어뜩해? 나 너무 긴장돼~!'  


어제 아침. 일어나자마자
부엌에서 우유를 마시는 남편을 잡고 하소연했다.



빈 교실




2.

"자기.
그거 진짜 오만한 거야"

남편의 첫마디였다.


순간.

온몸에 긴장이 빡! 되면서
내 안의 반려동물 자칼이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다.





'뭐? 오만?'

그 단어가 몹시 거슬린다.

겁나 억울해!

내가 뭘 했다고 오만해?

왜 나 평가해?!!!!!!
 



남편은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옛날부터 수업 안 듣는 애들은 있었고~
그리고 어떻게 모든 애들이 자기 수업을 다 들어?
그걸 기대하는 거 자체가 오만한 거지~
나때도 수업 때 자고~ 그래서 뒤지게 맞고 그런 애들 있었어 "

(흥, 칫)
"지금은 교사가 때리지도 않고
때린다고 애들이 맞고 있지도 않아.
나는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차라리 안 때리는 게 낫다.
맞는다고 뭐 듣나?
듣는 척하는 거였지"


하아.....


밤 고구마 두 개를 한 번에 삼킨 것 같다.
속이 답~답~~~ 하다.

이거 뭐냐.

혹 떼려다 혹 붙였네.

나 요즘 안 그래도 불안한데
당신까지 왜 이래 진짜?

비난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잠에서 깬 자칼이 상대를 공격하려고 한다)

말한 내가 잘못이지.
(이번에는 방향을 틀어 자칼이 나를 공격하려고 한다)

자칼아~ 자칼아~~~~
진정. 진정.
네가 지금 나올 때가 아니라고.

그는 나의 적이 아니다.
아니지.
아니야.
도리도리.


(일단 나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입술을 닫고
자리를 피하기로 선택한다.)



3. 는 고통을 말했는데




잠시 뒤, 아침 식탁에 남편과 기역자로 앉았다.


우적우적 총각무를 먹고 있는 그에게  
가만가만 내 마음을 전했다.


"나는 애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가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거기 교실에 서서
뭘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그런데 예전에도 그걸 잘 모르겠어서 고통스러웠어.

나는 지금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거야.

예전에 이 일을 할 때도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점이 힘들었어.

일이야 하면 되는데,
내 존재가 의미 없이 느껴질 때.
그게 힘들었어.

근데 이 상황이 더 심해졌다고 하니까 무섭더라고.

그런데 내가 그 느낌을 표현했을 때
'오만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진짜 당황스러웠어.

나는 내 고통을 말한 거였어."





요즘 같은 시대의 교사의 자리



남편은 잠잠히 듣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총각무 씹는 소리만 난다.


그런데 갑자기 내쪽에서 예상치 않았던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마음에 소용돌이치고 있던 내 느낌과 욕구를
입으로 뱉고 나니.
그 단어들이 내 귀로 새롭게 들린다.

남의 가슴도 아니고 내 안에 있던 건데
입으로 뱉고 귀로 들으니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까?


도움.
가치.
존재 이유.




그래.
귀한 것들이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4. 남편의 재기 시도



자기가 뱉은 말에 혼자 self감탄을 하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남편이 재기를 노린다.



"아이~~~~~!! 그거 뭐!! 다 잘될 거야~~~
처음에만 그렇지~!

자기야!
나중에 걱정했던 거 다 까먹을걸?
2주면 금방 따라잡지!
 
걱! 정을 해서 뭐해.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애들을 너무 다 데려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니까?
다 잘 살아 걔네도~!
어떻게 다 수업을 잘 듣겠어~!?"



나는 갑자기 코트에서 뛰고 있는 운동선수가 된 다.

걱정이고 하소연이고 접어 두고,  

지금 뛰어야 한다고 들은 것 같다.


자신 없어하는 나를 보고,

'절대 그런 생각에 빠지면 안 된다는 듯이'

코치님이 격렬히 파이팅을 해주고 있다.


으잉?
이건 또 뭐지?



두 번째 밤고구마를 먹고 있는 느낌이다.

'아. 이 말은 또 다른 식으로 불편한데...'

내 느낌이 부당하다고 하는 것 같고, 쓸데없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알아요~
나도 걔네가 잘 살 거라는 거 알고,
나도 적응할 거라는 거 알아요
나도 모두가 내 수업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
내가 몰라서 자기한테 말한 게 아니야"

나는 담담대답한다.


그러다가, 알아챈다.  

아..
내가 원한 건 공감이었구나!!




5. 내가 원한 것은 공감



"아~ 그랬어?
긴장됐어?
잠을 푹 못 잘 만큼 걱정된 거야?"



이 말이면 떡을 칠 것을.


이 말이면,

내 안의 꽉 찬 긴장과 불안을 스르륵 녹이고
'남편 최고! 남편 고마워!' 했을 것을.


원하는 반응은 정해져 있었다.

이런 '답정녀'가 있나.


아. 그러면 처음부터 이렇게 주문할걸!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할 건데,
난 지금 공감받고 싶거든.

근데 자기가 거절할 수도 있긴 해.
어쨌든 나는 지금 공감을 원해.
자 이제 들어볼 거야~?"


내가 조언 말고, 격려 말고, '공감'이 받고 싶었다 하니,
그는 무안한 듯 대답한다.

"아~그게~ 남자들이란 게 다 그렇잖아
조언해주려고 하고~하하하하하" 





하나도 안 웃기다.





6. 불통은 소통으로 향하는 다리


말하고 나니, 그냥 기분이 풀린다.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왜 두렵고 무서웠는지 알게 돼서.


나에게 뭐가 중요했는지 명확해져서.


내 입으로 뱉어보고, 내 귀로 들어봐서.


대화하고픈 사람에게 나에게 중요한 걸 얘기할 수 있었어서.


내가 당황스럽고 화난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돼서.


내가 "아!"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아!"라고 받아치고
"어!"라고 말하면, "어!"라고 맞장구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화성과 금성에서 살아왔던 우리는
서로 다른 모국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이런 불통에도 얻은 것이 있으니
나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는 그와 대화하기 위해
(대충 말해서는 못 알아들으니까)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말을 고르고, 또 벼려야 했다.

그래서 덤으로 얻게 된 것은,
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  


말공부하는 여자랑 살아서 피곤할까?

아니야.

내가 잘해서
당신이 아무렇게나 하는 말도 잘 번역해줄게요.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끝까지 들어준 그가 고맙다.


7. 내가 원하는 것은


직장에서 돈 받고 일할 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일을 할 때
난 누구고, 뭐를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하고 싶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깊이 소통하고 싶다.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 못 할 일이 없다고 믿기에.(인간의 욕구는 보편성이 있으니까)
학생들과 동료들과 자기 욕구에 대해 대화하는 관계가 되고 싶다.

어떤 학생이 자신의 욕구와 느낌에 대해 말할 때

듣는 내가 참 안전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자신의 어떤 행동학교에서는 허락되지 않을지언정
우리에게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신의 욕구와 느낌에 대해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한편,


학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난감함'에 대해
서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게 될까 두렵다.

들어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단정하는
그런 관계가 제일 두렵다.

이미 학교에서는 흔한 풍경이 되어버린
그 고립감. 단절감.
다시 마주하려니 두렵다.






'연결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취약하다.

올 한 해는 두려움을 가득 안고
그래도 먼저 사랑하려는 사람이 되어보련다.

3월 2일.


오늘부터 구나.



사랑을 실험할 수 있는 날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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