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나는, 천생 오뚝이다.
"항공기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청각장애인입니다. 혹시 가능할까요?"
"아... 안타깝지만, 어렵습니다."
대학교 때,
모 항공사 실습교육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그날 나는 과 대표로 친구들 앞에서 우수학생상을 수상했고, 그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안 되는 걸 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직접 묻고, 직접 듣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에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꿈꾸던 항공사의 직원에게 직접 들으니,
한편으론 속이 시원했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항공기 승무원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탑승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기내 안전요원이자,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와 항공법에서는 시력, 청력, 운동능력 등 항공기 안전 수행에 필요한 신체 조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시끄러운 비행기 엔진 소음 속에서
청각장애인이 과연
실시간 음성 소통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나 역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순간
인생의 첫 좌절감을 느꼈다.
처음으로 가져본 꿈이었기에.
나는, 천생 오뚝이다.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 두 세발은 먼저 앞서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다시 일어섰다.
2년의 대학교 생활을 마친 22살,
항공사 지상직으로 첫 취업에 성공을 했다.
그 시작을 계기로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9년간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며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나만의 전문성을 쌓아왔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뿌듯했고,
행복했던 날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오뚝이 같았던 지난 시간들이
가끔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앞으로의 나는,
더 많이 웃는 오뚝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