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바리데기 찾기

고전문학 속 여성 주체 서사의 기원

by 작가 박신

『바리데기』는 한국 무속신화의 대표적인 서사로, 7번째 딸로 태어나 쓸모없다 여겨져 버려진 공주가 온갖 고난을 겪고 약수를 구해 부모를 살린 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신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바리데기』는 주로 이승의 영혼을 씻기는 씻김굿에서 발화, 전승된다. 이 서사는 효와 구원의 이야기를 넘어, ‘버려진 자’가 ‘구원자’로 거듭나는 역전의 서사 구조를 지닌다. 바리데기의 여정은 초월적 영웅의 신화가 아니라, 버려지고 감춰진 자가 스스로 힘으로 생명과 서사를 회복시키는 서사이며, 이는 한국적 여성 주체의 가장 오래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케이팝데몬헌터스(이하 케데헌)은 겉으로는 아이돌과 악령퇴치라는 장르적 설정을 지닌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근저에는 신화적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특히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무당의 이미지, 주인공 루미의 서사는 바리데기의 여정과 깊은 상동성을 보여준다. 본 비평은 케데헌 속에서 바리데기의 그림자를 추적하며, 고전신화가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 고전문학의 서사적 힘이 여전히 현재의 문화적 생명력 속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버려진 존재에서 구원자로: 바리데기의 그림자를 비춘 자]

‘바리’는 버려진 자, 즉 ‘쓸모없다 여겨진 존재’라는 뜻이다. 왕과 왕비였던 부모에게 버려져 이름이 바리가 되는데, 그런 부모를 구하기 위해 여정에 나서며 세계를 잇는 구원자가 된다. 케데헌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그대로 반복된다. 루미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채 키워진다. 그녀를 키운 셀리는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숨기는 데 급급하다. 바리데기의 버려짐의 감정을 현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버려짐의 결핍은 결코 그녀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과 공동체를 구현하는 힘으로 전환된다.

루미는 악령의 피를 가졌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뒤늦게 들키면서 동료들의 칼을 마주한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지만 결국 다시 그들을 구하기 위해 무대 위로 돌아온다. 그 장면은 바리가 저승의 삶을 넘어 약수를 가져와 부모를 살리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 두 사람의 여정에서 그들이 깨닫는 진실은 같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이 곧 모두를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루미의 도망침과 재등장 사이의 공백을 서사적 비약이 아니라, 바리데기의 깨달음이 되살아나는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무속적 기원의 회귀: 경계의 존재로서의 여성주체]

케데헌의 프롤로그는 한국 여성 무속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단순한 세계관 장치가 한국 신화 속 여성 주체의 기원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바리데기가 부모를 살렸음에도 그들이 주는 왕위를 마다하고 최초의 경계의 신이 되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했다면, 루미 또한 태어날 때부터 인간도 악령도 아닌 ‘중간자’ 즉 경계의 존재로 설정되어 구원자로서의 숙명을 타고난다.

그러나 루미는 이승의 질서에만 매달리며 저승과 악한 혼을 배척하기만 했고 이는 아직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우를 만나 악령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그녀가 다시 무대로 돌아온 순간 루미는 두 세계를 관통하는 존재로, 이승과 저승의 영혼을 모두 이해하는 존재로 성장한다. 바리데기가 경계의 신이 되었듯이 루미 역시 새로운 시대의 ‘혼문(魂門)’을 세우는 자로 즉 문턱의 여신으로 거듭난다.

[리듬의 언어: 노래 속의 바리데기]

케데헌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다. ‘골든(golden)’은 미성숙했던 그들이 바라던 미완성의 이상이었고, ‘왓잇사운드라이크(what it sounds like)’는 진정한 자신의 역할과 방향성을 깨달아 성장과 수용을 노래한다. 골든의 가사 속에 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But I couldn’t find my own place.는 두 가지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미완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으며 i’m done hidin’, now i’m shinin’ like i’m born to be로 숨는 것을 끝내고 다시 빛나고 있어를 차마 부르지 못한 루미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투영한다. 반면 왓잇사운드라이크의 가사를 들여다보면 show me what’s underneath, i’ll find your harmony Fearless and underfined, this is what it sounds like로 숨겨진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면 조화를 찾아주는, 두려움을 물리쳐 자유로움을 선사하는, 루미의 새로운 역할을 노래하는 것이다.

[혼문(魂門) : 경계를 잇는 길의 상징]

케데헌의 세계를 관통하는 마지막 바리데기의 상징은 혼문이다. 말 그대로 혼이 드나드는 문이다. 이 문의 의미를 읽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바리데기를 떠올리게 된다. 바리데기의 길이 곧 혼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통로. 그 경계의 문.

케데헌의 혼문 또한 마찬가지여야 했다. 진정한 혼문은 저승을 틀어막는 방패가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게 하는 통로여야 했다. 그 문을 드나드는 영혼이 건강하게 빛나도록 하는 존재로 헌터릭스가 존재할 때, 그래서 이승과 저승의 영혼들이 서로 이해하고 이어지게 되는 순간 헌터들의 싸움은 단순한 퇴마가 아니라 모든 영혼을 구원하는 ‘굿’이 된다.


케데헌의 서사는 결국 바리데기의 서사를 현대적으로 변주하고 있다 루미는 태어날 때부터 경계의 존재로 설정되었고, 죽음과 삶, 인간과 악령의 틈을 잇는 자로 성장했다. 그녀는 초월적 영웅이 아니라 영혼의 회복과 순환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 존재로 완성된다. 이는 바리데기의 서사구조와 완벽하게 겹친다.

케데헌의 세계관 속‘혼문’은 이승과 저승을 차단하는 장벽이 아니라, 서로 통하게 하는 문이 되었다. 루미가 새로 만든 혼문은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죽은 자와 산자를 다시 연결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리데기가 그 길목에서 세상을 지켰듯이, 루미 역시 그 문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오가는 넋들을 비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굿이며, 현대적 신화의 시작이다.

바리데기 서사로 케데헌을 다시 보면, 영화의 숨겨진 장면들이 새롭게 열린다. 감춰졌던 맥락이 드러나고, 이어질 세계의 가능성까지 상상하게 된다. 고전 서사는 이처럼 과거를 해석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상상력의 문이 된다. 우리가 오늘날의 서사 속에서 고전문학의 원형을 발견하려는 연구는 바로 이 목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케데헌은 비록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이 이야기를 가장 넓게, 다양하게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은 한국의 문화와 고전문학을 깊이 사유해 온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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