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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성장기

EP6. 견뎠기에 만날 수 있었던 날들

by 세아


길고도 짧았던 터널을 지나며

나는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웠다.


두 번째 직장이자 현재의 직장 역시,

모 항공사의 지상직 업무이다.

이번엔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나답게, 당당하게 공항을 다시 마주했다.


내 안에는 ‘잘할 수 있다’라는 단단한 확신이 있었고

‘느리게 가더라도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자’라는

강한 신념으로 일에 임했다.


신입 시절, 일을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좌충우돌을 마주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혔고, 그 속에서의 배움과 깨달음을 하나씩 나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회사 동료들은 내 태도와 노력을 말없이 지켜보며,

분명하게 알아주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이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정신없는 공항에서

나는 동료들과의 따뜻한 관계 덕분에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수속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날의 일이다.


승객의 수하물을 위탁한 뒤,

부치면 안 되는 물품이 검색 중 발견되면

카운터에는 ‘띵동’ 하는 알림음과 함께 호출이 들어온다.


그 소리를 들은 직원은 곧바로 검사실로 이동해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띵동’ 소리였다.

보청기를 통해 그 소리가 전달이 되지 않았다.

마치 유리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희미하게 울리거나 아예 들리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업무를 담당하는 날엔

전전긍긍하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또 못 들으면 어쩌지.’

‘다른 직원들보다 늦게 반응하면 안 되는데…’


작은 알림음 하나가, 나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선배가 내 상황을 눈치챘는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나를 향해 입모양으로

“소리 울렸어!” 라며 알려주었다.


그 선배의 배려 덕분에, 나는 점점 그 소리에 익숙해져 갔다.


얼마 후, 다행히도 수하물 호출이 태블릿 알림으로 바뀌면서 업무가 편리해졌다.


그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지만,


아무 말 없이 내 입장을 헤아려준 그 순간은

지금도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새로운 업무를 배우기 위해 교육을 받던 시기에,

나를 교육해 주던 선배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공항 현장에서는 대부분 무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데, 내가 배우려던 업무는 그중에서도 무전기 사용이 가장 많은 업무였다.


당시 그 선배는,

쉴 틈 없는 현장 속에서 무전기 소통이 원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팀장님께 조심스럽게 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팀장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건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야.

본인이 해내야 할 몫인 거지 “


나는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그 시선이 비로소 실현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장애를 문제나 한계로 보지 않고 같은 구성원으로 존중해 주는 감사한 말이었다.





견뎠기에 만날 수 있었던 날들이다.


지금의 회사에서 나는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아

사내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고,

국내외 여러 공항으로의 출장 기회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의미 있는 회사생활을 이어왔다.


환경, 사람, 그리고 나의 의지라는

세 가지 요소가 마치 행운처럼 함께 찾아와 준 덕분에

나는 9년 동안 나의 장애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충실히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정확하고 빠른 소통이 요구되는 공항 업무 환경 속에서

때로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길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다.





그 여정 속에서,

그들이 건넨 작은 믿음들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 깊이 남아,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지나온 시간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조용히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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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