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묵상일기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키신 것은

시편149:1~9

by 디모츄

"성도들의 입에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찬양이 넘쳐나고, 그들의 손에는 예리한 양날의 칼이 들려 있어, 뭇 나라들에게 복수하고, 뭇 민족들을 징벌하며, 그들의 왕들을 족쇄로 채우고, 그들의 고관들을 쇠사슬로 묶어, 기록된 하나님의 판결문에 따라 그들을 철저하게 심판하리니, 이 모든 영광이 성도들의 몫이 되리라. 할렐루야!"

(149:6~9/쉬운말)


시편은 150편으로 묶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시집이다. 다른 구약성경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바벨론 포로기 즈음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에 들어온 150편 외에도 비슷한 유형의 시들이 더 있었음은 다른 사료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시편의 내용은 민족적 구원 혹은 감사, 개인적 탄원 혹은 감사, 신에 대한 찬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 본문인 149편은 '작은 할렐'이라 불리는 시편의 하나다. 할렐루야로 시작해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편 중에, 규모가 작은 시편들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앞절을 언뜻 읽으면 신에 대한 찬양시인 것 같지만, 뒷구절로 갈수록 전능한 신의 힘으로 복수와 복권을 다짐하고 있다.


잠시 이스라엘 역사를 떠올려본다. 그들이 차례로 멸망당해(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앗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었던 것이 그 제국들 탓인가? 적어도 성경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고 그것은 어떤 강대국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침탈당했을 때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결과로서 주어지는 심판인 경우다. 신이 주변민족과 나라를 활용해 자기 백성을 괴롭게 하여 다시 뉘우치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방편삼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 면면히 흐르는 주장이다. 그들을 둘러싼 블레셋(팔레스타인)과 모압과 암몬 민족,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이 각기 다른 시기에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써 활용되어 왔다.


심지어 이스라엘 조차도 그런 도구로써 활용되어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신 예언의 말씀을 보면 "네 후손들이 이 땅으로 돌아오려면 4세대는 지나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그들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었다(창15:16).


더 직접적인 언급이 있다. 모세가 가나안땅을 눈 앞에 두고 백성들에게 한 말이다.

"주께서 여러분보다 앞서 그들(가나안 거주민들)을 몰아내신 후, 여러분은 행여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그것이 아닙니다. 그 땅의 족속들이 악하기 때문에, 주께서 그들을 여러분 앞에서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의 행실이 의롭고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땅의 족속들이 악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께서 여러분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것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의로움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완고하기 짝이 없는 백성입니다. 여러분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노엽게 하였던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주를 거역하기 일쑤였습니다."(신9:4~7/쉬운말)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전혀 의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도구로 잠시 활용됨에 대한 감사와 유일하신 전능자에 대한 당연한 찬양'으로는 읽을 수 있다. 힘없고 착하고 성실한데 까닭없이 원수가 미워하고 급기야 몰려와 약탈하고 억압당한 민족이 아니다. 구약 전체에서 그런 류의 고난을 당한 인물은 청년 다윗과 욥 뿐이다. 다들 그럴만한 인연과보가 있다. 심판받을만했다.


올해 초,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고 마음은 심란할 때 오래 알고지낸 권사님의 책 한권을 윤문하고 출간까지 하였다. 지금도 별반 다를바 없지만 내 개인적인 사정을 생각하면 그런 일은 나같은 인간에게 맡겨지면 안되는 거였다. 매일같이 새벽기도 드리고 구제와 봉사를 일삼는 경건한 누군가에 의해 이뤄져야 마땅한 일이었건만 하나님은 굳이 깨끗하지도 않은 내 손을 붙들어 그 일을 해내셨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하나님께 등 떠밀려 쓰여졌다.


어제는 브라질 오지 선교로 오래 헌신한 부부 선교사님을 만나 약간의 도움을 드렸다.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셔서 차도 필요하고 은행일도 보셔야 하고... 잠시 뵈면서 작년과는 다른 건강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나님은 내가 깨끗하고 반듯하여 어제 반나절 그분들을 돕도록 하셨던가? 아니다. 그건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종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일을 시키신 것은 여러분의 의로움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 구절은 바로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번 해가 이틀남았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의 제목이 있다면, 그건 '나의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쓰신 하나님의 기이한 지혜를 찬양'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런 나를 부족함없이 먹이고 입히고 존재하게 하신 그분의 오래참으시는 온유와 긍휼도. 오직 하나님의 기록된 판결문에 따라 가장 먼저 심판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되새길 뿐이다.


오늘도 그런 나를 사랑하고 기다리시는 분, 스스로 영광 중에 계시면서 당당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분이 나의 하나님으로 오셔서 내게 관심을 보이시고 여전히 그 사랑을 유지하고 계시다는 것이 올 한 해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감사이자, 나의 자랑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판결대로 시행하자면 이미 골백번 죽은 목숨이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희생을 대신 감당케 하시고 나를 그분의 입에서 의롭다 말씀해 주시는 분. 그 구원의 은혜만이 내 감사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오감을 느끼며 사람 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을 허락하신 것도.


주님,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여러모로. 언제나. 주님만 참되고 옳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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