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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20. 2021

너무 바빠서 걸읍시다(2021.0220)

비폭력대화를 삶으로 살아내기- 44화


1. 분갈이한 화분


며칠간 분갈이한 화분 같았다.
시들시들.


안 나가던 직장을 나가니
밤마다 떡실신을 했다.


뇌는 새로 들어온 정보로 포화상태고
몸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 잔뜩 긴장모드다.


45분간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오면
다시 시작되는 두 번째 직장.


엄마가 고픈 아이와
배가 고픈 나는
잠깐 부비부비를 하고

티브이를 하나 틀어주고
집밥 원칙을 지키려 부엌에서 종종 댄다.

집밥을 고집하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진짜 미련한 건가?
진심으로 고민이 되었다.
 

먹고 치우고 재우고 떡실신.

경험이 없으니 요령도 없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피로감이 절고
머리는 복잡한데 몸은 무겁다.

걱정되고 두렵다.
자신이 없다.
역할에 압도된다.
눌린다.
구체적이지도 않은 생각에 깊이 함몰된다.





이럴 때 어떡하지?





걸어야 한다.


에너지를 바꾸는데 걷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2.  30분 코스 - 집 앞 둘레길


"가장 좋은 아침 식사는
아침 공기와 긴 산책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토요일 오전, 혼자 산책을 나섰다.

'혼자' 여야 한다.
비행기도 탄다.(핸드폰 비행기 모드)


발을 내딛을 때
땅으로부터 전해지는 규칙적인 울림이 있다.
땅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 묵직한 규칙성에
마음이 금세 안정된다.


그리고 소리.

주로 새소리를 듣는다.
가끔 녹음한다.

너무 소중해서.


그리고 촉감.
특히 바람.


미세먼지가 섞이든 말든.



그리고 또...
초록.


반백의 머리처럼
오늘은 반의 풀들을 보았다.
희망이 뾰록.
봄이 이미 왔구나.

반록의 자연




게다가. 오늘은 선물처럼 우연히 다람쥐도 만났다!


산책중에 만난 다람쥐! 안녕?




다람쥐와 대화 후
단순하고 맑은 마음이 되어 집으로 향한다.



'배고프다. 밥 먹어야지!'


 


3. 여러 개의 빨대



비폭력대화를 가르쳐주셨던 이윤정 선생님은
빨대를 여러 개 마련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걷기에 대해 다양한 빨대를 가지고 있다.

오늘은 30분 코스를 다녀왔지만,

10분이 있다면 10분 코스를,
1분이 있다면 1분 코스를,
2시간 반 정도가 있다면 걸을 곳이
이미 머릿속에 있다.


상황에 맞게 선택한다.


 
10분 코스는 아파트 단지 한 바퀴.


여름. 비온 뒤. 아파트 단지 산책 길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짬이 나면 걸었다.



1분 코스는 지금 살고 있는 131동 바로 뒤 오솔길

 

우리 동 바로뒤 오솔길


쓰레기를 버리거나,
집 앞 슈퍼에 다녀올 때.
들어가기 전에 한 바퀴 휙~ 돈다.

1분이라고 무시하지 말 것!
 

짧은 순간이지만 에너지가 달라진다.


아저씨들은 그곳에서 끽연을 하고
나는 걷기를 한다.

"아저씨! 그러고 보니 우리는 욕구가 같아~!"

각자의 방법으로 에너지 전환 중.








2시간 반 코스는 한강이다.
유난히 자신이 없어서 지지가 필요했던 날
지지받고 싶은 분께 내가 먼저 러브콜을 날렸다.




제안받은 행군 루트






그리고 이날도 다시 한번 확인한 것.

걷기는 무조건 옳다.





4.
분갈이한 화분에게 필요한 것은
일단은 적응할 시간이다.

추가로 햇빛과 바람을 양껏 누리도록
가끔 화분을 바깥에 내놓아주는 것도 필요하겠지.


첫 번째 복직 미션이 뭔지 이제야 알겠다.


업무 숙련이 아니라,

반찬집 뚫기가 아니라,
직장-집 왕복코스 사이사이에 1분, 5분, 30분짜리 걷기 코스를 개발할 것.

하늘 초록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바람을 느끼고

땅의 심장소리를 들을 시간을 마련하는 것.


이게 가장 중하다.



곧 개발 사업에 대해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 이 하 여 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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