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세상은 요지경이다.
나의 첫 직장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단단해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쓰라린 첫 사회생활을 나 역시 경험했다.
대학 졸업 후, 제주생활에 대한 설렘을 안고
제주공항 모 항공사 지상직으로 입사했다.
면접 과정에서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장애인 고용이 훨씬 드물었고,
특히 서비스업 현장에서의 채용은 더욱 흔치 않았다.
무엇보다 채용 서류에 ‘장애 기재란‘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편견 없이, 오롯이 ‘나’라는 사람 자체로 내 실력과 태도만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나의 정체는 드러났다.
단정한 외모를 유지해야 하는 직무 특성상
머리를 올려 묶을 때마다 보청기가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을 채용한 것이 처음인 회사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대표님은 직접 제주공항으로 내려오셨고, 나는 또 한 번 면접을 치르듯 마주 앉았다.
그때, 함께 있던 매니저님이 조용히 말했다.
“평소처럼 해, 떨 것 없어.”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 태도와 이야기, 그리고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대표님은 평범한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고
나는 성심껏 답했다.
그때, 매니저님을 향해
”일반인이랑 다른 게 없는데? “라는 말과 함께
“잘해봅시다.” 라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일반인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청기 너머의 세상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어쩌면 그 소박한 대화 속에서
나의 진심과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밀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첫 직장생활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은 요지경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을 다 겪었다.
나에게 귤을 던지고 낚싯대를 휘두르며
욕을 퍼붓던 승객들 보다도 더 힘들었던 건,
몇몇의 미숙한 동료 직원들이었다.
잊지 못할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공항 현장은 빠르고 정확한 업무처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다소 엄격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흐른다.
그런 환경 속 어디에나 있는,
권위적인 태도의 선배 한 명이 나의 멘토로 정해졌다.
입사 초기, 멘토는 늘 곁에 붙어 다니며 업무를 지도했다. 현장 실습이나 교육 중에도 항상 내 옆에서 나의 업무를 지켜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승객이 항공권을 결제하려고 창구를 찾았다.
그 승객은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22살 사회초년생이었다.
아르바이트 경험은 있었지만,
할부 같은 고액 결제를 다뤄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할부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그때, 무이자 할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나는 단순히 무지해서 잠시 당황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내게 묻지도 않고,
내가 청각장애인이라 ‘무이자 할부’라는 단어를 못 들었다고 판단하고는 직접 처리하겠다며 나를 밀어내듯 업무를 대신했다.
“못 들었으면 물어봤어야지.”
그는 내 실수를
‘장애 때문’으로 너무도 쉽게 치환해 버렸다.
너무도 당연한 듯한 태도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한산한 카운터에서
멍하니 잠시 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부서 선배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귀에 그거 뭐야? 그거 없으면 아예 안 들려?”
나는 순간 멈췄다.
초·중·고 시절 내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너무도 유치한 질문이었다.
그날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구나.’
그런 순간들이 나를 다시 다잡게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믿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생각보다 사회에는 어른이 없었다.
그리고 사회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청각장애인으로서 버텨내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나는 입사 6개월 만에 첫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시절 제주도의 바람은 나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