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묵상일기

나 없어도, 너 없어도 괜찮다.

여호수아 24:25~33

by 디모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오래 산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모든 일을 보아 알고 있는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 여호와를 섬겼습니다."(수24:31/우리말)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에서 80년, 이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 정복전쟁 17년. 100년 가까운 시간을 하나님의 사람들과 보냈는데 이스라엘 족속의 신앙은 전혀 자라지 않았다. 여호수아서의 다음세대 이야기가 '사사기(판관기)'인데 설명을 읽으면 아주 가관이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를 잘 섬겼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크고 위대한 일들을 직접 본 이스라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를 잘 섬겼다...(중략)...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뜨자,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주를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크신 일들도 알지 못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 앞에서 악을 저지르고 바알을 섬겼다."(삿2:7~11/쉬운말)


아무리 뛰어난 리더가 있었더라도, 그가 죽거나 떠나면 그 공동체는 와해된다. 그러면 보호와 인도와 치리를 받고 있던 대다수의 무리들은 갈 바 없는 양처럼 제멋대로 굴기 시작한다. 사사기 2장의 백성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자기 조상들을 이끌어내신 조상들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이웃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섬기고 그 우상들에게 절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주께서 크게 분노하셨다."(삿2:12/쉬운말)


리더의 부재 후 와해될 공동체인가 아닌가는 사역자들에게 달려있었다. 그런데 사역자 집단도 무슨 이유에선지 점차 쇠퇴하고 희미해져 간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죽고, 그 아래 사역자들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괜찮았으나 그 이후의 이후가 없다. 왜 그들은 모세가 여호수아를 남겨 둔 것처럼, 여호수아가 다른 사역자들을 남겨 둔 것처럼 또다른 누군가를 남겨두지 못했을까.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3대 이어지는 부자 없다'고 세상 모든 일이 영원이 존속되는 일은 없는 성 싶긴 하다. 그래도 하나님이 돌보시는 백성들인데, 하나님이 왜 새로운 누군가 좀 얼른 세워주지 않으셨을까? 아마도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백성 하나하나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원하지, 누군가의 강한 영도력에 의지해(혹은 계승되어) 자신과 소통하는 것을 궁극으로 바라셨던 건 아닌 것 같다는 뜻이다.


실제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은 마치 남편과 아내같은 친밀한 관계로서 주 하나님 자신과 백성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셨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그날이 이르면 내가 이스라엘 집 및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 이 언약은, 옛적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내던 때에 맺은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그때에는 내가 그 언약을 통해 그들의 남편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나와 맺은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렘31:31~32/쉬운말)


가나안 정복 이후, 즉 노예되었던 제국탈출과 정복전쟁까지 마무리된 시점에서 강력한 대리자가 또다시 등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고 소통하고 다스리고 교제하기를 원하셨다는 증거는 사무엘서에도 있다. 자기들의 죄와 잘못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전쟁과 패배, 약탈의 고통을 겪고 회개하고 다시 죄짓고를 반복하던 이스라엘, 그들은 최후의 무기로 여겼던 '하나님의 언약궤' 아이템마저 전쟁승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충격에 휩싸인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나님이 이 민족을 징계하려고 블레셋 민족을 도구로 사용하여 매를 들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운다고 전쟁의 승패가 달라질 리가 있나? 어리석은 민족이다. 자신들이 겪는 고초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외면하는 걸까. 아무튼 이 백성은 회개하는 대신 쓸모없어진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뽑자고 제안한다. 이때 하나님이 민족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던 사무엘 사사에게 이렇게 말하신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시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 백성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단물만 쏙쏙 빼먹고 싶지, 책임과 의무는 지고 싶지 않다는 태도다. 신은 거기 높은데서 단비와 햇살과 순풍을 알맞게 내려주고, 외부로부터 보호도 좀 해 주고... 나는 그 댓가로 제물이나 좀 넉넉하게 갖다 바치면서 가끔 얼굴 좀 보고 살면 좀 좋았겠냔 말이겠지. 어라, 이거 요즘 교회의 시스템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교회 다니니까 갑자기 집에 우환이 끓는다고 종교 바꾸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지 참. 오래 교회 다녔는데 집안에 무슨 사고나면 하나님이 안 살아계신 것 같다고 교회와 절연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간의 속성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신앙이 계승되고 전승되고 체험되는 이유는 뭘까. 종교학자들은 인간에게서 현대종교의 시스템은 변모할지라도 종교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원을 희구하고 현실 너머의 세계를 조망하려는 것이 거의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는 것 같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결코 인간의 뜻대로 해 주지 않는 이 종교의 신,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체로 하는 이 종교는 왜 없어지지 않을까. 이런 참담한 세대 가운데서도 말이다.


"보라, 그날이 이르면 내가 이스라엘 집 및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다. 기독교라고 하는 이 종교의 주체는 하나님 자신이다. 자기를 밥먹듯 배신하는 백성들을 야단치고 말리고 설득하다 도저히 안되자, 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효과적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계약을 업데이트해 버린다. 그리고 그 계약조차 필요없는 보다 상위의 환경을 만들 것을 최종목적으로 하는 경륜을 세우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계시록 후반부를 살펴보면 된다). 그래서 이 종교, 이 신앙은 유지가 되고 있다. 모세가 없어도, 여호수아가 죽어도, 그들과의 역사를 아는 자가 사라져도 이 신앙이 21세기 오늘까지 전승, 보존, 체험되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의지를 가지고 오늘도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동안 괜한 걱정을 했네 젠장.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나 없어도, 너 없어도 괜찮다. 하나님이 직접 일하신다. 도구로 잠시 쓰인 우리가 왜 주인처럼 거국적인 걱정했을까. 거국적이고 경륜적인 일은 하나님의 섭리와 의지에 맡기고, 차라리 내 자신에 대한 걱정이나 할 일이다. 어떤 교회, 어떤 단체도 영원할 수 없다. 한때 찬란히 빛을 발했던 교회와 단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늘 있어왔던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러진 후에는 또다른 풀들이 올라오고 또다시 열매를 맺고 또 그들역시 스러진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한 그루의 나무만 심지 않으셨다. 걱정이 지나치면 오만이 된다. 선한 걱정하려다가 죄를 지을 필요가 뭐 있어. 그건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는 아닐 것 같다.


오늘 하루를 경건히 보낼 것. 오늘은 그것만 생각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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