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묵상일기

본전 생각일랑 접어

마태복음 5:1~16

by 디모츄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 '팔복'등의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구절이다. 예수께서 복되다고 말한 8종류의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고, 슬픔이 있고, 온유하고, 의를 사랑하고,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받을 보상은 현생에는 없는 것 같다. 예수가 8복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다."(마5:12a/우리말)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줄 상이 이 땅에서 지금 당장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같은 구절 뒷 부분은 그러한 희망마저 접게 만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다. 너희들보다 먼저 살았던 예언자들도 그런 핍박을 당했다."(마5:12/우리말)


어디보자... 구약성서에 기록된 제대로 된 예언자들 중 말년에 잘 먹고 잘 사는 호사를 누렸던 인물이 누가 있더라... 첫 선지자였던 아벨부터가 살해당하고 시작하니 더 볼 필요도 없겠다 싶긴 하다. 사사시대, 판관 기드온이 좀 잘 살았는데 성경은 그의 치부를 욕심에 의한 변절 내지는 타락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생을 선지자로 온 나라를 헤집고 헌신한 사무엘은 자식농사에 실패했다.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죽음없이 하늘로 올라갔다던 엘리야가 있지만 그의 인생을 보면 투쟁과 고생의 역사였다. 포로기의 예레미야같은 사람은 살펴 볼 것도 없고... 제국의 궁궐을 마다하고 황폐한 고국에 돌아왔던 에스라나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도 뭐 좋은 꼴을 많이 봤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신약은 더하지 더해. 12사도가 모두 순교하고 그 뒤로도 박해가 이어졌으니. 제일 유명한 바울조차도 로마에서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는데.


억압받고 포로된 땅에서 슬프고,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며 애통해 하고, 인류를 향하여는 사랑의 마음을 품고, 평화와 온유의 길을 걷고자 했던 이들이 하나같이 고생길을 갔다. 적어도 기독교의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뜬금없이 석가모니가 떠오른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도를 깨닫고 그는 잠시 고민한다. 나만 알고 자유롭게 지낼 것이냐, 중생들을 위해 이 도를 전파할 것이냐. 그는 후자를 택했고 그의 삶은 숱한 고생이 뒤따랐다. 나이 많아 죽을 때까지 그의 사명은 이 도를 전파하는 것이었고 생전 소유라고는 걸친 옷 한벌 뿐이었다. 그런 거 보면 불교도 원체 기복 종교는 아닌데 말야. 거참... 절에 가면 뭔 기왓장을 그리 많이 파시는지. 석가 부처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원초적 불교 못지 않게 기복과 거리가 먼 종교가 기독교다. 물 한그릇이라도 대접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신다고 가르치며, 원수도 사랑해야지 진짜 사랑이라고 하는 종교. 5리를 가라고 명령하면 10리를 자발적으로 가주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이어서 내밀라는 해학적이고 인애에 찬 종교가 어찌 돈을 긁어모을 수 있나. 애석하게도, 무소유를 넘어서서 손해보는 삶을 지향하는 것 같은 이 종교의 백미는 현세에서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산상수훈과 8복도 현세적 복락으로 이어진다는 설교가 파다했다. 마음이 깨끗하고 의롭고 온유하고 등등한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신다는 거다. 언제? 지금 바로 여기. 거참... 사람들이 기복을 참 좋아해. 나도 기복을 좋아하지만 성경은 매몰차다. 행복회로를 타고 메타인지를 돌리면 오늘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 돈다발의 형태로 떨어질 것만 같은데, 성경이라는 오래된 데이터를 차근히 분석해 보면 그런 메타인지는 허황된 상상에 불과했음을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성경 속 군상 중에 족장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 정도를 빼면 부 혹은 이렇다할 성과를 이룬 이들이 별로 없다.


아니 하나님, 돈을 안 주실거면 그간 일한 보람이라도 있게, 사역의 열매는 좀 남겨주셔야죠? 성경을 떠올리면, 그조차도 전례없는 일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게 가능했다면 사사(판관)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했을 리가 없고, 재건된 제 2성전이 금방 개판나는 일도 없었을 거고, 헤롯같은 인물이 왕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디아스포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전능한 하나님이라면, 굳이 망치로 깨서 흩어진 유리알처럼 사방으로 신도들을 퍼져나가게 하는 대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모여들어 신앙을 갖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전능신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말하지 말자. 너무 섣부르니까. 그리 쉽게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면 당신이 전능신이겠지, 그분이 아니라.


오늘 예수의 말씀. 하나만 기억난다.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이다, 그 나라에서. 이게 왜 내 마음에 위로와 안식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위안이 스며든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랍다는 찬송을 부르며, 그분의 위로 안에서 거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종교가 마약이라며 매도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증거불충분의 내세 개념을 앞세워 현세를 올바로 살지 못하게 하고, 인간을 조종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못된 것으로 보았다. 생각해보면 기도 안 찬다. 집에 가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할 생각에 부푼 가장의 하루가 행복하고 활기차겠지, 돌아갈 집도 절도 없이 지금 여기서 먹고 일하지 않으면 죽음 밖에 기다릴 게 없는 결기에 찬 이의 하루가 행복에 가득할까? 내세를 잘못 이해해도 한참 잘못 이해했다.


오늘에 다함없는 은혜는 약속되었다. 우리는 솔로몬왕이 입은 옷보다 고운 들장미의 비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날아가는 새도 먹을 게 예비되어 있다는 준비된 은혜(예정론이 아니라 준비된 은혜라 부르고 싶다)의 수혜자들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을 복된 이의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는 것 뿐인 것 같다. 마음이 가난하고, 슬픔이 있고, 온유하고, 의를 사랑하고, 자애롭고, 깨끗하고, 평화를 위해 애쓰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자처하고,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과 핍박을 감내하는 삶. 그들에게 훗날 임할 하나님의 상이 매우 크다고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뭐 좀 보상받겠다고, 본전 생각일랑 접고. 오늘에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하루를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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