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고양이에게.
'믿음.'
소중한 존재의 형태를 유지해 주는 매우 침착하고 정갈한 감정.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게 하는 그것.
결국 길고양이 금동이를 바라보며 원했던 건 '믿음'이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인정(人情)이 함께한다면 길 위의 고양이 생활이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월동용 고양이 집을 구매해, 김장용 비닐로 감싸고 입구에 비닐문을 내주어
금동이가 칼바람을 맞으며 누워있던 자리에 놓아 준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봄이 왔다.
그새, 봄여름용 재질의 고양이 집을 또 구매해 놓고 이사시켜 줄 적당한 시기를 고르고 있다.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일요일 늦은 오후, 유치원 마당에서 자고 있던 금동이를 깨워
고양이집이 있는 곳 근처 정자 마루에서 츄르와 사료를 먹이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대부분 금동이와 안면이 있는 동네 어른들이라 그러려니 했고
역시나 잠시 머물던 발걸음은 멀어졌다.
금동이의 식사 후, 언제나 가지던 우리의 루틴대로
금동이는 그루밍을 하고, 우리는 시원한 바람과 온기가 가시기 직전의 햇빛 아래 한참을 앉아 있는다.
지나가는 아이와 어른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깨끗해 보이게 털도 빗겨주고 눈곱도 떼어주고.
길을 걷다 무지하고 야박한 인간의 발에 치이지 않게, 너무 더러워 보이지 않게.
금동이를 몇 분 동안 쓰다듬는다.
그리고 길을 떠났던 잠시 전의 노인은 다시 나타났다.
한동안 잠잠하던 내 인생의 빌런.
온통 하얀 머리의 할머니는, B사감의 권위로 무장한 듯 다가와
절반은 진실이고, 절반은 거짓인 설교를 날리기 시작했다.
'사람도 아닌 길거리 짐승을 정자 위에 누가 올려놓으라 허락했냐.
벤치 같은 사람 앉는 자리에 동물을 올려놓는 건 잘못된 거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쓰여있다.
집이랑 밥을 갖다 놓은 것도 너네 둘이지?
자신의 손주뻘되는 아이들이 너네 때문에 고양이를 만질 텐데 위생상 좋지 않다.'
하아.. 헐크는 될 수 없지만, 잠시 이 구역의 미친년은 될 수 있지.
평생 머리 하얀 사람한테 내 할 말을 똑바로 쳐다보며 했던 일이 있던가.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걸, 노인의 행동이 내게 알려 주었다.
'어느 벤치와 정자에 동물을 올려놓으면 안 된다고 쓰여있냐.
위법 행동도 아니고, 할머니가 그런 명령을 내릴 자격도 없다.
그런 내용이 있으면 가지고 오시라.'
뒷짐을 지고 느리게 걸을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만의 권위를 만든 노인은
곧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타협점을 찾기 시작했다.
'땅바닥에서 밥을 주면 되지 않느냐.(밥 주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럼 무슨 문제가 있겠냐.'
반백년을 넘게 산 한 사람이 보여주는 논리의 오류. 인성이 결여된 날 것의 품위였다.
상황을 끝내는 게 좋겠다 판단한 엄마가, 노인 앞에서 금동이를 정자에서 내려 보내며
그만 가시라고 단호하게 표현했다.
쫓겨난 금동이는 풀 숲에서 이 상황을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지켜봤다.
물론.. 노인의 말에는 송곳처럼 내리 꽂히는 일면이 있다.
더러움. 길 위에 사는 동물의 위생문제.
그 부분을 생각하면 심장이 오그라든다.
나와 엄마는 금동이에게 먹을 것을 준 후, 자리를 물티슈로 닦고 뒤처리를 하지만
넓은 영역에 걸쳐 다수의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볼일을 보고, 멀지 않은 곳의 흙에 몸을 비비며 살아간다.
하지만.. 한편 이런 염려는 너무 졸렬하지 않은가.
인간이 만든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흙과 모래를 잃고 태어난 동물들인데.
인간 때문에 자연의 화장실을 잃어 가는 친구들인데.
아무 데나 똥오줌을 갈겨 더럽다니.
삶에 있어 우선순위의 기준은 하찮을 정도로 상대적이다.
그 같지 않은 누군가의 기준에서 길고양이 금동이는 미달이겠지만
내게 행복을 주고, 내 사랑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너란 존재는..
그 어떤 것에도 미달이지 않다.
이틀여의 시간 동안 떨칠 수 없는 분노와, 금동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다시 화가 나길 반복했지만
그 안쓰러운 상황 속에서도, 노인이 떠난 후
다시 정자로 냉큼 올라와 엄마 등에 엉덩이를 갔다 대고 누워 식빵을 굽던 너란 고양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해지기로 했다.
며칠 후, 재택근무를 겸하기 위해 금동이가 있는 본가로 돌아왔다.
늦은 밤, 퇴근 후 차를 끌고 주차를 위해 본가 아파트로 들어서는 길.
정자 한켠에 있어야 할 금동이의 집이 보이지 않는다.
어둠에 가려져 분간이 안되고, 서행 중 잠깐 고개를 돌려 본 것이기에 확실치 않다.
주차 후, 정자 주변을 다시 살피니.. 금동이 집을 가려 주었던 우산이 바뀐 것이었다.
더 크고 튼튼하고, 새것인 우산.
안도하며 집으로 바로 향하려는데, 돌아선 한켠에서 나란히 놓여 있는 네 개의 그릇이 눈에 띄었다.
차례대로 물, 습식, 건사료등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우산을 새것으로 가져다 놓으신 분이 밥과 물을 공개적인 자리에
다른 길고양이들까지 먹도록 가져다 놓으신 듯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짜릿했다.
한마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표현. 혼자만의 고민과 걱정이 아니어서 힘이 났다.
집에 돌아와 금동이 집 주변의 변화에 대해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엄마는 이틀 전, 겨우내 써서 해지고 지저분해 보이는
금동이 집의 비닐과 테이프를 벗겨 내셨다고 한다.
새집으로 교체하기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깔끔해 보이도록.
입구가 너무 크게 드러났지만, 날이 따뜻해졌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당분간 눈에 띄지 않게 돌보려고 늦은 밤 찾아갔다.
아마도 이런 정황에 비추어, 금동이를 가끔씩 같은 맘으로 돌봐주시던 분들이
어느새 고양이 집 입구를 막을 큰 우산으로 교체를 하신 것 같다.
그리고 밤늦게 찾아갔기에, 발길이 뜸해 보이는 우리를 대신해
큰 사료 그릇을 금동이 주변에 놓아 두신 것이다.
각자 나름의 이유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거겠지만, 그 순간 빈틈을 채워 행동해 주었던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된 거 같아 따뜻해졌다.
같이 걱정해 줘서, 지켜봐 줘서 고마웠다.
그러니.. 금동이는 괜찮을 거야.
곧 교체해 줄 여름집이 설치 후 별안간 없어질 수도 있고
인생의 빌런이 다시 출몰해 자신의 인정머리 없음을 온 세상에 공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금동이를 아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시절을 찾아와, 이 순간을 추억으로 박제해 주는 소중한 고양이.
나의 첫 번째 고양이, 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