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가 꿈에 찾아올 때, 그 시간은 초월적이다.
당연히 죽은 동물이 살아 움직이는 무의식의 세계는 특별하고 반갑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너라면 더욱.
강지의 죽음으로 인해 이별한 그날로부터
나의 꿈에 모습을 보여준 건 두어 번 정도일 뿐이었다.
그 아이는 마지막 숨결까지 쥐어짜듯 다 토해내서 여분의 기포조차 남지 않은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열여섯 해의 삶을 끝냈다.
그리고 한두 달쯤 지났을까.
꿈속에서 처음 나타난 강지는 여전히 아픈 몸이었다. 마르고, 걷지 못하는.
살아있는 마지막 몇 날의 기억을 잔인하게 복기하듯 다시 내 꿈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몇 개월이 지나
강지는 열여섯 살의 생애 마지막 모습이 아닌, 적어도 몇 년은 젊은 모습의 강아지로 꿈에 나타났다.
어린 강아지도 늙은 개의 형상도 아닌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된 시간을 공유하는 미숙한 젊음의 모습.
반쯤 덮은 이불속에서는 엷지만 순진한 꼬순내가 나는 털이 자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안도했어.
꿈속에서, 그리고 꿈 밖의 세상에서
강지는 분명 강아지 별나라에서 다시 건강하고 젊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난 올해의 3월 봄.
그 아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의 꿈에 찾아왔다.
맑고 찬 새벽공기와 하늘 높이 빼곡히 솟은 초록나무 숲이 반기고 있는 곳.
그곳에 예쁘고 잘 정돈된 나무로 지은 펜션이 보였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강지와 닮은 얼굴에,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탐스러운 귀털을 펄럭이며
덩치가 레트리버만 한 강아지들이 우르르 쏟아져 달려왔지.
모두 잘 먹고, 행복한 강아지들로 보였다.
펜션과 강아지들의 주인은, 인자한 미소의 할머니였어.
정작 강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그 행복하고 덩치 좋은 강아지들이 내 반려동물의 자식들인걸.
펜션을 둘러싼 숲의 곳곳에 누워 편하게 쉬고 낮잠을 자는 강아지들은
모두 우리 강지처럼 뼈대가 굵고 튼튼하고 복슬한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몸에 귀엽고 따뜻한 옷을 입혀놓은 모습을 보면서
펜션 주인 할머니가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가슴 안쪽에서 따끈하게 덥혀진 핫팩이
찬 새벽공기에도 미열로 남은 온기를 전하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떴다.
한동안.. 이런 특별한 꿈으로 찾아와 소식을 알린 강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특별함이 내 아기의 유일한 태몽이라 믿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반려동물이 멀리서 보내 준 축하 선물.