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고수의 지혜는 거문고갑 속에 있다?!
스토리텔링이 유난히 재미있었던 한국 영화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늘 **〈전우치전〉**을 떠올린다.
화려한 액션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 곳곳에 스며 있는 한국적 원형 서사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아주 짧게 지나가는 ‘거문고갑’ 장면은
사실상 관객이 놓쳐도 무방한 순간임에도
묘하게 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영화 속 스승의 한마디
전우치에게 차를 따라주며 스승은 말한다.
“거문고갑을 쏴라.”
그때는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말.
그러나 마지막 대결에서 요괴(화담)는
환상으로 전우치를 홀린 뒤 거문고갑에 숨어 있었고,
전우치는 스승의 말을 떠올려 화살을 날린다.
일격이 성공하자 그는 중얼거린다.
“스승님은 여기까지 내다보신 것인가.”
짧지만 스승의 지혜의 깊이를 상징하는 이 장면의 뿌리는
바로 *삼국유사 기이편 「거문고갑을 쏘다」*다.
:삼국유사 속 쥐, 까마귀, 돼지
설화는 쥐가 말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돼지가 싸우는 길목 끝에서 노인을 만나 편지를 받는다.
이 동물들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십이지(十二支)**를 떠올리게 한다.
길을 안내하는 까마귀도 흥미롭다.
민간에서는 ‘말오(午)’ 대신
동음인 ‘까마귀 오(烏)’를 대신 쓰기도 했고,
오(午)는 시간·운세·방위의 징표였다.
즉, 설화 속 까마귀는 길을 열어주는 **시그널(signal)**이다.
:거문고갑甲
커다란 상자, 그리고 ‘갑(甲)’이라는 시작의 문.
거문고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상자다.
삼국유사에서는 간통하던 승려와 궁인이, 전우치전에서는 요괴가 그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점.
‘갑(匣)’은 십간의 첫머리 ‘갑(甲)’과 음이 같다.
즉, 거문고갑은
단순히 크고 단단해서가 아니라,
육십갑자의 시작,
지혜가 열리는 첫 관문,
순환의 앞자리라는 상징을 가진다.
지혜는 언제나 겉에 드러나지 않고,
대부분 평범한 껍질 안에 숨어 있다.
우리는 그 평범함에 익숙해져 많은 거문고갑들을 지나쳐 버린다.
그렇다면, 내 지난 삶 속에는 어떤 거문고갑들이 있었을까?
밀려드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반면 내가 마주하고 쏘아 올린 거문고갑은 없었을까 되새겨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매일 보던 취업 공지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눈에 밟힌 대학원 모집공고.
이력서 대신 지원서를 쓰게 했던 이상하리만큼 또렷한 그 확신.
나는 그 지원서를 한 장의 화살처럼 날려 보냈다.
돌아보면, 그때가 바로 내가 스스로 겨누어 쏜 거문고갑이었다.
늘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어느 날 유독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면,
‘해야겠다’는 결심 뒤에 구체적인 용기가 따라온다면,
그것은 당신의 화살을 쏘라는 신호일지 모른다.
거문고갑은 언제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일상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화살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선수 쳐야 할 때’다
혹여 요즘의 일상이 안 풀리고 답답하고 무겁게만 느껴진다면,
막연한 두려움이 일상의 행복까지 흔들어놓는 것 같다면,
주변을 잘 살펴보라.
어쩌면 지금이 바로, 먼저 선수 쳐서 거문고갑을 찾아내 쏴야 할 때인지 모른다.
원흉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의 그림자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거문고갑과 마주하려 해야 한다.
나를 살릴 본질은 언제나 그 거문고갑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발견하고,
내 손으로 겨누어 쏘아 올릴 때만 비로소 열린다.
#고전을 품은 오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