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역에서 내렸어요.
교회를 가기 위해 항상 근처 서울대 입구역에서 내려서인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이 주변은 직장인, 학생들의 주거지가 많아서인지 더 혼잡하고 활기가 있어요.
길게 이어진 좁은 길 따라 상가가 많고 시장의 사람들은 활발해요.
관악 초등학교를 돌아서 마주하는 담장은 늦은 오후의 빛을 따라 가을 잎들이 풍성하고요.
마치 두 겹의 황색 벽돌이 쌓아 올려진 듯해요.
그런 길들을 돌아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하려는 장소에 도착했어요.
작년 두어 달 동안, 10여 년이 넘게 방치한 피아노랑 좀 놀았는데.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조심스럽게 피아노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간헐적으로 대화를 했지만,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소통을 끊어 왔지요.
일방적으로 그 아이의 입을 닫았어요.ㅎ
그나마 가끔 나의 피아노를 다듬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오히려 엄마였고요.
비싸고 아까운 물건이라고 자주 닦아주셨죠.
언젠가 내가 교회 반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그 존재의 중요성을 알려 주십니다.
우선 한 곡을 연습해 보기로 했어요. 체르니와 소나티네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재미를 느끼며 끊지 않고 피아노와 대화하고 싶어서요.
사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너무 자주 해서 세상에서는 의미가 퇴색해 버린 단어. 하지만 내게는 아직 그대로의 단어.
바로 진심을 담아서 들려주고 싶어요.
만일 그럴 수 없다 해도, 적어도 그 곡을 가지고 피아노와 진심은 나눌 수 있겠지요.
절실한 감정을 밑바닥까지 소진하고 나면.. 처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눈 피아노에게 고마워질 거 같아요.
짧은 첫 레슨과 두어 시간의 연습을 마치고 다시 봉천 길을 돌아 나왔어요.
가을 저녁 어스름에 가까워지는 학교와 시장의 풍경이 여전히 들떠 있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한 달간은 이 풍경과 마주하겠군요.
_2009.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